[일상기록] 베스킨 라벤스의 파인트처럼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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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나는 향기


 오랜만에 파리 남쪽에 갈 일이 생겨 7호선 지하철을 탔습니다. 파리는 매 구 마다 가지고 있는 느낌이 조금씩 다른데, 남쪽으로 갈때면 한층 더 다양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사람들의 옷 색깔, 표정들을 보는것이 즐겁기도 새롭기도 했던 날이였어요.

 빌쥐프 폴역에 내려 에스컬리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앞엔 아무도 없고 뒤에 사람들이 주루룩 같이 올라왔습니다. 지상에 도착해 걸어가려던 찰나, 뒤에서 누군가 어깨를 살짝 톡,톡, 치네요. 누구지? 하고 돌아보는데, 푸근한 인상의 아주머니 한분이 미소와 함께 서계셨어요. 네? 라고 물으니, 나와 같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왔는데 좋은 향이 어딘가 나서 향을 따라 두리번거리며 걸어왔는데 그 끝에 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Qu'est-ce que vous mettez?" 향수를 뭘 뿌렸냐고 물어보시는데, 음...좀 난감했습니다. 저는 향수를 쓰지 않거든요. 미안해요 아줌마, 전 아무것도 뿌리지 않았어요. "Rien, madame. Peut-être ce n'est pas moi." 아마도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 아닐까요? 했더니 그저 웃으며 걸어가시네요. 좋은 하루 보내요-란 말과 함께.

 별것 없는 일상이지만, 이런 사소한 일들로 색이 입혀지고 칠해져 하루가 꽉 채워집니다. 후 꽤 오랜시간 동안 제 몸을 킁킁 맡으며 내가 아닌데.. 오늘 간신히 세수만 하고 나왔는데? 반신반의하며 걸어갔습니다. 새로운, 당황스런 느낌이 기억에 남아있지만, 인상적인 것은 정말 선해보였던 아주머니의 얼굴이였어요. 오히려 그 분의 따스한 향에 취해 하루종일 좋은 기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31가지 맛


 불확실함과 불안정성에 지쳐,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얕은 호기심과 낯선이의 애매한 태도에 진심이 다쳐, 한 번 사귄 사람들과 쭉 함께 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고, 정착하고 싶은 욕망이 강해진다는 어디선가 읽었던 말이 떠오릅니다. 내 바운더리 안에 들어온 사람들에겐 늘 진심이고 지나친 사랑을 퍼붓게 돼죠. 더 주고 싶은데 줄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계속해서 꾹꾹 눌러 담아서. 마치 베스킨 라빈스 하프캘런처럼 좋은 결의 모든 면을 가득 담아 선물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진심을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들은 더이상 가차없이 사양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제게 주어지면 좋겠네요.

  베스킨라빈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맛으로는 초코나무숲이에요. 달콤 쌉싸름한 것이, 마무리까지 개운하게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맛이죠. 청크한 초콜렛볼이 들어가있는 엄마는외계인도 좋아해요. 보통은 하프갤런으로 사기에 가족들과 먹을 아이스크림은 가족들의 취향이 모두 조금씩 들어간 한 통이 됩니다. 치즈를 잘 먹는 동생은 스트로베리 치즈케잌, 어머니는 최근 나온 인절미 맛을 좋아하시네요. 피스타치오 맛도 좋아하세요. 아버지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패스. 대신 맥주를 한병 사들고 가죠.

  썸머타임이 시작된 지금, 한국과 한시간 더 멀어졌습니다. 연인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걸 보니, 정말 여름이 온듯 합니다. 벌써 더운 날도 있는데 올해는 얼마나 더울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에어컨 없는 파리가 한국보다는 덜 덥다는 사실! 한창 더운날엔 프랑스식 인사인 비쥬가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땀도 많이 나고 몸냄새도 더욱 진해지니 위생에 더욱 신경쓰게 되지요.

샤를드골 공항


  가르치고 있는 한 학생의 한 이야기가 며칠째 머릿속을 맴돌고 있어요. 처음 한국에서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하던 그 날의 경험과 기분을 들려주었거든요. 모든 사람은, 각자만의 고유한 색깔을 갖고있다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항에선 사람은 너무 많지만 왠지모르게 외롭게 느꼈다고 해요. 샤를드골에선 모든 사람이 어두운 회색으로 보였고, 한 사람도 웃거나 서로를 보며 얘기하지 않았다는 설명을 조용히 듣고 있자니, 그리 오래되지 않은 제 경험들도 두둥실 떠올랐어요.

  어쩌면 모든것이 그런게 아닐까. 사람은 다 똑같은가, 모두가 그런것은 아니었을까. 목적지가 확실한, 어쩌면 불필요 또는 필요한 시간을 각자 가지고 끊임없이 레일을 걸어가는 사람들. 설렘보다는 지침, 피곤이 얼굴에 드러나고 계속해서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곳.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무거운 짐을 든, 앞으로의 비행에 근심이 가득찬 표정들이 기억이 나요. 저 또한 어떻게 하면 13시간의 비행을 덜 힘들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하거든요.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것' 을 읽고 나서 기억에 남았던 문구가 떠올랐어요.

몸이든 마음이든 비우면 시원하고 편안해집니다. 반대로 안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으면 몸이든 마음이든 병이 납니다. 뭐든 비워야 좋습니다.

  아직 비워지기는 커녕 너무 많은 잡다한것들이 들어가 있는 제 마음이 타인에게는 어떤 향이 느껴지며, 어떤 색으로 비춰질까요. 사람의 고유한 색, 향- 그 모든 것들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지는지, 느껴지는지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한번쯤은, 와 저 사람 정말 다양한 색깔로 가득 채워져 있는 즐거운 사람이구나. 참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싶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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