득도의 시대, 하완 |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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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타인의 시선이 신경 쓰였고, 그들 보기에 괜찮은 삶을 살려고 애써왔다. 잘 안됐지만 말이다. 사실 가능하면 '인생 매뉴얼'에 맞춰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가 않다. 내가 이 나이에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내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중)



 본인을 열심히 쫓아가다가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엎어진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저자는 회사원에 일러스트레이터로 투잡을 뛰며 소위 말하는 '열정'을 가지고 살아온 평범한 40대 남자다. 조곤조곤, 그의 삶에 녹아들어 있는 사회의 전반적인 이슈들을 살짝살짝 끄집어 내어 책에 풀어놓았다. 돈이 최고인 물질 만능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한 구절에선 우리 모두가 고찰하고 있는 내용일 듯한 글이 나와있다.

흔히 돈은 수단이어야 하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랫동안 돈이 목적인 삶을 살아왔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늘 돈을 많이 벌고 싶었기에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같은 가장 중요한 질문들은 제쳐두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길을 좇으며 살았다.



 여기서 '돈'이란, 나에게도 중요한 화두이기에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신뢰' = '돈' 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는 최근의 형과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진심을 담아 건넨 조언엔 아무리 올바른 방향성과 미래가 담겨있다고 해도 '돈' 을 지불한 학원 강사나 보험의 성질을 띈 다른 말에 지는 현실. 우리는 물질 만능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그 진심을 '주는' 화자와 '받는' 상대 사이 신뢰란 실은 얼마나 튼튼할 수 있는걸까. 머릿속이 온통 질문으로 가득찬다. 그런 의미에서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읽고 지나쳐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을 재생산 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까웠던 부분도 물론 존재한다.


 여러 부분에서 여자/남자의 역활을 지나치게 구분하는 내용의 구절이 나온다. 본인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여성호르몬이 많아진다고 생각되어 진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을 읽을 수 있다. '성시경' 사건이라며,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기사님이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성시경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감미롭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본인을 질책하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나 남잔데. 미쳤어, 정말.' 그는 그날 여성호르몬에 지지 않기 위해 액션 영화를 시청했다고 한다. 그 단락의 마지막에 그가 써놓은, 성시경 씨, 언제 술 한잔해요. 당신의 목소리에 취하고 싶네요 는 또 앞의 이야기와 굉장히 상반된 내용이다. 남자니까 성시경의 노래를 좋아해선 안된다고 느낀 저자의 마음, 그리고 그 남성상을 다시금 확인하는 방법으로 때리고 부시는 액션영화를 선택하는 것이였다는 내용은 참 안타깝다. 뭐, 이게 현실임을 잘 알려주는 것일 수도.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남의 밑에서 월급 받는 게 참 쉽지가 않다. 한마디로 치사하다. 정녕 돈을 이렇게밖에 벌 수 없는 건가. 좀 더 자존감과 품위를 지키며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이 구절에선 나의 지난 날들이 떠올랐다. 아무리 '남'을 위해 노래 한다지만 아무 무대나 설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 무대란 또 무엇이냐 하면, 단돈 5만원에 생판 모르는 (그리고 그들도 일면식이 없는) 축가를 부르는 일이다. 물론 지난날에 난 수백번의 축가를 불렀고, 매 번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지만 그 무대 위에서 '예술가' 로서의 나의 정체성은 온데간데 사라져있기에 결혼식장에선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결혼이라는 제도. 그리고 그 문화의 엄청난 규모. 하나부터 열까지 가부장제로 얼룩져있고 자본주의의 밑을 드러내며 호텔 안의 수많은 계층과 일들, 위치 그 속에 기꺼이 들어가 돈 몇만원에 내 자신을 내던졌던 과거와 책의 한 구절이 겹쳐졌다. 각종 모순의 근원인 소용돌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생활을 위해 지속해야 했던 '돈을 벌수 있는 행위'.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 이러한 현실을 저자는 포기했다는, 돈이 수단은 될 수 있어도 목적이 되는것이 싫다는 본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다.

우리의 삶은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와 같다....(생략) 그러니 지금의 내 삶이 매우 불안해 보일지라도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이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파도를 타는 것이니까.



 한창 유행을 탔던 책이라서 조금 늦게 읽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많은 질문과 생각을 던져준 책이라 읽길 잘했다는 소박한 감상평을 남긴다.


Originally posted on Layla. Steem blog powered by ENGR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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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가치나 방향 을 갖지못했다는말 여운이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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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남는 구절이군요 :-)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문장이 아닐까 .. 하는 생각이 저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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