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의 알쓸신잡]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1)

in #kr5 years ago (edited)

레오알쓸신잡.JPG

안녕하십니까, 레오(@leeyh)입니다.

저는 중국, 일본, 영국, 미국 역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는 일본과 중국과 늘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 일본 역사를
연구하다 보면 대한민국이 더 잘 보이게 됩니다.

영국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영어의 어원이 보이고
미국은 세계 최대 강대국이다 보니 미국 역사를
공부해 보면 세계의 흐름이 보이게 됩니다.

오늘은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대부분 내용은 제가 보고 느낀 내용입니다.
워낙 일본에 대한 전문가도 많이 계실듯 하시니
잘못된 내용은 댓글로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열도는 4개의 큰 섬, 즉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와
오키나와를 비롯한 약 6,852개의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면적은 377,855㎢입니다.
이 면적은 한반도의 약 1.7배이며, 23만㎢인 혼슈는
한국과 비슷한 크기입니다.
그리고 일본은 전체 국토의 1/4이 산이라고 합니다.

이런 지형적인 특이성때문에 일본은 통일왕국이
존재한 적도 별로 없었고 외세의 침략도 거의
당한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과 크게 차이나게 느껴지는 것은
대한민국은 하나의 중앙집권적 통일국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지역감정이 있고 세대간 갈등이 있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은 상당히 단일민족이란 느낌이
듭니다.

한-일 축구 대항전을 하거나 월드컵 한국 경기를
한다면 한국은 시청율이 최소 30~50%정도
될겁니다.
하지만 일본은 5%도 안된다고 합니다.
심지어 녹화방송을 해줄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한일월드컵때도 일본 국대 경기보다 요미우리자이언트
경기의 시청율이 더 높았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잘못된 시각중 하나가
일본은 일왕을 중심으로 똘똘뭉친 국가라고
생각하는게 큰 오해인거 같습니다.
일본은 상당히 단합이 잘되고 우익적인 나라라고
생각하는것도 잘못된 생각인거 같습니다.

캐나다에서 제가 어학연수 하던 시절에 일본
여대생들과 대화를 해 보면 일본 여대생들은
자기나라 수상이름을 모릅니다.
일본 지폐 만엔에 그려진 후쿠자와유키치 (福澤諭吉)
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그 당시 제가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해서 일본여대생에게
설명해준 기억이 있습니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게이오대학을 설립한 것도
전혀 모르고 메이지 유신을 한 것도 모르는거 같았습니다.

제가 느끼는 일본은 통일국가라기 보다는 지방자치가
강한 느슨한연방국가 같은 느낌입니다.
후쿠오카, 오사카, 도쿄만 해도 각각의 입장이 있고
성향이 많이 다른거 같습니다.
워낙 나라가 길고 산이 많아서 각 지역별 특색이
강한거 같습니다.

전국시대 스토리만 봐도 어느지역이라고 칭하지
않고 오와리국이라고 칭합니다.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통일했었다고는 하지만
오사카와 교토정도를 지배하고 나머지 영주들은
협력관계정도라 봐야할거 같습니다.
오사카성 전투로 도요토미 가문을 몰락시키고
에도막부시대가 열렸지만 여전히 오사카나
큐수지역은 에도막부에 반감이 있었다 보여집니다.

메이지 유신도 사실은 큐수지역 사쓰마번과 혼슈변방
모리가문의 조슈번(현 아마구치현) 사람들이 삿조동맹을
맺고 에도막부세력을 몰아내려는 구테타 성격이
강했습니다.
일왕을 내세운건 에도막부를 몰아내려는 명분일 뿐이었죠.

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주역들도 대다수 사쓰마번, 조슈번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2차대전 시절 해군은 대부분 사쓰마번이 장악하고
육군은 조슈번이 장악했는데 두 지역의 갈등이 심해서
육군과 해군이 작전도 공유하지 않았고 태평양전쟁도
육군은 찬성, 해군은 반대했습니다.

임진왜란당시도 일본군은 1번대에서 9번대로 각각
영주별로 참전했습니다.
군대마다 군복도 상이했고, 깃발도 각각 가문의
깃발을 사용했습니다.
각 영주마다 사이가 나빠서 서로 정보 공유도 안했고
일부 영주는 히데요시에 굴복은 했지만 히데요시를
증오해서 진격을 안하고 싸우는척만 했다고 합니다.
반 히데요시 가문의 일부 병력은 조선에 귀화하기도
했다 합니다.

너무 진격을 안해서 히데요시가 조선인 귀를 짤라오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히데요시의 오른팔인 행정관 이시다 미쯔나리가
전쟁은 안하면서 명령만 내린다고 영주들이 반발을 하자
히데요시도 반발을 두려워 해서 이시다 미쯔나리도
잠깐 전쟁에 투입했습니다.
전쟁 경험 거의 없는 이시다 미쯔나리가 삽질을 한
전투가 그 유명한 행주대첩이었습니다.
(우리 입장에선 정말 고마운 이시다 미쯔나리 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구를 1200만명으로 잡고
조선인구를 600만~800만 사이로 잡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임진왜란당시 여러 핑계를
대고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다이다이묘(대영주)들은 임진왜란에 참전을
거부한 상황이었고 신생 영주들이 영지 확장을
위해서 임진왜란에 많이 참전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일본이 그 당시 완벽한 중앙집권 통일국가라서
다이다이묘들의 주력부대들도 임진왜란에 참전했으면
조선 입장에서는 재앙이었을 겁니다.

정유재란중에 히데요시가 죽자 일본 군대는 일본내
자기 영지를 지키기 위해서 앞다투어서 일본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세키카하라 전투라는 내전이 벌어집니다.
임진왜란 당시 두명의 선발대 다이묘인 가토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키나가는 각각 동군, 서군으로 나뉘어서
전쟁을 합니다.
동군의 승리로 고니시 유키나가는 목이 날라갑니다.

지금도 도쿄지역은 간사이 지역 출신인 아베신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거 같습니다.

일본은 우리와 가깝지만 우리와는 정말 다른 나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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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모르는 사실이네요.
일본 역사도 너무 복잡하더군요.

그리고 일본역사가 야사가 많은게 중앙정부가 강한게 아니라서
각 영주마다 기록한걸 조합해서 써야 하는데 다 지들 잘랐다고
쓴게 많다네요.

조선왕조실록이 그래서 세계적인 유산인거죠 ㅎㅎㅎ

우와~ 정말 오늘 새롭고 재밌는 역사를 알게 되었네요~
정말 피가되고 살이되는 정보 감사합니다

네 좀 더 자세히 연재해서 일본역사를 풀어 보겠습니다.
다음주에 후쿠오카 가서 유적지 사진도 찍어 오려고
합니다^^

레오님 위키피디아세여.............???????

한국을 이해하려면 일본과 중국을 이해해야 해서
심심할때 책 보고 일본 사극 가끔 봐서 얻은
지식이죠 ㅎㅎㅎ

오사카성 겨울전투와 여름전투를 사극으로 보고
오사카성 3번 가 보니 볼때마다 다른 느낌이었죠 ㅎㅎㅎ

처음 듣는 새로운 내용들이네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일본에 대해 알고있는 바와 너무 다른점들 놀랍고 재밌게 잘 봤습니다
다음 포스팅도 기대되네요^^

네 오늘 또 올릴께요 ㅎㅎㅎ

(후오비 계정도 부탁드립니다^^)

축구 시청률이 5%도 안된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정말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네요.^^

네 ㅎㅎㅎ
일본과 한국은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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