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한테 밥주기로 했는데 왜 슬픔이 니가 다 쳐먹니???

in #kr6 years ago
  1. 삼촌의 집에서 깼다. 07:30분에 깨서 다시 잠들지 못했다. 술을 마신 다음날은 아침 일찍 눈이 떠지지만, 소금에 절여진 것처럼 몸이 아프다. 엔진에 기름 대신 모래를 넣고 달리는 자동차가 된 기분이다. 엎드려서 폰을 뒤적이며 끙끙대다, 어젯밤 일들을 기억해낸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들어갔고, 삼촌에게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고, 술을 꽤 많이 마셨고 양꼬치를 먹었으며 소주와 맥주 이과두주를 섞어 먹었다. 술에 취해 많이 짖었다. 으르르릉. 재미있긴 했다. 어제 술을 사 주신 @no1smile님에게 감사의 인사.

기쁨이.PNG

내가 보는 기쁨이의 얼굴

남이 보는 기쁨이.PNG

남이 보는 기쁨이의 얼굴.

  1. 어제 입었던 옷을 똑같이 입고 출근하기 싫어서 삼촌 집에 모셔놓은 내 양복을 입었다. 삼촌 집에서 이사하기 전에 세탁소에 맡겼었는데, 찾는 걸 깜빡해서 삼촌이 대신 받았다. 그런데 나는 분명히 돈을 선불로 냈던 것 같은데, 세탁소는 돈을 받지 않았다고 하며 삼촌에게 돈을 받았다. 삼촌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나같은 조카가 있는 것인가?

  2. 삼촌 집에서 회사까지는 걸어서 30분이 걸린다. 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20분동안 걸었는데 4km중 2km밖에 못 왔다. 내 기억력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럼 세탁소를 욕할 수 없지. 중간에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3. 열심히 테이스팀의 문구를 썼다. 글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인 줄 알았는데, 갈수록 말라간다. 책을 읽지 않으면 글이 마른다.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언어가 마른다.

  4. 점심시간에 밥 먹은 후 우노를 했다. 회사 동료에게는 위에서 한 장, 나한테는 밑에서 한 장. 근데 패를 섞을 때 잘못 섞었는지 자꾸 똥패가 들어왔다. 덕분에 커피를 사줘야 했다. 다음번에 더 크게 뜯어먹기 위해 잠시 쉬는 거라고 생각하자.

  5. 테이스팀의 문구를 쓰고 문제점을 찾고 설문조사를 만들었따.

  6. 퇴근하면서 한강의 '흰'을 읽었다.(5600번 버스의 자리가 많이 남아서 기분 좋게 자리에 앉았다) 자신이 본 흰 것들에 대한 글이었다. 흰 대문, 흰 구름, 24시간동안 지속되는 낮, 물이 잔뜩 섞인 눈, 무대에서 강렬하게 내리쬐는 스포트라이트. 배내옷, 그 외의 수많은 흰 것들. 책은 얇디 얇았지만 문구를 이해하기 위해 같은 지점을 몇번씩 다시 읽었다. 입 속에서 소설의 문장을 굴리고 굴렸다.

  7. 난 아무것도 아끼지 않아,
    내가 사는 곳, 내가 매일 여닿는 문, 빌어먹을 내 삶을 아끼지 않아.

  8. 사는 집의 문을, 못으로 긁어 녹이 슬도록, 301호라고 새기는 사람은 자기 둥지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겠지. 나는 내 양복을 사랑한다. 다른 옷들은 가끔 던져놓고, 구겨져도 신경쓰지 않지만 양복은 다르다. 곱게 세탁소에 맡기고, 찾아다 정성스레 걸어 놓는다. 내가 직접 가게에서 치수를 재고, 테일러가 나를 위해 옷을 만들어주고, 구두를 해 주고, 몇 번이고 수선해 줬으니까.

  9. 집에 와서 재활용 쓰레기들을 버리고 청소를 하고 책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했다. 여동생이 집에 와서 더 피곤하길 바라지 않으니까. 내가 쓰레기 사이에 파묻혀 글을 쓰는 걸 원하지 않으니까. 나를, 여동생을 사랑하니까. 여동생이 어제 빨래를 돌려놓고 너는 걸 깜빡했다며, 세탁기좀 다시 돌려달라고 할 때 한숨을 푹 내쉬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일어난 사고에 대해 화를 내는 건 무의미한 일이니까. (그니까 내가 전기장판 켜놓고 가도 좀 봐줘)

  10. 하지만 빨래를 개며 괜히 심통을 부렸다. 오리너구리처럼 '카악-'하고 소리를 낸다던가, '왜 이렇게 다 이것저것 부숴버리고 싶지' 하고 여동생에게 투덜거린다던가. 세상이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다. 음, 정말 무의미하군!!

  11. 약속 잡은 게 깨져서 투덜거렸다. 세상에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많다. 분명히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내 마음만 바꿀 수 있는 것인데. 제발 손을 놔 달라고 간청해 보지만 사실은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다!

  12. 밝고 유쾌하게 살고 싶은데 잘 안된다!!

  13. 오리너구리 꽥꽥!!!!!!!!!!

  14. 다들 좋은 밤 되세요.

  15. 오늘의 기쁜일 -
    5600번 자리가 널널해서 흰을 읽었다
    일 있던게 사라져서 독서 모임에 갈 수 있게 됐다
    기침이 사라졌다. 만세!! 건강한 게 이렇게 좋을 줄이야!!
    테이스팀 테스트가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이예!!
    통화했다!!
    책상이 깨끗해졌다!
    집안일을 반벽하게 해냈다(어느 정도 완벽한 상태를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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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탁기는 다시 돌리고 널어도 괜츈하지만
전기장판은 장르가 다르지용~~ 위험하달까?용
밖에서도 켜둔게 생각나면 걱정 되잖아유~~
정신건강에 안좋아요~^^;;
하지만 날씨가 따땃해지면 해결 될 일이니
너무 걱정마시길 바래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직도 밤에 쌀쌀해서 전기장판 키고자는 날씨 대체 무엇 이러면서 모기는 또 나오겠죠? 아휴 싫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켜놓고 까먹어서 걱정하진 않음 포지티브 멘탈리티!!

책을 읽지 않으면 글이 마른다.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언어가 마른다.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일깨워줍니다.

그리고 오늘의 하이라이트 : 오리너구리 꽥꽥!!!!!!!!!

쿠알라룸푸르 오리너구리 꼬ㅔㄱ꽥!!! 글 하루라도 안 쓰면 제가 느끼겠더라구요 아이고 아이고

댕댕이 언급이 있을 때는 kr-pet 태그 써주셔도 됩니다. ㅋㅋ

엥 zzzz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지하게 고민중

ㅋㅋㅋ그림이 없으면 안되는거 아시죠?사실 있어도 기쁨이는 안되긴 합니다만

테이스팀은 라스바드님도 비슷한거 언급하시던데 다른거였네요.

그분은 테이스팀로드 - 스팀달러만으로 하루 살아보기 프로젝트라서 ㅎㅎㅎㅎ

문득 5600번 버스, 라는 제목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노랫말은 르캉님이 쓰셨겠지요. 그것이 시, 여도 좋겠지만 부를 수 있는 노래라면 더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합니다...

5600번 버스 때로는 앉아가고 때론 서서가고 다시는 안 탄다구 이 바득바득 갈다가도 금세 잊어버리고 다시 줄을 서고 그래서 나는 너를 그냥 보냈나봐 너는 항상 똑같으니까

테이스팀의 문구를 쓰고 문제점을 찾고 설문조사를 만들었따.

미처 힘을 빼지 못한 이유로 본의 아니게 소소한 재미와 마주하기도 합니다. 그걸 보고도 그냥 지나치거나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또, 그런 걸 보거나 연상이 되었을 때, 웃을 수 있는 것이 유머인데, 그 감각은 우리가 잃어버리기 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빨래를 개며 괜히 심통을 부렸다. 오리너구리처럼 '카악-'하고 소리를 낸다던가, '왜 이렇게 다 이것저것 부숴버리고 싶지' 하고 여동생에게 투덜거린다던가. 세상이 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다. 음, 정말 무의미하군!!

살아가는 게 다 그런 것 같습니다. 힘을 줄 때나, 또는 그 반대이거나 적절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또 우리의 뜻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게 인생이잖아요? 그러면서, 그 놈의 인생이란 것은 참으로 도도하고 고매한 척은 혼자서 다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얄밉기까지 합니다. 어차피 살아내는 건 난데,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걸 보면, 하여간 나의 자의식과는 또 다른 '의식의 존재'라고 할까요?

정리가 잘 안되네요. 저도 글을 읽지 않은 지가 오래되고, 말을 많이 하지 않은 이유겠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건 발견했지만 그냥 냅두기로 했어요 너무 글이 딱딱해서요 ㅋㅋㅋㅋㅋ 멋진 댓글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즐거운 시간~~ ^^
양꼬치 좋아하는 르캉님

세탁소에 CCTV돌릴 수도 없고 ㅎㅎ

그래서 소개팅 드레스코드 입었다는 말이였군요..

독서모임도 하고 열일 하시는군요!!

즐거운 하루 되세요!

ㅋㅋㅋㅋㄴㅋ감사합니다 쿨쿨님 덕분에 즐거운 시간 됐었습니다!

의식에 흐름에 따라 써내려간 글이 이다지조 매력 있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글이 마른다.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언어가 마른다.

멋진 표현입니다**

한강의 희랍어시간을 읽고 무한사랑에 빠졌습니다. 소년이온다와 채식주의자에 묻힌 그녀의 책들이 많이 읽히길 바랍니다^*^

희랍어시간... 그것도 읽어봐야겠군요. 의식의 흐름 좋아해요.

lekang님의 일상생활 넘 재미있게 읽었네요. ㅎ
즐거운 밤되시구요 한주도 즐겁게 보내세요^^

아이고, 기쁨이와 슬픔이의 줄다리기를 아슬아슬 지켜 보다가 15번에서 기쁨이 밥걱정을 내려놓지만 이미 마음으로는 이것저것 다 때려 부순 것 같은 꽥꽥적인 느낌. 혹은 느낌적인 꽥꽥...

분명히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내 마음만 바꿀 수 있는 것인데. 제발 손을 놔 달라고 간청해 보지만 사실은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요. 어휴, 발 땅에 닿으니까 놔요, 놓으라구요!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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