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서비스를 받으려면? 모범답안을 일러드립니다

in #kr6 years ago

“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요?”
훌쩍 큰 키의 중년 남자 승객이 뒤쪽 라운지로 와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을 청한다. 나는 그 승객이 아마도 화장실을 사용하러 왔으려니 짐작하고 물 한 잔 따라주고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 승객은 물을 다 마시고도 돌아가지 않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너무 건조해서 갈증이 나는데 물을 많이 마시면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해 못 마시겠노라 말하며, 얼른 물 한 잔을 더 청한다. 비행기는 이륙한 지 두어 시간만 지나면 기내 습도가 사하라 사막보다도 더 건조해진다. 화장실 걱정 말고 가능하면 물을 많이 마시라고 그에게 권했다. 때마침 야간비행이어서 대부분의 승객들은 모두 잠이 들었고 승무원도 절반은 휴식장소에서 쉬고 있는 참이었다. 항공기 2층 뒤쪽 라운지도 이용객 없이 간간이 화장실 가는 승객들만 들를 뿐 이었다.
나는 라운지 담당승무원과 커피를 마시며 다음 서비스 때까지 잠깐의 한가로움을 즐기던ㅐ 중이었다. 긴 야간비행 중의 이런 자투리 시간은 바쁘고 고단한 업무 중 숨을 고르는 달콤한 시간이다. 온밤을 꼬박 새고 가야 하는 야간비행. 같은 빠르기로 흐르는 시간일 테지만, 야간비행 때는 더 더디고 느리게 느껴진다. 이럴 때 누군가와 나누는 토막 대화는 지루한 시간을 금방 잊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승객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었다. 긴 비행시간을 견디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누군가와 나누는 기분 좋은 수다 같은 건 없다. (“기분 좋은[!] 수다”라고 했다.)
그렇지만 근래 꽤 유쾌하지 못한 일련의 사건 이후로 승객들과의 대화는 종종 그날의 논란으로 번지곤 해서, 가능하면 말을 줄이려는 경향이 생겼다. 회사에서도 승객과 대화를 많이 하지 말라는 지시를 가끔 내려보내곤 한다.
하지만 이 승객은 여느 승객들과는 많이 달랐다. 자리에 오래 앉았더니 피곤하다며 잠시 있다 가도 되는지 먼저 양해를 구하는 것이 아닌가. 쉬고 있는데 성가시게 하는 게 아닌지 조심스럽다며 워낙 일이 힘든걸 알기 때문에 승무원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는 거다. 우리는 휴식장소에서 충분히 쉬고 왔고, 다음 서비스를 준비하기까지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 있다 가도 된다고 말했다.
나와 라운지 담당 승무원 두 사람은 승객의 얘기를 적당히 맞장구치며 듣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내내 그 승객은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을 맞추고 그럴 때마다 미소를 지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내 웃으며 얘기를 나누는 승객이라니. 비지니스 승객과의 대화 때면 습관적으로 굳어지기 마련인데, 그의 눈길과 그의 미소는 우리 맘을 꽁꽁 싸매고 있던 긴장감을 다 풀어버릴 만큼 푸근했고, 어느새 우리는 그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고 있었다.
그 승객의 모습이 너무 좋아서 나는 그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는 얘기하는 내내 미소를 짓고 부드럽게 말했고, 우리가 하는 말에 적당히 맞장구도 치며 귀담아 듣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그는 승무원의 일이 어렵고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우리들의 처지에 깊이 공감하고 있음을 거듭 보여주어, 자신이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대화를 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나는 결국 그 손님에게 물었다. “실례된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외국에서 오래 살았거나 혹은 외국 국적이신가요?”
나는 그렇게 미소지으며 상대의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한국 남자를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런 표정과 말투로 얘기하는 사람은 대개 외국에서 태어나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곤 했다.
그 승객은 어찌 알았는지 되묻고는 학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노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일때문에 비행기를 매우 많이 타는데 우리 항공사 만큼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없다며 칭찬을 한다, 항상 좋은 서비스를 받아서 너무 감사하다고 인사까지 잊지 않고 말이다.
기내에서 뿐 아니라 내 입장을 고려하고 배려해주는 사람과의 대화는 참 편안하다. 게다가 일방적으로 존중을 먼저 보여야 하는 고객과의 대화에서 그런 대접을 받을땐 존중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더욱 더 좋은 대화를 만들어 나갈수 있다. 특히 서비스를 하는 도중에 그런 태도를 보이는 고객을 만날때면 더 관심을 갖게되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 애쓰게된다. 사람관계란건 다 인지상정이란게 있게 마련이니까.
우리는 회사에서 정한 규칙과 범위 안에서 승객이 요구하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우리도 사람인지라 상대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질수 밖에 없다. 오늘 이 승객처럼 배려와 존중의 태도로 승무원을 대하고, 승무원 이상으로 미소를 지으며 말하면 승무원들은 그런 승객들에게 더 마음이 갈수 밖에 없다.
나는 그 승객에게 그런 이유로 항상 더 좋은 서비스를 받는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함께 얘기를 나누던 동료도 그 모습에 감동받았다며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출장이나 여행을 가는 승객들이 묻는 질문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그중 하나가 바로 어떡하면 승무원에게 좋은 서비스를 받을수 있는가이다.
좋은 서비스? 과연 무엇이 좋은 서비스일까?
“오, 사랑스런 아가씨. 혹시 시간이 나면 커피 한 잔 부탁해도 될까요? 고마워요.”
백발의 우아한 할머니가 복도를 지나가는 나를 부르며 말했다.
깜짝 놀라서 쳐다보니 다시 한번 더 말한다. “당신 하던 일 다 끝내고, 시간이 될 때 가져다 줘도 괜찮아요.”
나는 하던 일을 잠깐 뒤로 미루고 그 할머니 커피부터 먼저 가져다 드렸다.
“이쁘구나. 고마워요. 사랑스런 아가씨.”
그날 비행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제일 먼 비행시간을 자랑하는 아틀란타를 가는 비행이었다. 나는 굳이 내 담당구역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할머니의 “어여쁜 아가씨”라며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몇번을 더 지나갔는지 모른다. 물론 지잘때마다 더 필요한 건 없는지, 어디 불편한 데는 없는지를 묻고 또 살폈다. 평소보다 더 걷고 더 일했는데도 덜 피곤했다. 그날은 더 많이 웃었고 동료들과도 꽤 즐거웠다. 난 다른 어떤 승객에게보다 더 많은 친근함을 표시했고, 그 할머니를 보며 더 많이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보며 역시 승무원은 외국인에게나 친절하다고 비꼴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승무원들이 내국인을 차별한다고, 외국인들에겐 친절한데 자국민들에겐 너무 불친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난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하지만 그들의 편견은 뜻밖에도 완강하다. 우린 외국인이건 내국인이건 똑같이 차별없이 대한다. 하지만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태도로 지시하는 사람들과 “미안하지만...” 또는 “....정말 고마워요”라는 말을 꼬박꼬박 덧붙이는 사람들을 차별없이 똑같이 대하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라운지를 지키던 동료와 나, 그리고 키 큰 그 승객과의 대화는 꽤 길게 이어졌다. 생수 한 통을 훌쩍 비우는 사이, 참 지루하게도 더디 가던 시간은 번개처럼 휙 지나갔다. 역시 즐거운 대화는 지루한 비행을 잊게 만드는 최고의 명약이다. 최고의 위로는 공감하고 이해받는 것임을 나는 그 승객과의 즐거운 대화를 통해 다시금 확인했다. 그 승객은 돌아오는 비행에서도 그날의 최고의 서비스를 받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모범답안은 어떨까?
“좋은 서비스를 받으려면 어떡하면 되나요?”
“네! 자신이 대접 받고 싶은만큼 상대를 대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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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글이네요. 어느 일에나 적용할 수 있을만한 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모든 일상이 마찬가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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