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방 이야기 #6

in #kr5 years ago (edited)

스노보드 데크는 제조하는 나라마다 그 성향에 있어 미세한 차이가 있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미국이나 유럽의 데크들은 카빙턴을 할 때 슬로프를 찢어나가는 느낌이 든다면, 일본의 데크들은 예리하게 베어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러한 차이는 데크를 제조한 각 나라마다 스키장의 설질이 조금씩 다른 것에서 기인하는 것 아닐까 추측하고는 했는데, 미국이나 유럽의 스키장들은 아마도 우리나라 스키장 보다 정설에 덜 열심이지 않을까 싶고, 그렇기에 고르지 못한 설면을 힘으로 갈라 나가는데 적합한 데크들을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반면 일본은 정설 비정설 슬로프가 나뉘어 있고, 캐나다 스키장들도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자연설의 적설량도 풍부해 설질에서만큼은 캐나다 휘슬러보다도 일본 나세코가 낫다는 의견도 많다. 여하튼 좋은 설질의 정돈된 슬로프에서 라이딩 하는 경우가 많으니 정교하게 돌아나가는 데크 제작에 심혈을 기울인 게 아닐까.

시즌방 식구들끼리 치맥 먹다 닭다리 들고 논쟁 후 결론 내린, 그저 뇌피셜에 불과하니 걸러 들어주시길 바란다.

굳이 데크의 제조국 얘기를 꺼낸 이유는 내가 데크를 바꿔나갔던 순서가 제조국 불명 -> 미국 -> 유럽 -> 일본 순이었기 때문이다.



10/11 Burton Custom X

9.jpg

생애 첫 데크의 기능적 한계를 절감하고, 더 잘 타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드디어 장프로의 세계에 입문했던 게 2010년이었다. 장프로는 장비만 프로 의 줄임말로서, 장비는 상급자들이 선호하는 것을 구비했지만 실력에는 자신이 없을 때! 혹시 모를 비난에서 자유롭고자 자주 입 밖에 내는 단어다.

본인이 입 밖에 낼 때는 겸손의 의미도 내포하지만, 혹 타인이 장프로라 본인을 지칭하면 조롱이나 비아냥일 확률이 99.9% 다. 물론 친한 사람들끼리는 친근함의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버튼의 커스텀 엑스를 들이기 전까지는 라이딩 명기라고 검증된 데크들을 중고로 입양해왔다. 그런데 중고를 입양하기만 하면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서 꼭 엄청난 데크들이 새롭게 등장하고는 했다. 신상 데크들은 어김없이 새로운 소재와 기술이 적용된 채 등장했고, 시중에 풀리기라도 하면 관련 커뮤니티에 시승 후기들이 우후죽순 올라왔는데, 후기들의 내용은 하나같이 신세계를 담고 있었다.

안되던 수준의 카빙이 데크 바꾸니 저절로 됩니다.

실력이 안되는데 그게 저절로 될 리가 있나. 생각하면서도 이미 뇌는 한번 타보고 싶다는 욕망에 지배 당하기를 여러 번. 항상 선동당하지 말고, 타보고 진짜면 내가 선동하자에 생각이 다다라 결국 데크를 지르기에 이르렀다.

5.jpg
이 데크와도 오래 오래 행복했다.



Custom X 를 선택했던 이유는

당시에는 Burton 의 데크가 세계 최고인 줄 알았고,
Burton 의 데크가 세계 최고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라이딩 용으로 굉장히 훌륭하다는 평이 많았다.

신터드 베이스 (Sintered Base) 를 적용했고,
스테인리스 엣지 장착,
카본 i-beam 내장,
EST 바인딩 시스템 적용

등 뭔가 늘어놓자면 참 많은데, 그저 라이딩에 그렇게 좋다고들 호들갑이니 너무 타보고 싶었다.

Burton 에 대해서는 글이 너무 길어질 테니 일단 차치하고, 데크 자체에 집중해보자.



신터드 베이스 : Sintered Bases
데크의 베이스는 설면과 맞닿는 밑바닥을 일컫는다. 보드의 데크가 눈 위에서 미끄러지는 원리는 데크와 설면 사이에 마찰이 일어나면서 마찰열에 의해 눈이 녹게 되고, 미세하게 수막층이 형성되면 그 수막층 위를 데크가 타고 넘어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마찰 계수가 높으면 데크가 잘 나가지 않는다. 따라서 마찰 계수를 줄이기 위해 데크의 밑바닥 표면을 왁싱으로 관리해주어야 한다. 이 왁싱 작업 시 베이스가 왁스를 듬뿍 머금느냐, 많이 담지 못하느냐는 소재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고, 왁싱 정도에 따라 데크의 베이스 면으로 활주 시 속도 차이가 나게 된다.

왁싱은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라 웬만한 시즌방들은 전부 다리미를 구비하고 있고, 우리 시즌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즌 초에는 멤버 개개인이 각자의 데크를 애지중지 왁싱하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왁싱 인원이 narrow down 되고, 시간이 더 흐르면 장비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멤버가 왁싱을 전담하고는 했다.



베이스 얘기로 돌아가자면, 데크의 베이스 소재 형태에 따라 신터드 베이스, 익스트루디드 베이스가 있는데, 둘 다 고분자 폴리에틸렌으로 만든다. 차이점이 있다면

신터드 베이스는 폴리에틸렌을 용점까지 완전히 녹이지 않고 반고체 형태까지만 가열한 후 무수히 많은 레이어를 겹쳐 식힌 다음, 절편 형태로 잘라낸 것이다.

익스트루디드 베이스는 폴리에틸렌을 용점까지 완전히 녹여 액체 상태에서 주조한 것이다.

6.jpg

7.jpg당최 포스팅이 뭐라고 PPT 로 그림까지...

따라서 익스트루디드 베이스는 신터드 베이스 대비 분자구조가 조밀해진다. 파라핀 성분의 왁스로 왁싱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틈이 더 넓은 신터드 베이스가 왁스를 더 많이 머금겠다. 그러면 왁싱 효과도 더 오래가겠지. 활주에 있어 속도의 손실을 오랜 시간 방지할 수 있다.

신터드 베이스의 특징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제조 공정 감안 시 원가가 비싸고,
쉽게 손상이 가지 않으며,
왁스를 대단히 잘 흡수한다.
오랜 시간 활주력이 보장되기에,

주로 상급자들이 선호하는 데크의 베이스는 전부 신터드 베이스가 적용됐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길다...
엣지, 카본빔, ETS 는 다음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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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십니다. :)

벌써 보드의 계절이 다가왔군요.
저도 어서 개인데크를 장만하고 싶습니다 ㅎㅎ

싸게 중고로 하나 장만하시는 게 돈 버는 길...^^

저는 장프로도 못되네요. 장비조차 없었으니 ㅜㅜ
거기다 이런 세세한 정보까지는 전혀 몰랐으니.
마첼린님 덕에 보드에 관해 공부 많이 하는것 같네요 ㅎㅎ

한참 보드 탈 때는 이런 거 알아보는 게 참 재밌었어요.ㅎㅎ

마첼린 님의 정성 가득한 글들 잘봤습니다 ㅎㅎㅎ
살질에 따라 데크가 다를수 있군요!
디클릭 누르고 갑니다

이왕 쓰는 거 정성들여야죠.ㅎㅎㅎ
아무래도 진지하게 타다보면 이런 저런 조건 다 따지게 되더라고요. xD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Hi @machel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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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이 안되는데 그게 저절로 될 리가 있나. 생각하면서도 이미 뇌는 한번 타보고 싶다는 욕망에 지배 당하기를 여러 번. 항상 선동당하지 말고, 타보고 진짜면 내가 선동하자에 생각이 다다라 결국 데크를 지르기에 이르렀다.

아니 이렇게 탁월하게 합리화하는 방법이 있었다니
상상도 못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
다음 기회에 저도 이 방법을 사용해보겠습니다 ㅋㅋㅋㅋ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지름은 사랑입니다.♡

자주 가는분들은 자기 장비 있는게 더 경제적일거같아요~
오늘도 디클릭!

자주 가겠다 싶으면 눈 딱 감고 장비 부터 준비해야해요.ㅎㅎ
그래야 빨리 늘기도 하고요. :)

흡수되는 것 보다 긁어 나오는 양이 훨씬 더 많은 것 같은데요? ^^

저렇게 안하면 왁스를 채울 방법이 없어요.ㅎㅎㅎ
한가지 비밀은, 정말 알뜰살뜰한 헝그리 보더들의 경우 긁혀 나온 왁스를 녹여서 다시 재사용하기도 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밀인가요? ^^
당연히 그렇게 할 줄 알았는데, 다 그러는 건 아닌 모양이군요 ㅎㅎ

스노우보드나 서핑 한번 해보고싶은데 기회가 잘 안생기네요 ㅠ 잘타시는 분들 부러워용.

턴만 해두면 진짜 괜찮은 레저에요!
흥미 붙이시면 겨울이 짧게 느껴지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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