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집사 지원하다

in #kr6 years ago (edited)

외갓집에 사는 고양이들이 있다. 시골에 있는 고양이들이 그렇듯 얘들도 자유로운 영혼인지라 할머니와 삼촌이 밥을 챙겨주시기는 하지만 자는 곳 노는 곳 다 지들 맘대로다. 주로 농기구를 두는 헛간이나 비닐하우스 안에서 생활하고 새끼를 낳으면 이불을 깔아주고 수고한 어미에게 고기 섞은 밥을 챙겨주는 정도....

1. 첫 만남


외갓집을 가도 고양이들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아서 사실 나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구정에 외갓집에서 잠을 자려는데 밖에서 고양이가 울기 시작했다. 밖에 내다보니 어미 고양이가 그렇게 운다. 몸이 불편하지는 않아보이는데 할머니한테 여쭤봐도 모르겠다 하시고, 그러다 말겠지 싶어 다시 누웠는데 그치지를 않더라. 그러기를 한시간...안되겠어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뭔가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같은데 어디가 아픈거 같지는 않고....내가 밖에 나가니 나를 보고 에옹하면서 따라오라는거 같더니 안쓰는 물건을 두는 창고방 앞에서 나를 쳐다보고 운다. 

"저기 뭐가 있다고?"
"에옹~"
"알았어 알았어"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는데 울던 아이보다 훨씬 작은 아이가 방에서 튀어나온다. 저녁에 할머니가 뭘 가지러 들어가셨었는데 새끼 한마리가 따라들어갔다가 안에 갇혔었나보다. 그렇게 튀어나온 아이와 함께 어미고양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귀여운 녀석들...어미는 새끼가 사라져서 어디갔나 찾다가 거기 있는걸 발견은 했는데 문은 열수가 없고 우리한테 문열어달라고 그렇게 울었던 것이다. 그 날은 집안에 있는 사람한테 도움을 요청할 정도면 사람한테 거부감이 있지는 않나보다 까지만 생각했었다. 

2.재회


5월이 되고 외할머니댁에 다시 들렀다. 그때 그 놈들이 잘 있는지 궁금했는데 삼촌이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고 두마리를 데려다(잡아다에 가깝다) 주셨다. 총 네마리를 낳았는데 두마리는 줄무늬, 두마리는 턱시도 였다. 태어난 지 두달 정도 되었을 때였는데 사람 손을 안타서 그 중 두마리를 집안에 들여다 놓자마자 숨고 도망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때 찍은 줄무늬 사진이 지금 내 프사 속 주인공이다. 어찌나 이쁜지 당분간 동물과 살 생각이 없던 나도 혹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날로 바로 데려올까 생각했으나 아기가 갑자기 가족들과 이별 하는것도 걸리고, 화장실이나 사료는 바로 구매한다고 하더라도 당장 이동에 필요한 케이지도 없었다. 좀 친해질 시간 필요한것 같아서 그날은 패스!! 잠시 내 팔에서 눈을 감고 있을 때는 마음이 녹는것 같았으나 레드썬!!을 외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지난주 한장의 사진이 도착했으니 바로 이것이다.

할머니 손에 안긴 턱시도. 나보고 계속 고양이를 키우라던 사촌동생이 날 꼬시려고 이 사진을 찍어 보냈다.

3. 기다려라 내가 간다


프사 속 아이가 될지 이 아이가 될지 모르겠지만 외갓집을 가기로 했다. 또 다른 어미 고양이가 이틀 전 또 새끼를 낳았다고 하여 어미 줄 캔간식 몇 개와 맛을 보면 정신을 못차린다는 추르, 그리고 3개월 이후 아이들부터 먹을 수 있다는 큰 사료 한포대도 구입, 그리고 어제 아침 일어나자마자 출발!! 

두시간을 열심히 달려갔다. 아침도 안먹고 갔는데 고양이들을 찾는 내게 이모가 그러신다. 애들 집 나갔다고....어제 아침에 어미가 애들 아침도 안먹이고 넷을 다 데리고 나갔는데 오늘 낮까지 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이번에 새끼낳은 다른 애 챙기느라  그 아이만 고기주고 했더니 삐져서 나간거 같다고 하신다. 이게 무슨일....

우선 밥을 먹고 기다렸다.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 올까싶어 삼겹살을 구웠다. 오라는 애들은 안오고 새끼낳은 어미가 와서 고기 달라 난리다. 어미를 챙겨주고 상을 다 치워도 애들은 오지 않는다. 누가 나 온다고 소문냈나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오후 3시가 되었다. 아침 일찍부터 준비해서 왔더니 피곤해서 누워있는데 이모가 부른다. 애들 왔다고... 막 뛰어나가니 보인 풍경...

앞에 널부러져 있는 아이가 어미다

4. 포획


으헝헝. 이쁘다. 이뻐 죽겠다. 어디를 다녀왔는지는 모르지만 밤새 집 밖에 있던 아이들이라 배가 고플것 같아 사료에 추르를 섞어두고 밥그릇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앉았다. 나에 대한 경계를 풀려고 맨바닥에 퍼질러 앉아 눈만 껌뻑껌뻑. 십분... 이십분... 한시간...두시간...그 녀석들은 저만치서 나를 흘끔흘끔 쳐다보고 다가올듯말듯 오지않는다. 

약간 모자란 애처럼 바닥에 앉아 멍하니 고양이를 기다리던 내 모습을 지켜보던 이모가 나섰다. 참새를 잡는것도 아닌데 밥그릇 위에 소쿠리를 막대에 기대서 세워놓고 끈으로 잡아당기신단다. ㅋㅋ 올리가 없지...그러다 안되니 밭에서 일하시던 삼촌을 불러들이신다. 나는 자연스럽게 경계를 풀고 싶었지만 그러다 날 샌다고 말려도 듣지를 않으신다. 삼촌도 평소같으면 안오실텐데 내가 오면서 사다드린 담배 한보루가 맘에 드셨나보다. 외할머니까지 합세해서 생고기까지 가져다 어미 고양이를 꼬신다. 다들 피해있으라 하셔서 담장 뒷쪽에 쭈구리처럼 있는데 삼촌이 잡았다고 부르신다. 신나서 달려가니 턱시도 한마리가 버둥거린다. 삼촌에게 받아서 몸통을 잡으려는 찰라 촥촥!!

죽일테다....아이의 반항적인 표정을 보라.ㅋㅋㅋ 고무장갑을 끼고 잡아야 안다친다.

영광의 상처

손이 긁힌건 긁힌거고 놓치지 않게 잡고 있다가 급한대로 새장같은 케이지에 넣어두니 애가 난리다. 에옹에옹~ 아이 혼자 그러는게 아니라 저쪽에서 어미를 필두로 다른 형제들까지 에옹에옹~ 고양이가 시위를 하면 저런것이겠구나 싶은데 나도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얘를 어째야하나....

나는 사실 고양이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었다. 2년전 16년을 모시던 개를 영영 보내고 동물을 키우지 말자 했는데 결심이 약해졌고, 시골에서 자라면 아무래도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니 내가 집사가 되어 잘 보살펴주고 서로 의지하고 살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근데 형제들이랑 장난치며 신나게 뛰어놀고 사람 손을 타지않아 너무 무서워하니 내가 생각한 것이 얘한테도 그런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만 좋은것은 소용이 없었다. 애야 겁이 나니 그럴테지만 사람 손을 너무 거부하니 그게 적응될 때까지 목욕이며 병원가는거며 당장 집에 데려가서 오늘 저녁을 생각하니 쟤도 울고 나도 울것 같았다. 더 어릴때 데리고 왔으면 오히려 적응이 쉬웠을지 모르겠는데 지금은 산이며 들이며 신나게 뛰어노는게 일이라 집안에만 있게 하는것도 걸렸다.

그 와중에 아이는 에옹거리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갑자기 깨더니 안에 넣어둔 사료를 먹는다.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고민했다. 

울다가 자다가 먹다가 아기는 아기다

5. 나는 어찌할것인가


결론은 포기하는 것으로..... 엄청난 의지를 갖고 시작해도 쉬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주변에서 나를 보고 나만큼 돌 볼 자신이 없어서 동물 쉽게 못키우겠다는 얘기도 했었다. 아이가 주는 기쁨이 무엇보다 클 것이라는 것도 잘 알지만 보살피면서 나도 울고싶은 때도 많았고(실제로 울기도...ㅜㅜ) 아프거나 행복하지 않아 보이는 아이를 보면 마음이 많이 아팠다. 데려와서 키우다가 힘들다고 시골로 다시 돌려보낼 수도 없는일. 자꾸 망설이는 것을 보면 내가 이 아이를 감당할 정신상태가 아닌것 같기도 하다. 

결정을 하고 아이를 놓아주었다. 아이는 문이 열린 줄도 모르고 한참을 있다가 겨우 알고는 쏜살같이 뛰어나가더니 어느새 자기 형제들과 뒹굴고 놀고 있다. 그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시위하던 아이들

더 있다가는 내 마음이 다시 갈팡질팡할까 저녁을 먹고 가라는 할머니의 말씀을 뒤로하고 집으로 왔다. 계속 밖에서 고양이 보느라 몰랐는데 무척 피곤해서 오는 내내 졸렸다. 집에 와서 잘한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데려오지 않은 것에 대한 변명같아 기분도 엉망이었다. 에잇! 잠이나 자자.

 그렇게 오늘이 되었다. 아직도 어제 보았던 고양이들이 너무 예뻐서 마음이 말랑말랑하다. 데리고 올걸 그랬나라는 생각도 들고...하지만 나 혼자 겪을것이 아닌 바에야 후회보다는 아쉬움이 낫다. 

6. 새로운 가족을 기다리며


며칠 전에 동생이 유기묘를 입양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장모종의 이쁜 아이들은 입양하려는 사람들이 많아 대기를 해야한다고 한다. 동생도 원래는 그런 아이를 데려오고 싶었는데 보호소에 갔다가 표범같이 생긴 아이에게 반했단다. (정확히는 올케가 반한것이지만....) 아직 공고기간이라 원래 주인이 나타날지 몰라 기간이 끝나면 입양 절차를 밟아야 한대서 동생 가족은 현재 대기중이다. 

잘했다고, 나도 많이 이뻐해주겠노라 했는데 데리고 오면 자주 가서 보고 고양이랑 좀 친해져 봐야겠다. 그리고나서 집사 지원을 다시 고민해봐야지. 이래놓고 갑자기 새로운 식구라며 신나서 글을 쓸지도 모르겠지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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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이 어떤 모습을 하건 다 사랑스럽긴 합니다만,
저는 저 턱시도 친구들은 고유 품종으로 등재해도
좋겠다 싶은데 말이죠.

뭐 그건 그거고..ㅋ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천수를 누리며 함께 지내느냐,
아니면 시골에서 러프&프리하게 지내느냐.

무엇이 행복한지는 저 친구들만 알겠지 싶습니다.
그래도 할머니 댁에서도 많이 사랑받는 것 같네요.

말씀대로 무엇이 행복한지는 저 아이들만 알겠죠. 제가 데리고 왔더라도 함께 지내며 저도 그 고민을 계속 했을거같기도 하고...

귀찮다고 하셔도 할머니랑 삼촌이 잘 챙기시는데 저도 한번씩 가서 애들이랑 안면 터야겠어요..ㅋㅋ
그나저나 신기한게 어떻게 저렇게 다른 4마리가 한번에 태어나는건지 저는 그게 너무 희한해요. 턱시도와 줄무늬....너무 미스테리....ㅋㅋㅋㅋ

저희 루띠 엄마 아빠도 순백색의 스피츠인데
루띠는 누렇더군요 ㅎㅎㅎ
친자검사라도 해보라고 해야하나...

근데 고양이 친구들은 정말 너무 확연하네요 과연 미스테리입니다.

친자검사....진실은 저 너머에...ㅋㅋㅋ

사진은 너무 사랑스러운데, 글은 조금 슬프네요..! 안타깝지만 형제들 틈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믿으려구요. 맛난 사료와 간식이나 조달하면서 애들이 잘 크는거 지켜봐야죠.
지들끼리 뒹굴면서 노는거 보면 저렇게 크는게 행복하겠구나 싶은데 저도 집사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ㅋㅋㅋ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죠...
곧 집사의 길이 열릴 것이라 믿습니다... 화이팅! ㅋ

저 작은 몸으로 온힘을 다해 반항하는거 보니 제가 기가 좀 죽었나봅니다. 저 원래 그런 사람 아닌데...ㅋㅋ
의지를 버리지 않았으니 눈과 귀를 열고 두리번두리번 해야죠!! 동생 가족보면서 유기동물 입양도 생각해 봅니다. 뭐가 됐든 스팀잇에 먼저 보고하겠습니다. 응원 감사해요~^^

집사는 고양이가 선택한데요 ㅎㅎㅎ 간택을 기다리시면 좋은 냥이가 딱 찍으실 겁니다

흐음..간식을 들고 길거리를 방황해야하나 싶네요..이리저리...왔다갔다....
간택 전까지 집사로서의 덕목을 부지런히 갖춰보겠습니다. ^^

고양이를 키우다 보면 행복할때도 있지만 때론 가슴이 아련해요..
자기엄마만큼 대해주지 못하니...
너무나 사랑스럽고.. 가끔 미안하기도 하고 그러네요..
언젠가 집사 간택 되리라 생각되네요 ㅎㅎㅎ
겨울을 생각해서 집사를 따라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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