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래의 인문학 강의[014]: 제1장 역사 || 사회와 개인 2
제1장 역사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 그렇다면 오늘날, 역사란 무엇인가?
▷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 사회와 개인 1 : 객관적일 수 없는 역사의 객관성
▶ 사회와 개인 2 : 개인은 그가 속한 사회의 대변인이다
개인은 그가 속한 사회의 대변인이다
강의에서는 이런 설명도 빠뜨리지 않습니다만 글로 쓸 때는 망설여집니다.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혼자 힘으로 완독하려는 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인데요, 제2장 「사회와 개인」은 중언부언한 부분이 좀 있습니다. 애매한 표현도 있고요. 그러니 자구 하나하나를 이해하려고 너무 애쓰지 마시라는 겁니다.
예를 들면 ‘벤담적인 개혁가’라는 말이 나옵니다. 영어로는 Benthamite reformer인데요, 의미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벤담은 열다섯에 대학을 졸업해서 여든네 살까지 살았던 사람입니다. 대단한 천재였지요. 게다가 집안도 부자였으니 하고 싶은 걸 거의 다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측면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가 일생동안 집중했던 일 가운데 하나는 파놉티콘입니다. 민간죄수수용시설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였어요. 그것을 현실화시키려고 무척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법률가로서는 관습법을 성문법으로 바꾸려고[reform] 무척 노력했던 사람이에요. 그는 잘 알려진 대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했다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를 간단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벤담 하면 공리주의니까 공리주의적인 개혁가라고 이해해도 좋지 않겠느냐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럴 거면 ‘Benthamite’ 대신에 ‘utilitarian’이라는 용어를 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굳이 ‘벤담적인’이라는 의미가 담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런 카의 의도를 대충 짐작할 수는 있지만 아주 분명하지는 않습니다.
이 책에 담긴 것이 원래 강의 내용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긴 합니다. 구술성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중언부언이거든요. 말은 하자마자 사라집니다. 청중 입장에서는 조금만 딴생각을 해도 맥을 놓칩니다. 글이라면 앞으로 넘겨서 다시 읽어보면 되겠지만 강의를 듣는 동안에는 그게 안 됩니다. 그러니 이렇게 까다로운 주제를 다룰 때에는 비슷한 내용을 되풀이하면서 설명할 필요가 있어요. 게다가 청중들의 반응에 어느 정도 적응하지 않을 수 없어요. 설득력이 약하다는 느낌이 들면 다른 예를 통해 한 번 더 설명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강의 내용을 글로 옮길 때에는 아주 잘 다듬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구술성의 특징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것을 감안하고 읽을 필요가 있어요.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이 장의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러나 어떤 주제에 대한 직관력과 통찰력을 얻고 싶다면 핵심만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소한 주변까지 낱낱이 짚어보아야 해요. 그러고 나면 그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저자의 감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앞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지요. 그 어떤 사실에 대해서 설명하든 ‘순수하게 있었던 그대로’일 수는 없습니다. 언제나 인식하는 사람(저자)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굴절되기 때문이지요. 저자의 입장을 알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카도 이 장에서 그런 예를 많이 듭니다.
맨 먼저 그로트George Grote, 1794~1871의 『그리스 역사History of Greece』와 몸젠Theodor Mommsen, 1817~1903의 『로마사History of Rome』(1854~1856)의 경우를 예로 듭니다. 그 부분을 함께 읽어볼까요. ‘역사란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이니 좀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1840년대에 글을 쓴 계몽적이고 급진적인 은행가 그로트는 정치적으로 진보적이었던 성장하는 영국 중간계급의 열망을 구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아테네 민주정을 이상화한 저서에서 페리클레스기원전 457~429를 벤담적인 개혁가로 묘사했고 …(중략)… 그로트가 아테네의 노예제 문제를 무시한 것은 그가 속했던 중간계급이 영국의 새로운 공장 노동자 계급의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 해도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입니다. 테오도르 몸젠은 굴욕적이며 지리멸렬한 1848~1849년의 독일혁명에 환멸을 느낀 독일의 자유주의자였습니다. 현실정치Realpolotik라는 용어와 개념이 탄생했던 시기인 1850년대에 글을 썼던 몸젠은 독일인들이 그들의 정치적 열망을 실현시키지 못한 채 남겨놓은 혼란을 깨끗이 청소해줄 강력한 인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중략)… 우리가 그의 역사책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배경을 감안해야 합니다. 카이사르를 이상화한 것은 독일을 파멸에서 구해줄 강력한 인물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고, 법률가이자 정치가인 키케로기원전 106~기원전 43를 쓸모없는 수다쟁이이며 교활하고 우유부단한 인간으로 그린 것은 마치 그가 1848년에 프랑크푸르트의 바울 성당 토론회장에서 곧장 걸어나온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이지요.[1]
그러니까 이 두 종의 역사책은 그리스사와 로마사이지만 동시에 거기에서 저자의 시대인 1840년대 철학적 급진주의자와 1848년 독일의 자유주의자의 열망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명을 읽고서야 몸젠의 『로마사』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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