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단상] 기대 이상의 경험과 이하의 경험

in #kr5 years ago (edited)

9월에 이어(관련 포스팅: https://steemit.com/kr/@momoswims/2018-9), 10월과 11월에도 개봉작을 많이 봤다.

특히 기억 남는 것만 말하자면, 기대 이하의 음악영화 두 편이 있었고(<스타 이즈 본>과 <보헤미안 랩소디>) 기대를 알맞게 충족하는 영화 한 편(<퍼스트맨>)과 무방비 상태로 있던 나를 놀라게 한 영화 한 편(<프리다의 그해 여름>)이 있었다. 낮은 기대감을 꺾어 겸연쩍은 마음이 들게 한 영화도 세 편 가량(<미쓰백>과 <툴리>, 그리고 <친애하는 우리 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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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프리다의 그해 여름>)

유난히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에 관람 전의 기대감이 많이 작용한 시기였던 것 같다. 개봉작에 대한 포털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있는 평이 아닌, 지인의 사적이고 구체적인 평을 들을 기회가 많아져서일까. (주변에 영화 일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여튼, 이렇게 모아 생각하니 사전의 기대감이라는 게 결과적인 평가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큰 것 같다.

‘너무 좋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정말 너무 좋네’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 정돈 아닌데?’라고 말하는 게 쉽고, ‘별로’라는 말을 들은 뒤엔 ‘정말 별로네’라고 말하는 것보다 역시 ‘그렇게 별로는 아닌데?’라고 말하는 게 쉬운 것 같다. 여기서 ‘쉽다’는 말은 힘들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사롭게 그런 경향이 있다는 의미다.

이런 경향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첫째, 그 영화가 가진 장점 혹은 단점을 두둔하기 위해서. 완전히 나쁘거나 완전히 좋은 영화도 간혹 있지만 대부분의 영화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그에 대해 좋다고’만’한다면 자신이 발견한 단점도 짚어 알리고 싶어지고, 별로라고’만’ 한다면 이 영화에도 나름 좋은 점이 있다고 대신 변명해주고 싶어진다. 둘째, 다른 사람과 다른, 더 정확히 말하면 흔치 않은 의견을 보유하기 위해서. 이건 꼭 영화만이 아니라 많은 분야에 적용되는 힙스터의 성질이다.

개별 영화에 대한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선배들로부터 <스타 이즈 본>에 대한 감탄을 듣지 않았더라면,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국내 인기가 이렇게 높지 않았더라면, 두 영화에 대한 내 점수가 0.5점은 높아지지 않았을까? 확신은 못하겠지만 가능성은 있다.

선배들이 <스타 이즈 본>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여 이야기적 감동을 기대했으나 상투적이며 와닿지 않는 이야기였고, <보헤미안 랩소디>를 한껏 부푼 마음으로 기대하는 대중의 분위기를 보고 ‘굉장한 웰메이드 음악영화인가 보다’고 넘겨짚어 생각했으나 예술적으로든 기술적으로든 ‘웰메이드’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두 영화 모두 괜찮은 점도 있는데 각각 ‘감동적인 이야기’와 ‘웰메이드’일 거란 기대에선 벗어나 있었고, 이것이 두 영화에 대한 나의 전체적인 느낌을 지배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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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스타 이즈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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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보헤미안 랩소디>)

반대로 사전의 기대감이 낮았기에 평이 더 좋아진 것일 거라는 의심이 드는 영화도 있다. 위에서 <미쓰백>과 <툴리>, 그리고 <친애하는 우리 아이>를 언급했는데, 특히 <툴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 여럿이 <툴리>를 나보다 먼저 봤는데, 평이 썩 좋지 않았다. 여성인 두 분은 공포영화라는 비유를 썼다. 육아에 대한 고통이 너무 고통스럽게 표현되어 있어 자신까지 고통스러워졌다는 말 같았다. 남성 한 분은 ‘평작’이라고 간단명료하게 이 영화를 정리했고, 다른 남성 한 분은 이상한 요약(결국 삶은 아름답다?)으로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낮춰주었다.

이후 낮은 기대가 동반된 묘한 호기심을 갖고 <툴리>를 봤는데, 아니 웬걸. 이 영화는 육아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영화도, 결국 삶은 아름답다고 말하는 영화도 아닌데?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자아에 대한 영화이고, 자괴와 후회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데? 머리가 띵해지며 이 영화를 낮게 평한 분들과 다시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자만한 생각이란 걸 안다. 저마다의 생각과 취향이 있는 거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그건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저, 이 영화의 장점을 얘기하지 않는 이들에게 내가 발견한 장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두둔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동료들의 의견 중 결말 부분이 허술하다는 것도 있었는데, 이에는 몹시 동의한다. 만약 동료들이 그럼에도 이 영화를 높이 평했다면, 나는 결말의 허술함에 집중해 이 영화를 낮게 평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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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툴리>)

타인을 통해 기대감의 높낮이가 결정된 사례만 말했지만, 기대감이 꼭 그렇게 형성되는 것만은 아니다. 아무 정보가 없으면 기대감이 無일 수 있고, 외부 정보가 있어도 시큰둥하게 영향을 받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 ‘정보의 바다’ 시대에 기대감이 형성되지 않는 건 드문 일이나, 그와 맞물려 기대감과 상관 없이 좋은 영화가 있다. 물론 기대감과 상관 없이 나쁜 영화도 있다. 최근 개봉작 중 기대감과 상관 없이 좋았던 영화는 <프리다의 그해 여름>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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