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총수일가의 '사과'와 직원들이 말하는 '사과'

in #kr6 years ago

Screenshot_2.jpg

7번. 대한항공 회장 부인이자 일우재단 이명희 이사장이 상습폭행 건으로 28일 검찰에 출두하면서 '죄송하다'고 말한 횟수다.

6번. 물컵 투척 사건으로 취재진 앞에 선 딸 조현민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죄송하다'고 말한 횟수다.

"땅콩 회항"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도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로 고개를 숙였다. 사과 이유는 '사회 물의를 일으켜서'다.

_101806014_origin_.jpg

대한항공 직원들은 이들의 사과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현직 대한항공 부기장, 남녀승무원, 사무직 출신 등 5인을 만났다.

진에어 운명 어떻게 될까… 과거 사례 살펴보니
시위참여 대한항공 직원들 '이 경험이 나를 바꿨다'
대한항공 직원이 보는 대한항공 사태
벤데타 가면을 쓴 승무원 B씨가 한숨을 푹 쉬더니, 지난 달 24일 공개된 이명희 동영상에 관해 입을 열었다.

동영상 속 이 씨는 공사 현장의 여성 인부를 밀치는데, 이를 말리는 남성 인부의 서류뭉치도 빼앗아 내팽개친다.

B씨는 "내가 저 당사자였으면 어땠을지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_101803775_screenshot_2018-05-30_14_56_58.png

언론을 통해 대한항공 조 씨 일가의 갑질 사례가 계속 나왔다. 사내에서는 '곪은 게 터졌다'는 분위기가 다수라고 했다.

그동안 그들은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바른 말을 했다가 찍혀 진급을 못하고, 신입들이 주로 맡는 이코노미석만 담당하는 사례도 목격했다고도 했다.

기장 E씨 역시 "본사 온라인 게시판에 처벌 징계가 올라오면 직원들이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많이 느낀다"며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입사할 때와 달리 마음은 점점 좁아졌다. 남을 돌아볼 수가 없었다.

승무원 D씨는 "본보기로 부당함을 당할 수 있으니 가만 있으라"라는 이야기를 신입 때 선배들이 해줬다고 했다.

또 "땅콩 회항" 때도 "편을 들면 안티로 찍힐까봐 아무도 나설 수 없는 분위기였다"고도 전했다.

기내에서처럼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있던 그는 이 이야기를 하자 불끈 주먹을 쥐었다.

변화에 힘을 실어준 '시민들'의 목소리
4년 전 부조리를 바라볼 수 밖에 없던 대한항공 직원들은 이제 '조양호 일가 퇴진'이라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용기를 북돋아 준 것은 당사자들이 아닌 '비당사자'인 시민들이었다.

함께 갑질에 분노하는 사람들을 보며 C씨는 감회가 새로웠다고 밝혔다. 그는 "인터넷 댓글을 보고 내가 순응적이었고 잘못 생각했구나 반성했다"고 회상했다.

지금까지 네 차례 진행된 대한항공 집회에는 일반 시민도 자리했다.

서울역 광장에서 열렸던 대한항공 두 번째 시위 현장에서 만난 시민 최 모 씨는 "대한항공 직원은 아니지만 뉴스를 보면서 힘을 보태야겠다"고 생각해서 나왔다고 했다. 또 "이건 우리사회 갑질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했다.

_101498630_origin_.jpg

조 씨 일가의 사과
'물컵 투척' 사건 논란이 불거지자, 조현민 전 전무는 당시 전체 직원들에게 "업무에 대한 열정에 집중하다 보니 경솔했다"며 사과 이메일을 보냈다.

동시에 변호사를 선임해 경찰 수사 등을 준비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지난 4월 22일 고개를 숙이며 두 딸을 현 보직에서 물러나게 하겠다며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땅콩 회항 대한항공 공식 사과문 이후 4차례에 걸친 대한항공 측의 사과였다.

_101803611_origin_.jpg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4년 전 땅콩회항 사건과 별다를 게 없다고 '복붙사과'라고 평하는 이들이 많았다. 당시 '사과'하며 대한항공 부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던 조현아는 3월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한 상태였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진정성 없는 사과문을 철회해달라'는 글도 올라왔다.

인터뷰에 응한 직원들 대다수는 결국 달라진 것이 없다고 평했다.

사무직 출신 C씨는 "계속해서 논란이 이어졌지만 막상 직원 만을 대상으로 하는 해명이나 사과 절차는 없었다"고 밝혔다.

조 씨 일가는 탈세, 밀수, 불법 고용을 의혹도 받고 있지만 경찰 조사 외에는 다른 해명을 하지는 않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들, 계속해서 '사과' 요구
조양호 회장 일가는 왜 여전히 '사과하라'고 외치는 대한항공 직원들을 직접 찾아가지 않는 것일까.

이에 대해 고려대학교 글로벌경영학부 송수진 교수는 "남들보다 우위에 있고 자신의 감정만 중요해지는 자기애적 성격이 형성되면 타인의 감정 상황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다"라고 설명했다.

또, "직원과 오너는 협력관계에 있는 파트너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언어학자 바티스텔라는 저서 <공개 사과의 기술>을 통해 사과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 과정에는 사과를 받는 쪽과의 소통이 포함되며 '잘못된 행위를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자책을 분명하게 표시하되 앞으로 바른 행동을 하겠다고 약속'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_101803771_screenshot_2018-05-30_14_56_10.png

일각에서는 '조양호 일가 퇴진'을 외치며 시위에 나선 대한항공 직원들을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시위한다고 사과를 받아내기도 어렵고, 경영진이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

그러나 인터뷰에 나선 대한항공 직원들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목소리를 높였던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부기장 A씨는 '이 일이 두렵지는 않냐'는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몇 초 뒤 입을 연 그는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개인으로는 목소리를 내는게 참 두려웠지만...그래도 모두 한 목소리를 내면 언젠가 두려워해야할 사람이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Coin Marketplace

STEEM 0.30
TRX 0.12
JST 0.033
BTC 64344.02
ETH 3142.36
USDT 1.00
SBD 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