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없이 영화보기 #014] 여러분의 시간은 돈보다 더 소중합니다 (+영어 내면의 소리)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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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경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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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다영님 글을 잘 이해를 못했는지 의문이 생겨서요
일본어 공부하는 친구를 만났는데요
그 친구는 일본어 학원을 다니고 어느정도 레벨이되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잊지않으려고한대요

자막없이 영화보기 100시간이 좀 넘어가는 지금
친구의 방법이 좀 더 빠르고 결론은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드네요

자막없이 영화보기도 3000시간을 채우고
말하기 읽기 쓰기를 한다해도
잊지않기위해 지속적으로 영어를 접해야하는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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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은경님, 안녕하세요 :) 이제야 답을 드리네요.
질문하신 부분에 대한 답변을 드리기 위해 제 주변의 두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먼저, 제가 대학다닐 때 교양으로 '일본어I'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 교수님은 일본 유학도 다녀오셨고, 대학에서 십 수년간 학생들을 가르쳐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교양 수업시간에는 히라가나, 가타카나부터 기초 일본어를 진도를 나갔었습니다. 기본적인 인사말부터, 일본어 교과서에 나오는 생활 패턴 일본어라고 해야하나.. 그런 것부터 시작을 하잖아요. 처음 일본어를 접하는 학생들은 일단 모르니까 단어부터 외우고, 시험을 보기 위해서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문장들을 외웁니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수업하실 때 한 명씩 돌아가면서 지목을 해서 일본어만 보고 읽게 시키셨습니다.
저는 중, 고등학교 때 일본어를 선택과목으로 6년간 배웠었지만 말은 하나도 할 줄 모르고, 학원을 따로 다녔던 것이 아니라서 그냥 교과서에서 배운 문장만 읽을 줄 알았습니다.

수업에는 일본어를 오랫동안 공부해 온 학생들만 대답을 잘 했고, 특히 교수님께서 녹음CD를 틀어주신 후 방금 들은 것을 따라 말하게 했을 때에는 거의 다들 멘붕이었습니다. 이미 글자로는 읽을 줄 아는 문장들도 책을 보지 않고 해석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듣고 따라하라고 할 뿐인데도 말입니다.

그 때 교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원래 듣기가 가장 어려운거다."

일본으로 유학을 갔을 때에는 계속 일본 친구들과 생활을 하고 수업을 듣고 따라가야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듣기가 익숙했었지만,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서 오랫동안 한국 생활을 한 자신의 친구들도 듣기를 가장 어려워 한다고요.

아니, 책으로 읽으면 그렇게 쉬운 문장인데 왜 읽는 것만큼 쉽게 들리지 않는 걸까요?

듣기부터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미 공부를 많이 해서 소리를 들으면 '자동적으로 해석'하게 된다면 음성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래도 아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일본어는 우리나라 어순과 비슷해서 어느 정도 단어들끼리의 조합을 하는 속도가 빨라진다면, 직청직해가 가능한 수준에 이르기도 합니다.

질문하신 "잊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영어를 접해야 한다"가 듣기가 완성된(모국어 패러다임) 상태일 때 어떻게 늬앙스가 달라지는 지 설명하기 위해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 고등학교 친구들 중 학창시절에 일본 드라마나 예능을 쉬는 시간마다 보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근데 자막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바로바로 알아듣는 수준이었습니다.

그 친구들 중 2명이 대학 때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갔고, 한 명은 아예 일본으로 미술유학을 갔습니다.

너는 일본어를 언제부터 공부했냐고 묻자,
유학을 가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학원을 다녔고, 그 전에는 그냥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좋아하는 아이돌의 예능프로를 계속 보다보니 어느 순간 들렸다고 했습니다.

즉, 듣기가 된 이후에 문자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이죠.
아예 일본에 눌러앉아 살고 있는 친구는 거의 일본인이 다 되었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는
한국에 있는 일본인 친구와 종종 만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일본어를 잊지 않기 위해 일본 친구를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대조적이지만, 영어 공부를 미친듯이 한 후 '영어를 잊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영어를 접하는 환경에 있으려고 노력하는' 친구는 봤습니다.

이 친구는 제가 영문과에 다닐 시절, 학교 성적은 잘 나오는데 회화가 잘 안되어, 1년간 캐나다로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왔었습니다.
단 1년 간 다녀왔는데, 뭔가 그 이전과 비교하여 자신감이 많이 늘고 할 수 있는 말이 조금 자연스러워 졌달까요? 그런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온 지 또 1년이 흐르고 만나자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마치 운동을 하다가 그만두면 근육이 원래대로 돌아오듯이 말이죠. 그래서 듣기가 완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공부를 하면, 진짜 평생 그 노력을 계속해줘야 합니다. 계속 영어를 쓰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고요.

우리가 모국어인 한국어를 몇 년간 쓰지 않는다고 가정해봅시다.
당연히 말은 하면 할수록 늘고, 쓰지 않을수록 어눌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한국어로 된 매체를 접한다거나 한국에 돌아와서 또 몇 개월 살다보면 이전의 상태를 회복합니다.
처음부터 한국어를 다시 시작해야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편했던 언어는 외국에 나간다 하더라도
이상하게 계속 쓰고 싶어집니다.
정말 급할 때 튀어나오기도 하고, 부모님과 통화를 하게 되기도 하고요.

물론, 제가 평생 한국어를 안쓰겠다고 다짐하면
아예 잊고 살 수도 있겠죠.. 그치만 다시 한국어의 소리를 듣게 되면 분명 알아들을 수 있을 겁니다.

3000시간의 듣기 이후에도 계속 들어줘야 하고, 말문이 트일 시점에는 말을 해줘야 하고, 이후에 읽기 쓰기를 하더라도 듣기를 멈추면 안 됩니다.

하지만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자연적으로 찾게 되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계속 듣기를 하신 분은 느끼시겠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뭔가 자꾸 더 듣고 싶어지고, 몇 일 쉬거나 안 듣게 되면 찝찝한 그런 시기가 옵니다.

일본어든 영어든 그 언어를 하는 목적이 있을 겁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모국어의 패러다임으로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사람마다 그 언어를 하고자 하는 목적이 다르다는 데에 둡니다.

그 언어로 학업을 하고, 일을 하고
심지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에는 기존의 방식대로 공부를 해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언어 천재들은 기존의 방식대로 공부를 해도 마치 원어민처럼 잘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99%가 실패한다 하더라도, 1%의 예외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 1%의 사례에 현혹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99%의 사람들이 완전히 실패한 것도 아닙니다.

저도 무수히 많은 영어공부 방법을 접했었고, 학원도 정말 많이 다녔고, 노력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것이 (예를 들어 그냥 쳤던 토익점수가) 저에게 가져다 준 이득도 있었고, 학원에서 일을 하기도 했었고, 돈을 벌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다시 처음부터 문자노출을 피하고, 말하기를 잊어버리고, 오로지 영화만 보며 듣기를 하고 있을까요?

기존의 성과는 제가 원하던 수준이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저는 아주 당당히 아직 영어를 못한다고 말할 수 있고,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도 아닙니다.

원어민도 자연적인 방식으로 7살 처럼 말하는 데에 7년이 걸렸고,
20살 대학생 정도의 지성을 갖추는 데에 20년이 걸렸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원어민처럼 말하는 데에 수십 년이 걸린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

오히려, 3000시간 이상의 견고한 듣기만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그 이후에 어떤 매체라도 좋으니 (요즘 real class, 영어학습 유튜버들) 한 번 접해 보십시오. 그것부터 시작하는 사람과는 넘사벽의 차이가 존재하는 구나를 느끼실 겁니다.
듣기 완성 이후에 그 지식들을 모두 스펀지처럼 흡수해 버리십시오.

그걸 가지고 계속 반복하면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이랑 깊이가 다르다라는 것을 느껴 보십시오.

아래 영상은 유튜브로 영어를 독학해서 세계 정상에 오른 아시아 래퍼를 소개하는 영상입니다.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사람은 태어나서 미국 땅에 발을 들여본 적도 없고, 인도네시아에서 9살 때 홈스쿨링 마저 중단한 '무학력'의 사람입니다.

흑인 래퍼들이 왜 너는 우리들보다 영어를 잘하냐?고 묻는 것이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정말로 놀라워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루빅스 큐브를 맞추기 위해 2008년, 2009년에는 유뷰브에 거의 영어 아니면 스페인어 영상들이 주됐었기 때문에 영어로 되어있는 루빅스 큐브 관련 영상을 계속 본 겁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같은 반에서 미친듯이 일본어로 되어 있는 영상을 재미있게 보던 친구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 4:13초 쯤에 "그냥 유튜브에서 영어로 말하는 영상들 엄청 보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을 했는데 그런거 있죠? 머리 속에서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

영어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상 4:25초쯤에는 더 배우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콘텐츠를 '공부하지 말고 즐기기'를 통해 언어 자체가 switch될 수 있습니다.

모쪼록 은경님께서 어떤 것을 선택하시든 결과는 은경님이 만들어 가시는 겁니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완전히 모든 걸 편하게 들을 순 없어도
대기업에서 영어로 업무도 하고, 외국에서 석박사 받아 교수도 하고,
그런 사람들 정~~~말 많으니까요.

자막없이 영화보기 할 시간에,
1년 바짝 미친듯이 공부해서 유학가고, 통역사될 수 있습니다.
가능합니다. (실제 그런 사례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영어를 뇌에 새겨서 8주 만에 자막없이 영화보고 그런 건 이 세상에 없습니다 ^^

여러분의 시간은 돈보다 더 소중합니다.
잘 판단을 하셔서 시간이라는 자원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금쪽같이 활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참고> 지난 글 읽기

#001. 자막없이 영화보기의 원리 (나는 이제껏 700편이 넘는 영화를 보았다.)
#002. 나는 왜 자막없이 영화보기를 시작하였는가?
#003. 자막없이 영화보기를 실천하는 방법
#004. 나의 자막없이 영화보기 실천과정(2015-2017)과 영어듣기의 단계
#005. 얼마나 투자하여야 하는가?
#006.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봐야하는가?
#007. 70대 조차도 성공할 수 있다 (사례 - 대구 영어 할머니)
#008. 핀란드인들은 왜 국민의 80%가 이중언어구사자일까?
#009. 영화 보다가 자꾸 딴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010. 번역기와 동시통역기가 있으면 우리는 대화를 할 수 있을까?
#011. 집중해서 듣는 것과 흘려듣는 것은 사실 본질적으로는 하나다
#012. 단어를 외우거나 발음연습을 할 필요가 없는 이유
#013. '열심히'는 방법이 아니다(정신력 대신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자막없이 영화보기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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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영어를 뇌에 새겨서 8주 만에 자막없이 영화보고 그런 건 이 세상에 없습니다 ^^

저도 영어로 나오는 유튜브 많이 봤는데...ㅠㅠ

ㅋㅋㅋ저는 어떤 광고를 보고 한 이야기입니다
한손님.. 그리고 정~~~~말 많이 봐야하고 (약 3천시간 이상), 동시에 말하기 읽기 쓰기를 하면 안됩니다(많이 봐도 자막을 본다거나 다른 시간에 영어공부를 하면안됨).

저는 oksubtitle 하겠습니다.ㄷㄷ

네넹ㄲㅋㅋㅋㅋㅋㅋ
저는 twohands하겠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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