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벨 연구소 이야기 ★★★★★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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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게 된 동기 ]


커뮤니티 STEW 2018 독서소모임 10월 도서.

[ 한줄평 ]


푸른별 지구의 본격 판타지물

[ 서평 ]


벨 연구소.

왜 모르겠는가? 가장 유명했던 연구소! 그래, 나는 딱 그정도로 알고 있었다.

초반부 내용은 사실 지겨웠다. 고등학생 때 물리 시간이 떠오르는 듯 했다.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는데, 내가 왜 이 공부를 하나… 싶었다.

책을 덮고 나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지금 이 글도 컴퓨터로 쓰고 있는데, 6년간 개발자로 일 했으면서 과연 나는 현대 과학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세히 들여다본 이 세상은 다른 세계였다.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어쩜 이리 다를 수 있을까? 이곳은 그저 내게 ‘판타지’다.

트랜지스터, 위성 그리고 정보이론


몰랐다.

트랜지스터가 이렇게 세상을 바꿔 놓은 발명품인줄.

몰랐다.
위성이 벨 연구소에서 시작된 것인줄.

정말 부끄럽지만, 몰랐다.
정보이론이 벨 연구소에서 시작된 것인줄.

컴퓨터를 4년간 공부하고, 개발자로 6년. 무려 10년간 컴퓨터를 공부한 내게 이 분야에 이토록 무지한지 정말 몰랐다.

심지어 트랜지스터 내용을 읽으면서도 ‘이걸 내가 왜 읽어야 하나’ 싶은 감정을 가졌으니… 얼마나 부끄러운가… ㅜㅜ

그후 벨 연구소의 휴대전화 팀은 FCC 제안서 작업을 시작했고, 캘리포니아 주 산타 클라라의 반도체 회사인 인텔(빌 쇼클리의 첫 반도체 회사에서 도망쳐 나온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세운 회사)은 ‘4004 마이크로프로세서’라는 혁신적 통합 회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4004 마이크로프로세서는 2,300개의 트랜지스터를 담고 있는 작지만 강력한 컴퓨터였다. 4004는 1세대 장치로, 휴대전화 단말기에 넣으면 고도로 복잡한 필수적인 연산을 처리할 수 있었다.

벨 연구소에서 나온 쇼클리가 있었고, 쇼클리의 회사에서 나온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인텔을 만들었다. 결국 벨 연구소가 뿌리 아닌가?

세상에 실리콘밸리조차 벨 연구소를 뿌리로 하고 있다니. 막연히 쳐다만 본 실리콘밸리의 윗 세대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그야말로 ‘판타지’다.

트랜지스터는 관련 정보와 책을 좀 더 읽어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 책을 다 읽고난 뒤의 첫번째 감상은 역시 ‘부끄러움’

스스로가 무엇을 몰랐는지 아는 상태가 배움의 첫 단계이니, ‘벨 연구소 이야기’는 내게 공부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해준 매우 의미있는 책이다.

켈리, 쇼클리, 피어스, 피스크, 베이커. 벨 연구소의 천재들


나는 판타지를 좋아한다.

현재 출판되는 B급 판타지들은 비슷한 세계관을 갖는다. 검에 오러를 입히고, 마법을 사용하며, 드래곤이 나온다. 이 세계관을 활용해 RPG 게임이 만들어지고, 나는 흔하디 흔한 이 판타지가 편하고 좋다.

흔한 판타지물을 읽고 있자면, 시시함을 느끼기도 한다. 최근 몇몇 판타지를 읽으며 식상함을 느꼈는데, 벨 연구소 이야기 속 인물들이 어째 판타지보다 더 판타지 같이 느껴진다.

벨 연구소를 만든 연구원들은 하나 같이 천재다. 그 천재들의 리더로서 이끈 켈리.

“그쪽은 여기에서 하루에 일곱 시간 반을 보내기 때문에 월급을 받는 거요. 하지만 칭찬받고 승진하려면 나머지 열여섯 시간 반을 잘 보내야 됩니다.” 첫 출근한 직원들을 사무실로 부른 켈리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괴짜지만 독보적인 두뇌를 자랑한 쇼클리.

쇼클리는 벨 연구소 동료 여럿을 서부로 데려가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가 벨 연구소에서 채용할 수 있었던 건 결국 한 명뿐이었다. 그래서 쇼클리는 대부분 다른 기업들에서 유망한 과학자들을 발굴해 채용했다. 고든 무어, 로버트 노이스, 장 회르니, 유진 클라이너가 대표적이었는데 이 네 명이 후에 실리콘밸리라는 지명을 지도상에 올리게 된 이들이었다. 신입들 중 어느 누구도 쇼클리가 관리자로서는 부족하다는 점을 신경 쓰는 것 같진 않았다. 설사 좀 부족하다 해도, 쇼클리의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인 일이었다.

너무 많은 인물이 나와 특성이 다 기억은 안나지만, 피어스, 피스크, 베이커 역시 벨 연구소의 황금기를 이끈 중요한 인물들이다.

개인적으로 이들 중 현재의 한국에 필요한 인물은 ‘켈리’라고 생각한다. 머빈 켈리.

천재들의 리더로 이들을 미래로 이끌었다. 특히 켈리는 확고한 운영 방침을 세웠는데, ‘더 좋거나 더 싸거나, 둘 다거나’라는 규칙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살펴보고 전화 시스템 향상에 도움이 될지 판단하는 일을 맡은 시스템 엔지니어들은 켈리의 ‘더 좋거나 더 싸거나, 둘 다거나’라는 규칙에 충실했다.

그야말로 한국에 필요한 카리스마형 리더다. 쇼클리 등 톡톡 튀는 천재형은 한국에서 시기와 질투에 이겨내기 힘들다. 적절히 정치적 싸움이 가능한 켈리가 현재의 한국에 필요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벨 연구소 멤버 중 내 개인적으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다.

클로드 섀넌


정보이론의 아버지. 현재의 정보통신의 기초를 세운 사람이다

섀넌은 어떤 메시지의 정보 함유량과 메시지 내 정보 비율을 측정하는 데 있어서 단위를 사용하면 매우 도움이 될 것이고, 이 단위를 ‘비트bit’라고 부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비트라는 단어가 이 의미로 사용돼 출판물에 실린 적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가 세운 정보이론은 이와 같다.

  1. 모든 의사소통은 정보의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2. 모든 정보는 비트를 단위로 가진다. 3. 측정가능한 비트로 구성된 정보는 디지털적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고, 또 그렇게 바라보는 것이 옳다.

섀넌은 천재들이 아낀 천재다. 그의 활약을 읽으며 ‘엘런 튜링’이 떠올랐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실제 엘런튜링을 만나기도 했다고 한다. 역시 천재끼리는 통하는게 있겠지.

섀넌은 완전히 다른 그 무언가였다. 1930년대 말 MIT의 한 교수는 섀넌이 비행기 조종술에 관한 수업을 듣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불행한 비행기 사고로 과학계가 섀넌을 잃는 일이 없도록, 섀넌이 그 수업을 듣지 못하게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MIT 교수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섀넌과 같은 인물은 여간해서는 나오지 않으므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첫째로 트랜지스터를 공부해봐야겠다 생각했다면, 둘째는 섀넌의 일대기와 결과다. 이 책에서 느낀 바로는 섀넌은 현재 대다수의 비즈니스를 가능케 한 사람이다.

쇼클리 팀의 경우 벨 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를 발명하지 못했더라면, 유럽이나 미국의 누군가가 금방 이것을 만들었을 거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오래 걸려봤자 2, 3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섀넌의 경우 한 학자가 ‘그의 눈부신 정보이론은 어떤 사람이 한 분야를 다지고, 그 분야에 있어 중요한 문제들을 제시한 후 거의 한 번에 전부 증명해버린’ 드문 사례라고 말할 정도였다.

역시 이런 사람을 왜 몰랐나 하는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푸른별 지구의 다음 판타지는?


벨 연구소의 부흥기가 끝나고 AT&T와 정부의 정치적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이야기를 읽으며, 참 안타까웠다.

이 책을 읽으며 궁금해진 세 번째가 AT&T다. AT&T는 어떻게 이정도의 수직적 통합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재판을 추진하는 윌리엄 백스터에게 있어 AT&T의 근본적인 문제는 AT&T가 수평적으로도, 그리고 수직적으로도 통합돼 있다는 것이었다. 수직적 통합은 AT&T가 자사의 연구와 개발, 제조, 출시를 통제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회사의 필수 구성 요소를 나타내는 각 상자는 하나씩 포개져 쌓여 있다. 아이디어와 혁신이 시작되는 맨 아래의 상자는 벨 연구소였다. 그 위에 혁신을 대량생산하는 웨스턴 일렉트릭이 있다. 제일 꼭대기에는 신기술을 원거리와 지역시장에 출시하는 AT&T가 있었다.

연구조직으로 벨 연구소를 가지고 있으며, 웨스턴 일렉트릭으로 생산하고, AT&T로 판매한다. 이보다 완벽한 수직적 통합이 있을까?

벨 연구소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고, 현재는 연구 대상이다. 어째서 현재는 그때 만큼의 발명이 없는지 많은 이들이 아쉬워할 만한 부분이다.

수학 부서 관리자였던 연구원 앤드류 오들리즈코는 1995년 미국의 기술에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그것이 벨 연구소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다룬 논문을 배포했다. 벨 연구소 같은 오래된 산업 연구실을 비롯한 학계의 성과 덕분에, 이제는 과학의 기초가 너무 방대해져서 회사가 판도를 바꾸는 발견이나 발명보다는 이익이 되는 전략을 좇는 것만으로도 수익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앤드로 오들리즈코에 따르면 결국 벨 연구소는 당분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생에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오들리즈코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가까운 미래에 미국과 유럽 산업에서 제한 없는 연구로 돌아갈 가망은 크지 않다. 현재의 동향은 비좁은 시장에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벨 연구소만을 지향할 필요는 없다. 현재는 그동안의 발전을 기반으로 산업에 치중할 시기이고, 이 시기에 사는 우리는 이에 맞게 최적화 돼야 할 것이다.

스티브 잡스와 빌게이츠 등이 지금의 시대에 맞는 천재들이다.

오랜만에 여운이 길게 남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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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갑니다요~

감샤합니다 ㅎㅎ

책을 일고 싶게 잘 쓰신 것 같아요^^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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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엇 ㅎㅎ 추천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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