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연재] 겜블라이프 #8

in #kr6 years ago (edited)

집으로 간다고 선택을 했지만 주소를 몰랐다.

가족들은 이사를 간후 나에게 집을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을 먹으니 쉽게 찾아 낼 수 있었다.

가족은 처음에는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고 대신 세탁실 창문이 반쯤 열렸다.

나는 아파트 복도에서 멍청하게 서 갖고는 창문너머로 고개를 집어 넜었다.

어머니 얼굴이 보고 싶었는데 어머니는 키가 작으셔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지금 상황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면 그것은 독이되고

어떻게든 내가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정신을 차린다는 정확한 판단을 하고 있었다.

나는 병신이 된 내 다리를 보여주려 애 썻지만 세탁실 창문은 높아서 보여줄수가 없었다.

내 발을 보여주고 동정을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은 물거품이 되었다.

몸이 아프니 다리가 나을때까지만 지낸다고 최대한 불쌍한 몸짓을 했다.

피가 섞인 가족에게 그런식으로 동정을 구걸했다.

기분이 나쁘거나 슬프지 않았다. 그런 몸짓이 나는 유쾌하게만 느껴졌다.

오래간만에 가족을 얼굴을 보니 정신보다 피가 기뻣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JSA에서 남과북이 대치하듯 세탁실 창문이라는 경계를 두고

서로 견제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누나는 나 같은 동생은 가족이라도 없는 셈치는 게 낫다고 냉정하게 말했다.

어머니는 돈은 쫒으면 도망을 간다며 돈이라는 것도 때가 되야 들어올 것인데

돈이 널 쫒아야지 니가 돈을 쫒으면 돈은 결국 도망간다고 했다.

어머님 말씀대로 나에게 올 돈이라는 놈은 아주 도망의 명수인듯 싶었다.

난 이제 너무 지쳤고 그에 반해 놈은 쌩쌩하고 너무나 빨라서 난 아무리 쫒아도

결코 놈을 잡지 못 할것만 같았다.

덧붙여 어머니는 앞으로는 평범하게 욕심부리지 말고 살자고 하셨다.

나는 어디가서 어지간해서는 기가 눌리지 않는 사람인데 친 누나와 있으면 항상 기를 펴지 못 했다.

어머니는 문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누나 눈치를 보는듯 싶었다.

내가 집을 찾아 온건 선택이지만 그 결과의 선택권은 나에게 없었다.

누나도 어머니도 하는 말이 구구절절 틀린말이 하나도 없다.

난 완강한 누나의 태도에 기가 죽었고 그냥 아파트를 내려왔다.

상가앞의 공중전화에서 동전 몇개를 넣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콜렉트콜을 거는걸 아니까 아버지는 수신자부담으로 건 전화는 이제 받지 않으신다.

1년 전, 사실 나는 작년에 공부가 하고 싶었다. 정말 공부를 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수를 많이 썼는데 가족들은 내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고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정말 공부가 하고 싶었다!

공부를 하는 것이 내가 도박으로 잃은 것을 회복하는 가장 빠른 수라고 확신했다.

공무원 시험은 합격 당락에 채무 상태는 고려하지 않기 떄문이었다.

사실 과거에 나는 누나가 임용에 합격했을 무렵 즈음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시 마음을 맞추고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많은 전략적 수단을 썼었다.

처음엔 어머니는 아버지라면 학을 떼셨다. 누나는 아버지를

원수보듯 대하는 상황에서 떠오른 조잡한 아이디어 몇개를 실행에 옮겼다.

전혀 연락이 없던 누나와 아버지 관계를 풀기위해 마침 엄무상 노트북이 새로 필요 한 누나의

상황을 알고 아버지와 만났다.

아버지 이름으로 나를 통해서 고가의 노트북을 누나에게 선물로 보냈다.

사실 아버지는 누나의 대쪽같은 성향을 생각하면 선물을

받기는 커녕 아버지가 딸과의 관계를 돈으로 회복하려 한다고 모욕감을 느끼고

관계가 더욱 악화되는 것을 걱정 했다.

하지만 내 예상대로 누나는 그것을 유용하게 잘 사용했다.

이후에 누나는 고마움의 표시를 시작으로 아버지와 자연스럽게 연락하게 되었다.

아버지에게는 간단하게 어머님 이름으로 옷가지와 먹을것을 보냈다.

아버지 성격상 그것에 대해서 물어보거나 이야기 할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일상에서 그 옷을 입으면서 또 그리고 익숙한 반찬을 음미 하면서

수십년을 함께한 동반자를 느끼고 몇 년간의 감정을 털어내고 새롭게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었다.

소극적인 전략이었지만 효과가 좋았다.

원수지간 이었던 아버지와 누나는 주기적으로 연락하는

관계가 되었고 나는 몇번의 가족들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그 이상의 관계개선은 내 몫이 아닌듯 싶었다.

부모님 예전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아주 조심스럽게 생각하는듯 보였다.

나의 부모님 두분은 같은 자식을 공유한다. 그리고 수십년을 같이 살았기에 서로의 본성을

뿌리까지 알았다. 그래서 인지 몇번의 만남 간에 그들은 소극적인 태도로 서로가 바뀐 부분이

있는지만을 탐색했다. 그들 각자가 상대에게 서운했던 부분에 대하여 그부분이 개선되었는지에

대해서 또 그들 각자가 상대방에게 가장 두려웠던 부분에 대하여 그 부분을 내가 다시 느낄 가능성이

없는지만을 소극적으로 살핀 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적극적으로 일은 진전 되지 않았다.

이후의 관계 회복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나는 점차 더욱 강한 수를 뒀다.

그 과정에서 점점 나를 희생킬수 밖에 없었다. 나는 양쪽 모두에게 내 심중을

숨기기 위해서 또 망설이는 그들에게 내 판단을 믿게 하기 위해서 나는 점점 거짓말 쟁이가 되었다.

여자의 직감은 황홀할 정도로 예리하다. 나는 집에서 아버지를 미워하는 듯 포지션을

취했다.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누나에게 아버지를 변호 하도록 하는 자세를 갖게

하기 위해서 였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내가 수를 쓴다는것을 눈치 챘다.

누나는 본인의 노트북이 아버지의 마음이 아닌 나의 머리에서 나온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고는 나를 몰아대었다. 누나는 나의 그런 전략을 아주 질 낮고

인간을 마음을 갖고 노는것으로 교활하고 좋지 않은것으로 생각했다.

혀를 낼름 거리며 주위를 살피는 뱀처럼 말이다.

나는 뱀띠다. 그래서 뱀에 대해 조금 아는데 사실 뱀이 혀를 낼름 거리는 것은

인간 처럼 뭔가를 바라고 입맛을 다시기 위함이 아니다.

뱀은 혀로 냄새를 맡는데 혀가 두 갈래로 갈라진 것은 오른쪽 왼쪽을

구분하기 위해서이고 혀를 낼름 거리면서 외부의 화학물질을 혀에 묻힌 후

그것을 식별해 그 냄새가 어느 방향에 있는지를 탐지한다.

생존을 위해서 혀를 낼름 거리는 것이지 뱀은 교활하지 않다!

혀를 통해 먹이의 냄새이면 먹잇감을 쫓으러 가고 천적의 냄새이면 바로 그 반대로 도망간다고 하니

뱀은 얼마나 영리하고 혀를 낼름 거리는 것은 뱀에게 있어 얼마나 유익한가?

내가 뱀이라면 J를 만나러 가서 장기를 팔았더라도

혀는 절대 팔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런 비난에도 아무런 티를 내지 않았다. 내 마음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난 내가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중에 잘 풀려 수백억 부자가 되더라도

혹은 어떤 좋은 상황이 오더라도 이십년뒤를 생각한다면 지금 내가 할 수만 있다면

가족이 다시 합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존재 하지 않는 다고 확신했다.

그것이 대의 이며 소의를 따지자면 사실 가족을 위해서 이기도 했지만

내가 공부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이 꼭 필요 하다고 판단했다.

아버지는 이제 꽤나 돈을 잘 버신다. 아버지가 나에게 돈을 물려 주지는 않지만

아버지가 IMF때 사업 실패후 가세가 기울고 재산을 잃었지만 다시금 재기의 마음을 갖고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시작하고 그 결과로 번듯한 직장을 새로 구하고

인정을 받는 아버지를 바라보면 나는 내 아버지가 아니었더라도 존경할 만 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집은 불교를 믿지만 나는 종교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어릴때부터 나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DY가 나에게 니 인생을 알고 방향을 찾으면 좀 더 쉬울것이라며 데려간

곳이 대구의 한 철학관이었는데 사실 처음에는 그가 열번도 넘게 가자고 권했지만

난 가지 않았다. 열몇번째 쯤 권했을때 마침 술을 진탕먹고 아침이 되어서

그곳에 들르게 되었는데 나는 처음에 그가 뭐 신 비슷한 것이라도 되는줄 알았다.

그는 내 가족과 나의 인생의 과거를 질문 하나 없이 속속들이 맞췄다.

어머니가 당뇨가 있는것도 맞췄고 2018년에 낫게 될것이라는 것도 결국엔 맞췄다.

할배가 누나 사주를 보더니 아무것도 묻지 않고

선생이라? 하고 물었을때는 정말 소름이 돋았다.

난 혼비백산 했다. 정말 대단했다. 그는 영적인 어떤 기운으로 나를 보는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40년전에 약관의 나이로 대한민국 100인의 역술가에 들었던 사람인데

DY가 대구 알부자들은 아는 사람들은 이사람을 안다며 나에게 인생을 엿보라며

그 토록 권하며 데려다준 곳이었다.

그가 말하기로 나는 만석꾼 부자가 된다고 했다.

나는 그말이 그냥 목구성에 풀칠은 한다 정도로 들렸다.

왜냐면 쌀만석해봤자 쌀두가마에 한석이고 쌀 한석이 80KG가량 되니까

쌀 20KG에 오만원 잡으면 한석에 40만원밖에 안되는데 만석하면 40억이다.

지금 내 꼴을 봐서 그런 돈으 쥐려면 십년은 지나야 될것 같은데

2030년에 40억을 가지고 있다고 해봤자 물가 상승률을 고려했을때 부자라고 불리긴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게 모호하게 말고 아무한테나 만석꾼이 된다고 이야기 하십니까? 어느 정도 부자가

된다는 겁니까 하고 물으니 할배는 그냥 많이.. 벌어 그냥 많이 벌어 라고 귀찮은듯이 대답했다.

난 그의 말대로 내가 진짜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도 그 분을 찾았고 힘든일이 있을 때마다 그분을 찾았지만

그 이후로는 그분은 그렇게 신통한 대답을 내 놓지는 못 했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들만 했다.

역시 첫 끗발?이 개 끗발인지도 모르겠고 이후엔 미래만을 보아 주셨는데

사실 당시는 터무니없다 생각되었지만 시간이 흘러 완벽하지는 않지만

같은 방향으로 하나하나 맞아들어가니 이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문득

궁금하기도 했다.

그 할배는 나에게 이름을 바꾸라고 했다. 그 이름 가지고는 재벌이 못 된다고 했다.

난 단번에 기분이 좋아졌고 물었다.

"그럼 이름 바꾸면 재벌 된다는 말입니까?"

"그럼~ 돈 많으면 재벌이지 뭐 재벌이 별건가"

내가 만약 개명을 한다면 나는 그 할배에게 이름을 받을 것이다.

그의 간명이 틀렸다고 치더라도 말이다.

난 공부가 하고 싶은 열망이 생겼을 때에도 반월당의 할배를 찾아 갔다.

조언을 구하니 공부를 할 수만 있다면 꼭 해야 된다고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나는 이 할배가 나의 인생 그리고 마주 하지도 않은 내 가족의 인생을 간명 했지만

도대체 어떤 근거로 타인의 인생을 신이라도 된것 마냥 정의내리는지에 대해서

강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도대체 뭘 보고 그딴 소리를 하느냐 말이다? 그게 맞다 손 치더라도

가만히 앉아서 그는 한달에도 수십명의 인생을 보고 지난 오십년간 수만명의 수십만명의

인생을 보았을 텐데 그도 한낮 인간에 불과한 몸뚱아리와 정신으로 어떻게 그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지? 그것은 배짱인가 아니면 시를 읊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수학처럼 공식을 대입하여 답을 도출 하는 것뿐인가?

그날 그때부터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궁금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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