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事物놀이 : 진공청소기

in #kr6 years ago (edited)

대국에서 불어오는 황사 관련 뉴스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집배원 역할을 했었다. 몇 해 전부터 이 소식은 그보다 큰 비보에 묻히는 측은한(?) 처지가 되었다(일자리 파괴는 만연하다). 어느새 일상 용어로 자리 잡은 미세먼지—혹은 초미세먼지—의 존재 때문이리라. 나는 이 자잘한 것의 실체를 허파보다는 발바닥으로 감지한다. 예전만 해도, 전일 바닥 청소를 철저히 해 두었다면 발바닥에 들러붙는 극성한 먼지와 더불어 하루를 열진 않았을 것이다. 요즘은 어떤가. 오전부터 초벌 청소를 한 후 비교적 미끈해진 바닥에 흡족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속절없이 날아들어 드러눕는 태연자약한 그들을 목도한다.

먼지는 성실하고도 은밀한 정보국 요원을 닮았다. 당연 부르지 않았는데, 하루 거를 만도 한데, 그들은 사적 공간에 틈입하고 침투하여 재빨리 저변을 점유한다. 전언에 따르면 미세먼지는 일반 먼지에 견주어 이 능력이 특출한 모양이다. 먼지가 기사技士쯤 된다면 미세먼지는 명장名匠쯤 될 터. 너도나도 써먹어서 상투적 표현으로 좌천한 것임에도 재탕해 본다. 우주적 관점에서 내려다보면 인간이나 인간이 먼지라 칭하는 먼지나 분간하기 어려운 미미한 존재일뿐더러 그저 둘 다 먼지다. 같은 먼지인데 당신은 왜 그리 근면한가. 이녁에게 닮고 싶은 면모이면서도 따지고 싶은 습속이다.

그나마 다행인 일은 구속영장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릴 것 없이 저들을 당장 잡아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대목에서 긴요하게 대두되는 물건이 있으니 다름 아닌 진공청소기이다. 1901년 허버트 세실 부스Hubert Cecil Booth가 착안하여 발명한 것이 전기모터를 사용한 진공청소기의 효시이다. 그전까지의 청소기는 먼지를 불어서 흩어지도록 하는—지금 생각하면 왜 있는지 모를—기능을 했다. 그러나 부스가 만든 청소기는 마차 크기만 했으므로 오늘날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덩치부터 남달랐다. 1907년 제임스 머레이 스팽글러James Murray Spangler는 소형화된 진공청소기를 내놓는다. 이듬해 특허 등록(미국 특허 번호 NO. 889,823)까지 마친 스팽글러는 자신의 진공청소기 중 하나를 친척 여동생에게 준다.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는지—그녀의 남편 윌리엄 헨리 후버William H. Hoover는 본인 이름을 딴 회사를 설립했고 이 회사는 현재까지도 진공청소기를 만들어 팔고 있다.

별안간 글이 학구적(?)으로 흘렀다. 내침 김에 진공청소기의 구동 원리까지 간단히 알아보자. 청소기가 제 몫을 다하려면 전기모터의 희생(?)이 선행되어야 한다. 1분에 무려 1만 번 이상 팬을 회전시킴으로써 청소기 내부를 준진공 상태로 만드는 작업 말이다. 청소기 내·외부의 대기압 차이는 흡입적 마술을 빚어낸다. 대기압이 높은 바깥의 공기와 이물질이 대기압이 낮은 청소기 주둥이로 달려드는 것이다. 따라서 빨아들인다는 표현은 적확하지 않다. 대기압이 공기와 이물질을 떠밀어 청소기에 밀어 넣는 것이므로. 그러나 인간적 시각에 입각하여 흡입이란 단어를 사용하겠다. 청소기 내부에 들어찬 공기와 먼지 등의 이물질은 분리 작업을 거친다. 이물질은 먼지봉투 품에 안기고 공기는 필터를 거쳐 탈주한다. 그러니 필터가 중요하다. 필터가 션찮으면 앞에서 열심히 청소해봤자 뒤에서—먼지 섞인—방귀를 뀔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어느 회사의 진공청소기를 쓰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아아, 정말 알려주실 것까진 없다. 저 문장은 내 이야기를 쓰기 위한 접속사의 변주이다. 나는 영국의 한 발명가가 세운 회사에서 생산·판매하는 진공청소기를 쓰고 있다(영국엔 발명가가 많은가 보다). 이 제품을 선택한 주요 요인은 세 가지다.
첫째, 원심분리기를 두어 먼지봉투의 필요를 제거했다. 더 이상 줄어드는 예금 잔고를 대하는 자못 심란한 심정으로 먼지봉투를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 요컨대 경제적이다.
둘째, 콘센트에 꽂아야 할 전원 선이 없다. 물론 청소기를 해체해 보면 전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관에선 분명 선이라고는 목격할 수 없으며 이는 벽에 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꼬리가 있어 슬픈 짐승의 해방을 의미하며 청소 행위자의 자유를 담보한다. 아울러 청소기 헤드는—좌향좌, 우향우—유연하고 신속하게 고개를 꺾어 가며 포식을 즐길 줄 안다. 무선 기능이 이 제품만의 독보성은 물론 아니나, 이만한 흡입력으로 이만한 시간—일반 강도 약 40분, 최고 강도 약 8분—동안 종횡무애 활보 가능한 청소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자유에는 금전적 대가가 따른다. 배터리의 수명이 1년은 넘는 듯하지만 그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출생과 동시에 점진적으로 죽는다. 이 점은 문단 서두에 적은 경제적 장점을 얼마간 희석한다.
셋째, 디자인이 썩 볼만하다. 외양이 현대적이고 늘씬하게 잘 빠진 편이다. 하지만 노상 그렇듯 광고에 등장하는 이미지에는 못 미치며, 영상에서는 청소기 작동 시 생기는 소리조차 세련하게 표현되나 실제 가동 소리는 좀 다르다. 도킹스테이션Docking Station은 노트북이나 컴퓨터 주변 기기를 연결하는 장치를 가리키는 용어로 주로 쓰이는 듯하다. 나는 도킹이란 낱말만 부러 추출하여, 충전기에서 본체를 뽑아 한바탕 청소기를 돌린 후 다시 도킹스테이션에 결합하는 일련의 과정을—터무니없게도—우주적 속성을 지닌 작업으로 승격시킨다.
덧붙여 제품의 사용설명서에 의하면 이 청소기는 사람의 감각적, 논리적 능력을 측정하는 바로미터 기능을 겸비한다. 사용설명서 8쪽을 보자. "OOO 제품의 안전한 사용을 위해 사용자의 관리 또는 지시 하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어린이들이나 신체적, 감각적, 논리적 능력의 결핍 또는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사람의 사용을 금하여 주십시오." 제품 생산자들의 자기애를 엿볼 수 있다.
이쯤 되면 내 직업을 의심하는 독자가 있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해당 회사와 하등 관련이 없다. 한국에서도 후발적으로 위 청소기와 비슷한 제품이 출시되는 것으로 안다.

발바닥을 본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그들은 자신이 쉴 틈 없이 행하는 실천가임을 증명해 보였다. 진공청소기 너마저 없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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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번번이 고맙습니다!

신체적은 그렇다 치고, 논리적, 감각적에서 저는 그만....그래서 그 부족을 메우고자 공기청정기를 들였습니다.

논리적, 감각적. ㅎㅎ 사용설명서에서 저러한 단어를 본 게 재밌어서 적어 봤어요. 저도 공기청정기를 쓰고 있습니다.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흐음... 이거슨... 엔지니어 D 선생님이 개발하신 바로 그 비싸다는 진공청소기의 광고가 아닌 것입니까? ^^
청소기든 사람이든 실천 궁행이 중요한 것이지요 ㅎㅎ

본의 아니게(?) 광고가 되었나요? ㅎㅎ 먼지봉투 유·무를 언급하는 것에서 확실히 티가 났겠지요(ㅠ). ㅎㅎ 값이 좀 나가지만 청소기만큼은 욕심이 났습니다. :-)

실은 비밀인데요.... (저도 같은 걸 씁니다) ㅎㅎㅎㅎㅎ

앗. ㅎㅎ (동질감) 나름 쓸 만한 것 같습니다. ㅎㅎ

진공청소기만큼 흡입력 있는 글입니다. 최근에 무선진공청소기 구입한지라 더 몰입하여 봤습니다. ㅎ

무선 진공청소기는 에덴 동산의 선악과와 비슷한 듯싶습니다. ㅎㅎ 몰입해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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