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2. 전설의 낚시꾼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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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소설 2. 전설의 낚시꾼

이 세계에는 전설 속에서만 회자되는 붉은 청새치가 있었다. 그 뛰어난 맛은 신조차도 아껴먹을 정도라고 알려져 있었는데, 한 항구에서 어떤 젊은 어부가 그 붉은 청새치를 잡아오면서 항구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그 고기를 얻기 위해 사람들이 집까지 처분하며 돈다발을 들고 왔지만 어부는 왕궁에서 달려온 전령에게 그 붉은 청새치를 팔았다. 그런데 그가 처분한 값이 사람들이 제시한 가격의 절반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매장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젊은이를 미친 사람이라며 욕했다. 그렇게 모두가 욕을 퍼부을 때 오직 한 경매꾼만이 그에게 다가가 왜 그런 가격에 그 전설의 물고기를 팔았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물론 제가 더 좋은 가격에 붉은 청새치를 팔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붉은 청새치를 잡는 방법을 알고 있고, 다음에도 이 고기를 잡아올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까지 처분하며 이 고기를 사려고 하는데, 매번 그런 식이라면 사람들은 이 고기를 차지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게 될 겁니다. 돈으로 안 되면 힘으로, 힘으로도 안 되면 저를 죽여서라도 고기를 차지하려 하겠지요. 하지만 왕궁은 다릅니다. 왕은 계속해서 이 훌륭한 생선을 맛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그는 제가 꾸준히 제가 붉은 청새치를 가져다주기를 원하고, 심지어 다른 이들이 저를 해하지 못하도록 호위 병력까지 내어줄 것입니다. 비록 그가 지불하는 값은 다른 이들이 제시한 절반밖에 되진 않지만 왕은 다른 이들이 해줄 수 없는 것들을 제게 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들이 집을 팔아야 겨우 한 번 살까 말까한 이 청새치를 수백, 수천 번은 살 수 있습니다. 이 항구 사람들에게 청새치를 팔기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이들이 청새치를 살 돈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비록 싼값이라도 멀리 내다보면 왕에게 붉은 청새치를 파는 것이 가장 현명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젊은 어부는 넋을 잃은 경매꾼을 뒤로한 채 곧장 뱃머리를 돌려 다시 먼 바다로 나갔다.

그리고 어부가 떠난 보름 뒤, 항구는 또다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항구 앞바다 멀리 수평선에 젊은 어부의 것으로 추정되는 배가 어렴풋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일찍이 젊은 어부와 대화했던 경매꾼은 그 소식을 듣고서 젊은 어부를 보기 위해 항구에 나아갔는데, 과연 달라진 점이 눈에 띄었다.

먼저 사람들이 앞 다투어 돈을 실어오던 대혼란이 없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고기를 사겠다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어부와 붉은 청새치를 보러 모여든 사람이었다. 혹시나 자신에게 고기를 팔지 않을까, 돈을 잔뜩 실어온 사람도 보였지만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그리고 전에 젊은 어부가 이야기했듯이 왕궁에서 전령이 아니라 아예 대규모 사찰단을 보내와 젊은 어부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기세에 눌려 감히 누구도 가까이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왕이 생선을 사갈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으므로 항구는 질서정연했다.

이윽고 젊은 어부가 항구에 와서 붉은 청새치를 내려놓자 사람들은 저마다 감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경매는 할 것도 없이 왕의 전령이 지난번과 같은 값을 치르고 생선을 실어갔다. 젊은 어부에게는 왕이 특명을 내린 친위대 다섯이 붙어있었지만 경매꾼은 젊은 어부와 안면을 터놓은 탓에 다시 말을 걸 수 있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이제는 그 경매꾼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경매꾼은 이번에 청년이 어떻게 그 전설의 생선을 낚을 수 있었는지 물어볼 요량이었다. 마침 청년도 두 번에 걸친 낚시 때문에 피곤하다며 이번 원정은 쉴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경매꾼은 그를 좋은 숙소에 데려가 훌륭한 식사를 대접하며 물었다.

“붉은 청새치를 잡아온 어부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고 그저 입으로만 그 존재가 전승될 뿐이었는데 어떻게 그것을 잡을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젊은 어부가 대답했다.

“붉은 청새치를 잡기 어려운 이유는 그 생선이 전세계 바다를 누빌 만큼 활동량이 많고 힘이 좋아 매우 빠른 속도로 헤엄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드넓은 망망대해에서 생선 하나를 어떻게 잡느냐며 코웃음 치며 포기하기 일쑤입니다. 오히려 그걸 잡으려는 사람을 멍청한 인간 취급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어떤 생선이라도 바다 어딘가에는 모이기 마련이고, 그 어딘가를 찾아 기다리면 생선이 알아서 찾아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먼 바다에 나가 오랫동안 있어보면 붉은 청새치를 멀리서나마 볼 수는 있는데, 저는 10년 동안 바다에 나가 붉은 청새치를 언제 어디서 보았는지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에 무엇이 있는지, 그곳 기후는 어떤지 분석했습니다. 마침내 저는 붉은 청새치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깨닫게 되었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붉은 청새치가 좋아하는 먹이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먼 바다에 나가서 하는 일은 그것뿐입니다. 붉은 청새치가 올만한 곳에서 기다리다가 그 생선이 좋아하는 먹이를 던져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빠른 청새치라도 먹이를 먹기 위해 속도를 줄이기 마련이고, 그때 준비해둔 그물을 던지고서 배에 매달아 항구로 되돌아올 뿐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야기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입니다. 그 생선이 어디서 무엇을 좋아하는지 까지는 말해줄 수 없군요.”

경매꾼은 이후로도 자주 젊은 어부와 교류했으며, 젊은 어부의 생선 판매를 전담하면서 그 역시 큰 부자가 되었다.


*엽편소설집

1. 시장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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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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