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사유 (7). 감각의 단계 上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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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사유(7). 감각의 단계 上


감각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단계가 있고, 사유 역시 두 가지 단계가 있다. 감각의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물질계를 받아들이는 말초 감관의 자극 전체다. 촉각, 시각, 청각으로 대표되는 그 무수한 자극들 모두가 감각의 기초다. 그것은 현상에 지나지 않아서 어떤 해석도 되지 않은 상태다. 그저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 존재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들이 이 단계에 놓여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느껴지고 보이는 그 모든 것에 집중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고장난 기계처럼 천방지축으로 뛰노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에게 필수적인 작용으로, 감각계를 활용하는 연습이라고 해야겠다. 실로 최초의 감각은 청각이든 촉각이든 ‘인지하기로’ 하지 않은 이상 그 구분이 어렵기 때문이다.

어쨌든 감각을 받아들이는 단계를 넘어서면 인간은 이 감각을 가지고 생각을 덧붙이기 시작한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 단계를 활용한다. 우리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제각각의 어떤 정의를 내리는 것, 이것이 ‘감각 사유’ 단계다. 초콜릿 한 조각이 있다고 했을 때, 감각의 기초 단계에서는 그것이 초콜릿이며 달콤한 냄새가 난다는 것, 그리고 어두운 갈색을 띠고 있다는 것 정도를 인지하지만, 감각 사유 단계에서는 내가 단 것을 싫어하거나 좋아한다는 사실, 그래서 이를 거부하거나 받아들이거나 했던 그 모든 기억, 경험들과 연관되어 초콜릿이라는 물질에 관한 내 생각이 덧씌워진 그 모든 생각들이 감각 사유가 된다.

이 감각 사유 단계는 감각의 종말이자 사유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것은 분명 감각과 이어져있지만 분명한 사유이며, 사유이기는 하지만 감각에 기초한다. 그래서 이 이상 진행되면 이는 더 이상 감각이 될 수 없고, 이 이하로 진행되면 감각이기에 사유일 수 없다. 그래서 이 감각 사유 단계는 순수 사유와 근원 감각이 겹쳐지는 중간 지점에 처해있지만, 그 중간적인 성격 때문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왜 중요한지는 후에 서술하겠다. 그렇다면 감각 사유를 넘어선 단계는 어떤가? 그것은 우리가 줄곧 이야기 하고 있는 생각, 나의 존재를 가장 근접하게 정의하는 ‘순수 사유’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순수 사유 단계에서는 우리가 감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순수 사유 단계에서는 감각 세계에서 인지할 수 없는 개념을 다루는데, 사실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이상은 완벽한 순수 사유에 이를 수는 없다. 언어는 이미 우리가 시각, 청각 등을 이용한 감각 기관으로 접한 것이기 때문이며, 겪어본 적 없는 것을 표현한다고 해도 언어는 지각된 것을 기초로 하며 후술할 ‘순수 사유적 물질-힘’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절대적으로 순수 사유가 아니다. 성인들이 때로 ‘깨달았다’며 말로 형언하지 못하는 그 상태가 순수 사유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가장 뛰어나고 순수한 생각은 말로 표현되지 않고 전해지지도 못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장애를 앓고 있거나 아주 멍청한 인간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이런 순수 사유를 경험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영감’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다. 영감은 생각이 생각을 부를 때 나타나는 것으로 그 어떤 감각적인 기술도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 형태를 언어 따위로 잡아주지 않으면 쉽게 증발해버린다. 그럼에도 순수 사유는 분명히 우리를 구성하고 있다. 촘스키의 ‘colorless green ideas sleep furiously’라는 예문처럼 완전히 감각될 수 없으면서도 상상 가능한 영역의 어떤 생각들은 그것이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순수 사유의 영역에 넣을 수 있다.

이 같은 감각과 사유의 단계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감각의 단계]
근원 감각 – {[감각 사유]} – 순수 사유
         [사유의 단계]

우리가 순수 사유에 이르기 위해서는 그 근원 감각의 지각이 불가피하다. 순수 사유의 단계에 이르러 순수 사유의 존재를 분명히 깨닫고, ‘나’와 육체의 분리를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근원 감각은 여전히 존재하며,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므로 근원 감각에서 순수 사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순차적이지만, 순수 사유에 이른 뒤부터 이 세 가지 단계는 영역을 넘나들면서 동시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위의 도식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과정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이 감각 사유 단계다. 이것은 사유와 감각의 혼합된 중간 지대여서 순수 사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인간일지라도 쉬이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가장 중요한데, 그것은 순수 사유를 보존하기 위한 근원 감각으로의 환원 과정에서 더 두드러진다.

순수 사유 → 근원 감각 = 비물질적 물질 = 근원 감각 → 감각 사유 → 순수 사유

감각 사유 단계가 중요한 까닭은 순수 사유가 우리의 육체 속에서 완벽하게 보존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순수 사유는 물질, 감각으로 변환시켜두지 않으면 뇌라는 물질의 한계 때문에 사유 속에서 흩어지고 만다. 근원 감각이 감각 사유로 발전하고, 감각 사유가 발전해 순수 사유가 되는 것과 달리, 순수 사유는 곧장 근원 감각으로 환원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그동안 지겹도록 언급한 ‘비물질적 물질’의 탄생 배경이다. 순수 사유가 물질화된 비물질적 물질은 그 즉시 우리에게 감각 사유된다. 이 비물질적 물질은 최초의 우리 생각 속에 내재되어있던 순수 사유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발현된 순수 사유의 핵심을 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순수 사유를 보존하고, 다시 이를 감각 사유함으로써 이 순수 사유를 보존함과 동시에 순수 사유 상태였을 때보다 더 진보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게 된다.

*下편에서 계속.


<인간과 사유>

인간과 사유 (6). 사유는 힘이다 下
인간과 사유 (6). 사유는 힘이다 上
인간과 사유 (5). 예술은 왜 훌륭한가
인간과 사유 (4). 사유가 즐겁다면 가장 재미있는 건 인간 세계다
인간과 사유 (3). 생각의 본모습과 나의 본모습
인간과 사유 (2). 부와 사유
0. 신은 존재하는가? ‘나’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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