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처 몰랐던 음성해설 이야기 -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

in #kr10 hours ago

무심코 TV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본 프로그램은 화면해설을 제공합니다'라는 문구를 볼 때가 있다. 저 문구는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보는 것도 잠시. 이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저 문구의 존재가 반가운 사람들도 있다. 두 눈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 어려운, 시각장애인들이다. 그들에게 화면해설은 세상과 연결하는 통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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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은 우리나라 최초로 음성해설을 시작한 서수연 음성해설 작가가 쓴 책이다. 드라마 작가와 성우라는 꿈을 키우던 그녀에게 어느 날 운명처럼 찾아온 새로운 기회. 선배도 선례도 없던 당시에 스스로 길을 개척해가며 음성해설이라는 분야를 이 땅에 뿌리내렸다.

​눈으로만 읽을 수 있는 시각적 정보를 문장으로 서술하는 일. 음성해설 작가는 마치 소설을 쓰는 것처럼, 한 장면 한 장면을 묘사하는 글을 쓴다. 중요한 규칙은 작가의 해설이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침범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대사와 대사 사이,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이 음성해설 작가에게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다.

아무래도 해설이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넓지 않다 보니, 실제 해설 문장을 눈으로 보면 굉장히 짧고 단순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미사여구 없이 말 그대로 장면의 모습만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언뜻 보면 누구나 충분히 쓸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긴 글보다 압축된 한 문장을 쓰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작문을 해본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책 <보이지 않지만 볼 수 있는>을 읽으며, 문화 예술 향유의 평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불평등은 지역적인 한계에 불과했다. 지방에 살고 있어서 공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공연의 인프라를 넓혀야 한다는 것까지가 내 생각의 전부였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내 생각보다 더 촘촘한 층위의 문화 불평등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음성해설'이라는 직업. 그들의 존재와 역할의 소중함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죄송하다는 마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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