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가 밥먹여 준다

in #kr6 years ago

1987년 7월 5일 후배에게 보내는 편지 “민주주의가 밥 먹여 준다”

지금 우리 나라 정치 체제를 실질적으로 규정한 사건은? 말할 것도 없이 87년 6월 항쟁이겠지. 우리 대통령 선거가 항상 추운 12월인 이유는 87년 12월에 16년만의 대통령 직선제가 있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중요한 사건이 87년 6월의 함성이 채 잦아들기 전에 터져 나온다. 바로 789 노동자 대투쟁이라고 불리우는 역사적인 사건이 그것이지.

1987년 6월은 지금도 기념식이 거창하게 열리지만 7,8,9월의 일들은 기이할만큼 기억되지 않아. 87년 7월과 8월과 9월은 87년 6월 이상으로 우리의 오늘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데 말이야. 왜냐고? 그 석 달은 전쟁 이후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극심한 ‘노사분규’에 직면한 해고, 다른 식으로 표현하면 “거제에서 구로까지 족쇄 깨고 외친 노동자들의 아우성”이 전국을 휩쓴 기간이었기 때문이지. 울산의 대공장 근로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부산의 선원들, 구로공단 여공들, 심지어 강남의 대형 중국집에서도 주방장과 웨이터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머리띠를 매는 지경이었으니 그 규모와 폭과 넓이를 굳이 설명하지는 않겠다.

나는 “노동자 중심성” 같은 거 모르고 사회주의자도 아니고 요즘 유행하는 단어로 그저 자유주의자이니 그 7,8,9월을 노동적 관점에서 바라볼 자격도 이유도 없지만 1987년 7월 5일, 즉 노동자 대투쟁의 봉화를 올린 날은 기억하고 싶다. 하필이면 그날은 한 달 전 최루탄에 맞고 사경을 헤매던 이한열 학생이 끝내 숨을 내려놓은 바로 다음 날이야. 이한열 학생이 죽은 다음 날, 새로운 세력이 용틀임을 시작한다. 역사란 그렇게 엉뚱한 법이지. 아 왜 기억하고 싶냐고? 그건 “민주주의가 밥 먹여 준다”는 걸 증명하기 시작한 날이기 때문이야.

민주주의의 최고 가치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87년 6월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공화국 시민으로서의 정치적 존엄성을 획득하는 한 달이었어. 그리고 87년 7,8,9월은 또 다른 민주주의의 원리를 구현하는 과정이었지. 1987년 7월 5일 울산의 한 디스코텍에는 1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든다. 현대그룹 산하 현대엔진 노동자들이었지. 그 가운데 나이 스물 아홉 살의 깡마른 노동자 권용목이 있었어. ‘고적답사반’이라는 소모임의 일원이기도 했던 그는 디스코텍에서 현대엔진 노동조합 위원장으로 선출된다. 왜 디스코텍이었냐고? 뻔하지. ‘노사협의회’ 말고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위해서는 그렇게라도 회사의 눈을 피해야 했으니까. 아직 켜지지 않은 사이키 조명 밑에서 권용목은 열변을 토한다.

“이제 일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게 된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상여금 차등제가 없어지고 공해 수당을 받게 된다는 기대를 가져도 좋습니다. 이제 사람답게 살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오마이뉴스 2002.11,22)

바로 “묵묵히 일하고 시키는 대로 따르고 주는 대로 받고 항상 복종함이 선진 사회 이루는 노동자 도리”라는 훈계에서 벗어나는 인간 선언이었거든. 일한 만큼의 댓가라는 걸 당신들만 정하자는 게 아니라 나도 한 번 얘기해 보자는, 상여금 차등제 따위로 인간들 비열하게 만들지 말자는, 그리고 숨 턱턱 막히는 현장의 경우는 그 위험성에 상응하는 공해 수당을 당연히 받아 보자는 인간 선언이었고 민주주의의 발현이었거든.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된다고? 현대엔진의 뒤를 이어서 투쟁에 나선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요구 조건 제 1항이 뭔지 아니? 그건 “두발자율화”였어. 상상이 가니? 공장 정문에서 바리깡 든 관리자가 노동자 머리카락이 뒷머리를 덮나안덮나 노려보는 광경이.

87년 7월과 8월과 9월은 그걸 뒤집은 석 달이었다. 물론 한계도 많고 오버도 있었겠지. 그러나 그건 중대한 민주주의의 발전이었다. 민주주의 별 거 아니야.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을 자유도 중요한 거지만 자식 새끼 낳은 처지에 바리깡 두려워 목 움츠리지 않을 자유, 위험한 일을 하면 그만큼 돈을 더 달라고 할 자유, 내 돈 딱지를 치든 종이학을 접든 무슨 상관이냐는 핀잔에 그 돈 내가 벌어 줬으니 나도 좀 나눠 갖자고 말할 자유, 결정적으로 말을 들어먹지 않으면 한바탕 깽판이라도 치고 팔뚝이라도 내지르면서 우리 요구 들으라고 외칠 수 있는 자유. 그게 민주주의지.

87년 6월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의 힘을 알려 주었어. 사람 하나를 생똥을 싸게 만드는 물고문으로 죽여 놓고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야만 앞에서, 어쨌든 국민이 뽑는 대통령 따위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독재자의 망발 앞에서 대한민국 국민들은 일어나 싸웠고 그들의 항복을 받아냈어. 그 항복이 거짓일지언정 또 속았을망정 그 의미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더 큰 의미는 그것이 열어젖힌 또 하나의 문일 거야. 그게 87년 7,8,9 대투쟁이었다는 거야.

전국적으로 노동조합이 수천 개가 늘었고 100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그 파도가 됐지. 이 70여일을 통해서 이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얕보던 사람들이 더 이상 시키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찌질이가 아니고 타이밍 먹고 철야하라면 군소리 않고 하던 순둥이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지. 양보할 수 밖에 없었고 임금인상률은 기울기가 가파를 수 밖에 없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 준 거다.

물론 그 과정 속에서 지금은 이미 노동자가 아닌 귀족이 돼 버린 현대중공업 노조가 섰고 자기 자식 새끼들 우선 취업시키라는 단협을 한 현대자동차 노조도 이때는 꽤 용맹하게 떨쳐 일어섰으며 네가 증오하듯이 비정규직은 개뿔도 신경 안 쓰는 방송사 정규직 노조도 어부지리로 성립됐다.

기억 하나 해라. 그들의 행동이 아무리 기가 막혀도 그들의 힘은 그들의 역사가 부여한 거다. 엉뚱한 놈이 댓가를 즐기고 있긴 하지만 그 과실은 나도 인간이라고, 인간의 존엄을 지켜 달라고 외쳤던 그들의 선배들의 노력이 빚은 거라는 걸. 현대중공업 노조가 지금은 저렇게 배부른 돼지가 돼 있지만 그 배를 채운 건 머리 하나 맘대로 기르지 못했던 선배들의 노력이었다는 걸.

원래 역사의 결실은 당대가 챙기는 게 아니라 후대가 챙기는 거거든. 동시에 역사의 책임은 네가 아니라 네 후대에게 돌아가기도 한다. 무슨 말이냐고?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고 네가 눈을 돌려 버린 순간, 그 결실(?)은 너도 그렇지만 네 자식이 받을 거라는 거다.

너는 경영관리팀 직원이 바리깡 들고 문 앞에서 지키는 꼴을 상상도 못할 것이고 인간이 어떻게 그렇게 살아? 치를 떨지도 모르지만, 네 자식은 양순하게 머리 들이밀며 “아 어제 이발소가 문 닫아서요. 죄송해요.” 하면서 눈치를 보게 될지 모른다는 뜻이다. 너나 나나 다 알고 있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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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시절이 있었군요.

네 오래 전도 아니죠 사실은

그 때 거리에서 취루탄좀 맞았죠 ㅋㅋㅋㅋ

최루탄은 추억이 됐지만.... 방심하면 돌아옵니다 저 시절이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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