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여행 후기 1

in #kr6 years ago (edited)

크로아티아 월드컵 결승 진출을 보니 작년의 여행이 떠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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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천국 플리트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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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크로아티아라고 하지만 자기들끼리는 흐르바츠카라고 부르는 나라. 이 나라를 넘어오면서 가이드 아저씨가 이런 이야기를 해 준다. “원래 크로아티아는 한국 패키지 관광 코스에 없던 나라입니다. 아니 슬로베니아도 그렇죠. 기존 동유럽 관광코스는 여러분 도착하셨던 프라하에서 헝가리, 폴란드 등을 도는 동유럽 관광 코스가 주종이었죠. 크로아티아는 거의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헝가리 폴란드 코스가 거의 찬밥입니다. 이유는 바로 2014년 방송된 <꽃보다 누나>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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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송에서 플리트비체나 스플리트 등 아빠도 가게 될 크로아티아의 유명 관광 코스가 소개됐고 한국인들의 열화와 같은 크로아티아 열풍을 낳았다는 거야. 일본인들보다도, 머리 수 많기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중국인들보다도 크로아티아에는 한국인들이 훨씬 더 많이 찾아온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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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니찌와나 닌하오는 몰라도 안녕하십니까는 알고 “냠냠 마시써요.” 하면서 한국인들의 허기진 배를 공략하는 호객꾼들이 많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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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강원도 정동진에서 아빠가 드라마 <모래시계> 이전에는 이곳이 시골역 하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던 황량한 바닷가였다는 얘길 했을 때 네가 믿기지 않아 했던 기억 나지? 드라마 하나가 그렇게 한 지역의 역사를 바꿔 놓았듯 <꽃보다 누나>는 한국인들의 유럽 관광 패턴을 바꿔 놓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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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2700킬로미터를 차 타고 이동하는 이번 투어의 버스 기사는 폴란드 분이야. “폴란드가 관광코스의 주종일 때 폴란드 사람들이 주로 우리와 함께 일했습니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다 인구 기백만의 작은 나라예요. 폴란드 인구 3천 4백만입니다. 그만큼 일할 사람이 많고, 또 우리와 호흡을 함께 했기 때문에 코스가 바뀌어도 계속 같이 일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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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의 첫 목적지 플리트비체는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에 등록돼 있는 크로아티아의 국립공원이야. 입장권을 사서 숲길을 조금 걷다가 아빠 일행은 모두 또 한 번 찬탄을 뿜어냈다. 그림이다 그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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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표현하자면 이 공원은 “물의 천국”이야. 고도가 100미터 훨씬 넘게 차이가 나는 16개의 호수들이 물의 여신들처럼 춤추며 폭포를 빚어내고 물길을 여는 가운데 녹색의 원시림이 그들을 감싸듯 빽빽이 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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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품처럼 잔잔한 호수의 한켠으로는 장난꾸러기 소녀들같이 재잘거리는 작은 개울들이 쏟아져 내리고 때로는 아빠가 술먹고 새벽에 들어온 다음날처럼 웅혼하고 심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엄마처럼 낙차 큰 폭포가 바닥을 때리며 무지개를 만들더구나. 바닥까지 내려다보이는 꼬마 아가씨들처럼 해맑은 물을 오리들의 물갈퀴가 간질이고 낚시질 금지한지 수십년에 인간을 무서워하지 않는 송어들이 사람 구경을 위해 몰려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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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의 가곡 중에 <숭어>가 있는 거 알고 있지? 그런데 이건 잘못 번역된 거란다. 숭어는 바닷고기야. 평생 바다를 본 일이 그리 많지 않았을 슈베르트가 노래한 건 민물고기 ‘송어’였어. 바로 플리트비체의 청록색 물 속에서 (색깔이 이렇게 나오는 건 석회 성분이 태양빛을 받아 내는 거라 하는구나. ) 그야말로 유유자적 노닐며 낚시군의 미끼나 그물의 탐욕으로부터 자유로이 헤엄치는 송어들을 노래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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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넣으면 도망가지도 않고 호기심에 차서 그 손에 헤엄쳐 들어올 것 같은 여유만만한 송어들을 보면서 슈베르트의 <송어> 가사를 떠올려 본다. “거울 같은 강물위에 송어가 뛰노네. 살보다 더빠르게 헤엄쳐 뛰노네 나그네 길 멈추고, 언덕에 앉아서. 거울 같은 강물위에 송어를 보네. 거울 같은 강물위에 송어를 보네.“ 독일어로 어떻게 하냐고? 그건 인터넷을 검색해 보도록 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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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누나>의 출연진들을 비롯해서 아시아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온다는 한국인을 포함, 전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의 찬탄을 자아내는 이 절경 플리트비체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진 건 기구한 운명을 지닌 한 귀부인과 맞물려 있어. 19세기 말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비였던 스테파니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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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벨기에의 왕녀로서 합스부르크 가에 시집왔어. 그런데 남편 루돌프 황태자는 엄한 아버지와 그보다 더 까다로운 황실의 규율에 질릴 대로 질린 사람이었다고 해. 또 헝가리 혁명을 지지하는 등 자유주의 사상을 지녀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일종의 왕따를 당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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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해도 괜찮을 텐데 자유분방한 루돌프는 정략결혼을 달가워하지 않았던 반면 스테파니는 어서 황후가 되고 싶은 야심만만한 여자였으니 둘 사이가 좋을리 만무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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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똑똑하게 굴어서 아버지한테 황제 자리를 좀 빨리 물려 받으시라고!” 졸라대는 아내가 지겨웠던 루돌프는 마리아 폰 배체라라는 하급 귀족의 딸과 열렬한 사랑에 빠져. 아내가 있는 남자, 그것도 황태자 신문의 남자로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 거지. 1889년 1월 둘은 동반자살을 택한다. 이게 19세기 말 유럽을 뒤흔든 마이얼링 사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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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운한 커플이 함께 목숨을 끊기 1년 전이었던 1888년, 황태자비 스테파니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영토였던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를 방문했어. 동양이나 서양이나 높으신 아무개가 어딜 방문하시게 되면 ‘왕림’을 위한 준비도 거창하게 이뤄지고 그 후로도 아무개가 다녀가신 곳으로 명망을 획득하게 마련이지. 울적한 스테파니는 플리트비체의 대자연 속에서 위로를 받았고 플리트비체를 온 유럽에 알리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스테파니 황태자비가 다녀간 곳, 플리트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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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누구인가를 놓고 벌어진 여신간의 경쟁이 트로이 전쟁의 참화를 낳은 이야기는 기억하고 있겠지? 이 말로 하기 어려운 절경 또한 끔찍한 피바람을 불러오는 진원지가 되기도 했어. 근 반 세기 동안 잘 지내 오던 유고 연방이 붕괴되면서 격렬한 내전이 벌어졌다는 얘기는 했지? 그 내전의 첫 총성이 바로 이 플리트비체에서 울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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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3월 일단의 세르비아 극단주의자들이 이곳을 점거하고 국립공원 경찰관을 살해하면서 내전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버렸던 거지. 내전 기간 내내 플리트비체의 에머랄드 빛 호수들은 영롱한 제 빛깔을 잃고 송어들의 움직임도 무거웠을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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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경이 주는 감동과 그곳에 얽힌 사연들을 되씹으며 감회에 젖어 있는데 가이드 아저씨가 빨리 차를 타러 가잔다. 이 플리트비체를 제대로 보려면 2박 3일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우리는 두 시간 반도 못돼 플리트비체를 떠나야 한다. 설악산 흔들바위 정도 갔다 와서 설악산을 다녀 왔다고 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지만 한국형 패키지에 홀려 여행을 온 이상 어쩔 수가 없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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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아저씨의 말이 맞다. “잘츠부르크만 해도 제대로 보려면 3박4일도 모자랍니다. 지금까지 보신 곳만 간다고 하면 오실 것 같아요? 이렇게라도 여러 곳을 ‘찍어야’ 여행들을 오십니다. 선생님도 그렇지 않으신가요?” 쩝 맞다. 여러 나라 많은 곳을 가 본다는 것에 혹했지 거기서 얼마 머무는지는 나도 묻지 않았으니까. 플리트비체 호수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인근 양식장에서 나온 송어구이로 점심을 때우는 것으로 플리트비체의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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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노라 플리트비체 다시보자 송어떼야. 천하절경을 다시 보자 한다마는 통장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하여라. 그런데 우리 딸이 가고 싶다면 꼭 다시 같이 오마고 약속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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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크로아티아가 낳은 유력한 정치인 티토와 더불어 아득한 옛날 이 지역 출신으로 세계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만나러 스플리트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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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보기만 해도 시원함이 몰려와요 당장 달려가고싶어요

아 좋습니다... 참 기막힌 경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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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 !

한곳에 꾸준히있는게..여행의매력인데 지금의 유럽여행은 너무 돌아다니기에 치중되있는면이있죠 ㅎㅎ

패키지의 한계죠 ㅠㅠ

멋지군요. 송어 떼 보니 꼭 가보고 싶네요.

가보실만 합니다.... 아주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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