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명예를 지킨 슈타우펜베르크

in #kr6 years ago

1944년 7월 20일 슈타우펜베르크 독일의 명예를 지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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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 발키리>라는 영화가 사람들의 이목을 끈 적이 있다. (원래 발음은 '발퀴레'이겠지만.... 영어로 발음하다 보니) 히틀러를 암살하려던 독일군 장교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의 이야기다. <유주얼 서스펙트>를 만든 브라이언 싱어의 연출력과 톰 크루즈의 반듯한 연기는 관객들을 1944년 오늘의 긴박한 현장으로 데려다 놓는데 성공했었다. 톰 크루즈는 슈타우펜베르크와 자신의 옆얼굴이 닮았다며 흐뭇해했는데 막상 독일인들은 '이상한' 종교를 믿는 톰 크루즈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슈타우펜베르크 역을 맡는 것을 마땅치 않아했고, 슈타우펜베르크가 사형당한 현장에서의 촬영도 거부했다. 그들에게 슈타우펜베르크는 그만큼 누군가의 범접을 허용하기 싫은 이름이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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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을 히틀러의 지근거리에서 터뜨리는데 성공했으나 명이 질겼던 히틀러의 생존 소식은 모든 가능성을 닫아 버렸다. 암살 계획을 묵인하던 고위 장성이 슈타우펜베르크 일행 체포에 나섰고 당일로 군법회의에 회부한다. 그리고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은 신성한 독일 만세를 부르짖으며 총살당한다. 히틀러는 미쳐 날뛰었다. 독일 내에서 희귀한 성씨였던 슈타우펜베르크 일족을 모두 쳐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슈타우펜베르크의 동지들은 피아노 줄에 목이 묶여 정육점 갈고리에 매달린 채 서서히 죽어 갔다. 그 아내는 수용소로, 아이들은 고아원으로 끌려가 성조차 '마이스터'로 바뀌었으며 전후에야 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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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퀴레 영화를 보신 분들은 풀장에서 우아하게 수영을 즐기던 잘난 체 장교를 기억하실 것이다. 베를린 경비대 분견대장 레머 소령이었다. 히믈러를 체포하러 갔던 그는 히믈러에게 설득되어 반란군 진압에 나서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 하룻밤 사이에 2계급 특진되어 대령이 된다. 전쟁 말미에 미군에게 포로가 되어 복역하다 풀려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레머 소령은 끝까지 슈타우펜베르크의 반대편에 선다. 전후 "독일 사회주의 제국당"이라는 극우 정당을 조직하는 한편,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등 나찌 잔당으로서의 일생을 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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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그는 홀로코스트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저작을 냈다가 '증오선동 금지법'과 '홀로코스트 부정 금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독일 법원은 레머의 항소에도 불구하고 유죄를 인정했고 레머는 독일을 탈출해서, 스페인으로 망명했다. 스페인 정부는 레머의 인도를 거부했지만 레머는 이후 중동을 전전하는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빌어먹을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1997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독일 법의 수배자로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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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서 팔과 눈을 잃고, 그 때문에 별 주의를 끌지 않고 히틀러에게 접근할 수 있었지만 한손으로 폭탄을 기동시키는 캡슐을 깨느라 무진 고생을 해야 했고, 몇 번의 위기와 고비에도 불구하고 독일 군인의 명예를 지킨 슈타우펜베르크와 그릇된 상부의 명령에 충직했고 죽을 때까지 평생을 그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군인 레머. 수십년의 시차를 두고 저승에서 조우했을 때 그들은 어떻게 인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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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우펜베르크로서는 그 시대 독일에서 태어난 것이 비극이었으나 레머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마 레머가 일본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는 야마또 다마시를 구현하는 황군의 후예로서 박수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일본인들이 전후 수십년 동안 필리핀 밀림에서 항복을 거부한 채 혼자만의 게릴라전을 펼치며 수십 명의 양민들을 해쳤던 오노 히로다 소위에게 보낸 열광을 생각하면 미루어 짐작이 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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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 레머같은 이들은 넘쳐난다. 전두환의 졸개로 학살의 집행자였던 자들이 자기는 군인으로 할 바를 다했노라 뻗대는 모습은 지겨울 정도고, 수십년 군부 독재의 칼과 방패로 봉사한 데 대한 죄책감을 토로하는 군인도 드물었다. 하물며 전두환 같은 살인마에게 총을 들이대거나 민주공화국에 대한 그의 범죄를 징치하려는 슈타우펜베르크는 현미경으로 봐도 발견되지 않는다.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대한민국 육군"에서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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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하게 동감하고 갑니다. 지금 대한민국 육군은 전투경험이 없는 그냥 공무원이죠. 폐쇄적이기에 비리가 더 심각한 조직이기도 하고요.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또 나름 전문가 집단이라 웬만큼비집고 들여다보기도 어렵고

늘 어느나라 어느시대나 이런놈과 그런 분이 있죠.
발키리 탐 크루즈가 제법 연기를 잘했던것 같습니다. 긴장감이 있었죠 ㅎㅎ

탐 크루즈가 정말로 그 배역을 원했고 또 헌신했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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