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과 연애의 닮은점

in #kr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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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관계를 넘어서게 하는, 고백

복싱은 혼자 하는 스포츠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틀렸다. 복싱은 함께 하는 스포츠다. 서로 치고 받는 상대와 함께하는 스포츠다. 상대가 없다면 진정한 복싱은 애초에 시작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였을까? 매일 체육관에서 땀을 흘리며, 복싱과 연애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쉬이 납득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잔혹하게 서로 치고 받는 복싱과 사랑스럽게 서로 보듬어 주는 연애가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닮은 것일까?

연애는 기적과 같은 일이다. 어제까지 누구인지도 몰랐던 사람과 다음날 순식간에 깊은 관계로 들어서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연애가 아니라면 우리네 삶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상처받기 쉬운 존재다. 그래서 쉽사리 누군가와 가까워지지 못한다. 누군가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타인들과 영원히 거리두기도 하고, 누군가는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천천히 타인들과 가까워지려한다.

연애는 이런 일상적 관계를 훌쩍 뛰어넘어버린다. 어제까지는 거리 두어야 할 ‘남’이었다가, 오늘은 누구보다 가까워지는 ‘님’이 된다. 연애가 이런 기적을 가능케 하는 내적 원리는 무엇일까? 고백이다. 연애는 고백으로 시작되기에 일상적 관계를 훌쩍 넘게 된다. 서로의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그들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이 흐른다. ‘저 사람은 나를 좋아할까?’라는 긴장감이다. 이 긴장감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둘은 일정한 거리를 둔 ‘남’이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이 고백하는 순간 그 팽팽했던 긴장은 끊어진다. “오랫동안 좋아해 왔어요.” 이 고백으로 서로 유지해왔던 긴장이 일시에 해소된다. 그 긴장은 너무나 팽팽했기에 그 긴장이 해소되는 순간, 둘은 순식간에 일상적 관계를 훌쩍 넘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게 된다. 마치 팽팽하게 잡아당긴 고무줄이 순식간에 수축되어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고백이 만들어 내는 긴장이 두 사람을 극적으로 가까워지게 만드는 셈이다.

복싱의 고백

복싱도 그렇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서로 치고받다 보면 서로 친해지기는커녕 서로 감정만 상할 것 같다. 하지만 놀랍게도, 현실은 정 반대다. 체육관에서 자주 보았지만 서로 말 한마디 해본 적 없는 두 사람이 있다. 어느 날, 이 둘이 링에 올랐다. 공이 울리자마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로 죽일 것처럼 치고받는다. 3분 3라운드를 그렇게 서로 치고 받는다. 9분이 순식간에 흘렀고 다시 공이 울린다.

그렇게 서로 치고받다 지쳐버린 두 사람은 감정이 상하기는커녕 서로를 부둥켜안고 서로 수고했다며 연신 서로를 격려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링에서 내려와서도 한 참을 웃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뿐인가. 다음날부터 체육관에서 마주치게 되면 마치 10년을 알고 지낸 친구처럼 가까워져 있다. 이런 관계 역시 서로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려는 일상적 관계를 훌쩍 넘어 있다. 마치 연애처럼 말이다.

체육관의 두 사람이 일상적 관계를 훌쩍 넘어 친밀해진 내적 원리는 연애의 그것과 같다. 서로 치고 치고받아야 할 상황이 만들어내는 팽팽한 긴장감 때문이다. 서로 한 번도 주먹을 섞어본 적 없기에 상대의 주먹이 얼마나 쎈지 확인한 바 없기에 긴장된다. 그 팽팽한 긴장감이 공이 울리기 전까지 유지된다. 하지만 그 팽팽한 긴장감은 공이 울리고 서로 치고받는 상황에 돌입하는 순간, 일거에 해소된다.

공이 울리고 서로 주먹을 섞는 순간이 고백의 순간인 셈이다. 팽팽했던 긴장의 해소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유대감이 있다. 그 유대감이 일상적 관계를 훌쩍 넘어 두 사람이 친밀해질 수 있는 도약을 가능케 한다. 연애에서 고백으로 긴장이 해소되어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것처럼, 복싱에서는 치고받음으로 긴장이 해소되어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이렇게 연애와 복싱은 닮아 있다.

그래서 나는 일상적 관계 너머의 관계를 원하는 이들에게 연애와 복싱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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