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에서 살아가는 20대들

in #kr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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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strated by @carrotcake



 젊음을 돈 주고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근데 말이다. 나는 나에게 100억을, 아니 10억을 준다고 하면 40대로 타임 워프할 생각이 있다. 내 주변에 애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돈 주면 그냥 나이를 먹겠다고. 이게 과연 그냥 나오는 소리일까?


 우리 세대는 취업난이 심각하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 최악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넣는 족족 떨어지는 바늘구멍 같은 취직 시장을 맞대며 산다. 나름 괜찮은 국립대 문과 친구들은 취직이 잘 안 된다. 행정고시 공부하는 친구, 공무원을 준비하는 친구, 임용고시 준비하는 친구. 제각기 열심히 산다. 근데 하나같이 잘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올해 24살로, 여자 동기들은 모두 졸업하고도 남았다. 어디 취직했다, 어디서 자취하고 있다,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 한다는 소리. 적어도 이런 이야기 중 하나는 들려야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답이 없다. 풍문으로는 다들 취직을 못 해서 취업 준비생으로 살고 있다고 하는데, 잘 살고는 있는지. 오랜만에 연락이라도 할 수가 없다.


 저번에 아는 형에게 취직에 관해 물어봤더니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그 이후, 함부로 내뱉으면 안 되는 거라는 걸 알아버렸다. 슬픈 현실이다. 근황에 관해 궁금해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는 게. (참고로 그 형은 이름만 들어도 아는 국립대에 총학생회장까지 했던 형이었다. 스펙도 일반 학생들이랑은 차이가 났다.)


 우리나라는 정말 심각하다. 그냥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 이 나라는 대학교 나오기 전까지 독립이라는 걸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경제 구조가 아니다. 20살 이후에 알바를 한다고 쳐도 월 120~130 남짓인데 그걸로 보증금 내고 월세 내면서 원룸 살기도 빠듯하다. 아니 살 수는 있다. 근데 그다음은? 만약 대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치자. 뭘 해야 하나? 그냥 막상 아무 데나 들어가서 일을 배워야 하나? 아니? 적어도 자격증은 있어야 한다. 그럼 자격증을 따러 학원에 다닌다. 생활비에 학원비에 교통비까지. 식비는 어떻고? 물가? 요즘 바나나 하나에 600원 한다. 라면? 요즘 1500원은 기본이다. 길거리에 파는 싼 컵밥이나 간단한 분식점들, 그마저도 대학로에 즐비해 있다. 적어도 한 끼에 3000원은 줘야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갓 성인이 된 헬조선 젊은이들은 숨통이 턱턱 막혀온다. 막연한 꿈에, 앞은 안 보이고, 나아가려고 하면 돈이 뒤에서 바짓가랑이를 잡아끈다. 뭐 어쩌라는 건데? 부모님 지원을 받지 않고선 이 나라에서 살아가기 힘겹다. 이러한 측면에서 나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찬성한다.


차라리 알바라도 하면서 먹고 살 수 있게라도 만들어 줘라. 뭐라도 하면서 살려고 하는 애들 좀 살려줘라. 고학력으로 비비면서 저기 위에 발버둥 치다 떨어지는 애들을 밑에서라도 받아주는 곳을 만들어 줘라.


 만약 대학을 간다면? 웬만한 집 아니면 대학도 잘 못 간다. 대출? 기본이다.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 못 하면 집안이 망한다. 진짜다. 대학교 연별로 등록금이 국립대는 500만 원 정도. 사립대는 500만 원에서 1000만원을 웃돈다. 미쳤다. ㅋㅋ 이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 건데? 부모님은 노후대비가 없으시나? 아니다. 100세 시대에 자식 챙기느라 돈 다 쓴 부모님들은 결국 자식들이 돌봐야 한다. 무조건 돈을 잘 벌어야 한다. 기업에서, 고학력을 요구하는 곳은 많은데 이런 구조로 살아가도록 만드니까 취업 구멍은 좁다. 대신 학원비며 과외비로 돈 나갈 구멍은 넓게 해놨다. 막말로 돈 없으면 잘 살지 못한다.


어디서 자식 결혼 전까지 부모가 쓰는 돈을 조사한 결과를 본 적이 있다. 약 2억 3천만 원이란다. 우리는 걸어 다니는 집 한 채다. 우스갯소리로 군대 동기들끼리 하던 말이 피부로 와닿으니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다.


 어려운 건 힘들다. 머리를 쓰거나 몸을 써야 한다. 공부도 몸을 쓰는 것의 일종이지만 몸으로 부딪히는 것보다는 좀 덜하긴 하겠지. 머리가 소비하는 칼로리가 제일 많다고 하는데 뭐... 아무튼, 우리나라 사회는(우리나라가 심할 것 같다.) 이 머리를 잘 쓰는 사람에게 돈이 가게 되어있다. 석유 시추공이 빌 게이츠보다 돈을 더 잘 벌지 않는다. 배관공이 삼성 신입 사원보다 돈을 잘 벌지 않는다. 하루 12시간을 쉬지 않고 무거운 걸 들어도, 머리를 잘 쓰는 사람보다 돈을 잘 못 번다. 한 마디로, 지금 우리나라는 육체노동을 아주 값싸게 치고 있다. 이런 구조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한다. 어려운 건 힘들다. 과정이든 결과든. 근데 힘든 건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쉬운 예가 단순 노동이다. 반복 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봉급이 그리 세지 않다. 하지만, 유동적인 일을 하는 사무직은 몸은 비록 덜 힘들어도 돈은 더 많이 받는 사람들이 많다. 왜? 머리를 잘 쓰니까. 어려운 것들을 해내니까. 바로 이거다. 어려운 걸 해내는 사람이 되자. 그러려면 뭘 해야 하지? 그렇다. 대학을 나와야 한다. 자격증을 따야 한다. 남에게 뒤지지 않는 특별한 스펙이 있어야 한다. 남들 다 하는 건 기본이고 그보다 더 나은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돈을 잘 벌면? 나중에 30대 돼서 그러겠지.


"아, 학자금 대출 갚아야 하는데. 씨발."


 조던 피터슨의 강연을 보면서 느낀 게 있는데, 잉여 재산에 대한 얘기다.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잘 살고 없으면 없을수록 못 산다는 건 '파레토 분포'로 증명이 잘 되어 있다. 이건 그냥 현상이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만큼 올라갈 길이 잘 닦여져 있고 밑에 있는 사람들은 올라갈 길이 가시밭길이라는 소리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냐? 가만히 넋 놓고 ㅈ같은 인생이네, 왜 이렇게 태어났지. 하고 있어야 하나? 그건 너무 허무주의지 않나. 헬조선임에도 우린 살아가야 한다. 정 안 되면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서 이민을 하든지 아니면 돈 없어도 잘 살 방법을 궁리하든지 해야 한다. 취직이 잘 안 되면 돈을 못 번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 세상이다. 잘 살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취직을 잘해야 한다. 그게 대학생들의 현실이다. 진짜 현실.


 토익이다, 토플이다, 공무원 시험이다, 기사 자격증이다, 엄청 많다. 해외 봉사나 교환 학생 같은 이력은 쳐주지도 않는다는데, 한 거 아무것도 없는 나는 무슨 낯짝으로 앞길 창창한 애들 옆에서 이력서를 들이밀까. 이제 철학과로 완전히 전과해서 심리학 대학원을 목표로 달려가야 하는데 걱정이다. 걱정만 하면 안 되는데 걱정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환경인 것 같다. 학업 문제만이 문제가 아니다. 집안 문제나 인간관계 문제의 틀은 항상 나를 옥죄고 있다. 아니 그냥 틀은 항상 존재하는데 내가 그렇게 느낀다.. 이런 환경, 상황 속에서 난 뭘 얻어갈 수 있을까? 진짜 이 헬조선에서 어떻게 하면 그냥 입에 풀칠이라도 하며 살 수 있을까?


 난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나대로 하는 것도 있고 나름의 목표도 있다. 부모님 덕에 잘 먹고 산다. 근데 내가 잘살지 못 하면 부모님은 누가 돌봐주나...회사 안 들어가고 창업하거나 다른 일 찾아서 하면 된다고? 그런 기회나 타이밍은 쉽게 오지 않는다는 걸 안다. 쉽지 않다. 그냥.


그냥 닥치고 뭐라도 하는 수밖에.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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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생각... 생각... 생각...
고민이든 뭐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단순한 답답함과 걱정이겠지요.

깊이 공감해요.
얼른 기본소득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정말 말 그대로 '기본소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음... 슬픈 얘기지만, 그냥 할 수 밖에요.

내일은 또 토익 학원에 가야해요.

오늘은 또 자격증 공부를 해야해요.

집 하나 살 수 있으련지~~ 후..

탈출하거나 견뎌내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격공하고 갑니다
힘냅시다라는 말밖에 안떠오르네요

힘냅시다.

고민할수 있다는건 그래도 참 좋은것이라 생각합니다.
의욕없이 신세한탄만 하면서 난 뭘해도 안된다며 주저 앉아있는 친구들을 많이 봤거든요.
시린님의 청춘을 응원합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하루에 최소 두세번씩은 하는 생각..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모두가 힘들어하기에 누군가에게 토로하기도 힘들고,
그저 암울하다

지레 겁 먹고 있는 게 아니라, 보고 듣는 거니까 예민해지네.

16년 후에 10억이 지금의 2억 수준이면 어쩌시려고....

크흫.. 그건 생각지도 못 했네요.ㅋㅋ

앗..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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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우리나라에서는 아이 안 가지려고 이미 마음먹었습니다. 내 자식들에게는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게 하지 않으려고요.

휴...부모님도 자식 낳으라곤 안 하신다고 그러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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