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보며

in #kr6 years ago (edited)

초등학교 시절, 나는 왕따였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친구들 대부분이 나를 떠나갔다. 이유는 나 자신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며 집에 있어야만 하는 시간. 아니, 집에 있고 싶은 시간이 많아졌다. 그것은 어쩌면 가족에 대한 외로움이었을수도, 혹은 나의 반감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나는, 소심하고 어두워졌다.

평소 운동을 좋아해선지, 많이 먹고 운동하는 것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 운동하기 위해 먹었다면 어느 순간부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시작했다. 나의 친구는 컴퓨터였고, 책이었다. 변하는 모습에 적응 못 한 친구들은 날 마주할 때 겉으로마 웃을 뿐, 진정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아이들은 몇몇 남지 않았다.

혼자가 편했다. 내 입으로 이야긴 우습지만, 철이 빨리 들었다. 항상 무언가 일이 있어야한다면 나서서 해야했다. 무언가에 대해 항상 만족시켜야만 했다. 엄마가 없어서 그래, 라는 이야기를 결코 듣고 싶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지만 엄마, 아니 이젠 그 사람이 내게 해준 것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게 남은 그녀와의 기억은, 배고팠던 나에게 라면을 끓여주고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 모습 뿐이었다. 어렸던 나에겐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질 뿐이었다. 오르기에는 나는 아직 너무 어렸다.

처음 그녀가 집을 떠난 이후, 컴퓨터는 손을 대지 않았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지만, 그 때의 나는 컴퓨터는 원수와도 같은 존재였다. 내 동생이 태어났을 때 사랑을 독차지하는 모습을 보는, 그 때의 감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다른 점은 내 동생은 나의 동생이지만 컴퓨터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고, 어느새 마음은 망가질 때로 망가졌고, 몸은 비만 수준으로 끝나지 않을 정도로 불어 있었다. 인생 최고의 몸무게가 초등학교 때 였다는 건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었다. 그리고 몸이 불어가며, 친구들과의 연락과 소통을 끊고 나서는 게임에 빠져 살았던 듯 했다. 컴퓨터의 친구가 된 것은 아마 이 때 였다. 컴퓨터 속 나의 캐릭터는 영웅이 되기도, 사랑을 받기도, 꿈을 이루기도, 그리고 멋있는 모습을 지니기도 했다. 나와는 다른 모습을 지닌 컴퓨터 속 캐릭터를 동경하고는 했다.

그러던 나에게 엄마가 생겼다.

그녀는 나를 아껴주고, 위로해주고, 함께 고민해주었다. 새엄마였지만,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나는 과거보다 지금이 더 좋았다. 사랑받는다는 것을 처음 느끼는 순간이었다.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의 겨울방학, 3개월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25키로를 감량했다. 그리고 부모님의 직장 교통편 때문에, 먼 듯 멀지 않은 곳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그 곳에서는 새로운 친구를 만났다. 그러면서 야구라는 새로운 꿈의 방향을 좇기도 했다. 꿈이 생기자 욕심이 생겼다. 뚱뚱한 사람들을 비난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때의 나보다 모든 면에서 나아졌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비록 남들보단 뛰어나진 않지만 뚱뚱했던 나보단 지금의 나가 우월하다고.

악바리는 그 때 부터였던 것 같다. 야구를 시작한 지 1년만에 평균 경력 7년의 야구부 선출 자리를 제의받았고, 1년을 더 보내니 에이스 자리를 제의받았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어릴 때 느끼던 경멸의 눈초리는 그 이후로 받은 적이 없었다. 평생 함께 하겠다는 친구는 몇 이었지만, 날 미워하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겐 생각치도 못한 존경의 눈초리도 받으며 학창생활을 했다. 해야한다는 의지는 나를 많은 것에서 다르게 만들었다.

황금기가 무한히 가면 좋겠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혹사로 인한 어깨 연골 손상, 수술을 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은 가능했지만 야구는 불가능했다. 수술할 형편이 되지 않았던 집안 형편 상, 나는 야구를 포기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내게 남아있는 것은 없었다. 아니, 사람들만이 남아있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 지 찾아다녔다. 어릴 적 경험에서 익힌, 하면 할 수 있다라는 마인드 덕에 슬럼프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죽을 만큼 공부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 내 머릿 속에는 알파벳의 순서 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죽어도 어쩔 수 없지, 생각이 들 정도로 무리했다.

비록 첫 시험에서 30점이라는 수학 점수와 20점이라는 영어 점수를 받았지만, 나 자신이 무언가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나 자신을 자극했다. 변화와 진화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어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적어도 10명을 세우면 한 두명 안에 들 수 있는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주변에선 기적이라고 했지만 세상엔 기적은 없었다. 무엇이든지 간에 해야만 이루어졌다. 만약 내가 조금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욕심 뿐이 없었다.

그러나 원하는 대학을 가진 못했다. 타고난 것은 이길 수 없는 것일까 생각했다. 가장 열심히 했던 영어는 나를 배신했다. 목표치에서 많이 하향지원을 하여 이곳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비록 진짜 아끼는 친구들과 오해로 틀어졌지만, 미안하고, 언젠간 다시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변화는 나 자신이 긍정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있는 이야기를, 단순 지어낸 이야기, 그저 자기발전서에 있는 진부한 내용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러한 삶에 만족하고 있다.

비록 목표하던 것을 모두 이루지는 못했지만 실패했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그저 돌아갈 길을 찾는 과정을 차근차근 밟는다고 생각한다.

내 삶이 누군가에게 교훈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닐 뿐 더러, 지나가다보면 하나 둘 쯤 보이는 흔한 사람에 불과했다.

근데, 그런 사람도 이런 생각을 하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글솜씨가 없어, 글이 전체적으로 난잡하다는 것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이 글은 결국 뻘글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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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앞으로도 그럴거고 :)

우왕키굳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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