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북미정상회담의 주역 캐릭터 분석 - 트럼프와 김정은, 그리고 문재인

in #kr6 years ago

시오노 나나미의 역작 로마인 이야기 4권(율리우스 카이사르편)에 보면 그녀가 당대 주역들의 캐릭터를 야심과 허영심의 관점에서 분석한 도표가 나온다. 바로 아래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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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카이사르의 라이벌은 폼페이우스였다. 갈리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카이사르의 군사적 재능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은 폼페이우스가 유일했다. 시오노 나나미는 폼페이우스가 야심가라기보다는 허영가라고 말한다. 카이사르는 허영가라기보다는 야심가였지만 허영심도 폼페이우스 못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허영심이란 남들이 좋게 생각해주는 것을 기뻐하는 심정'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이 두 사람의 캐릭터 차이는 그들이 맞닥뜨렸던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행동의 차이로 나타난다. 폼페이우스는 젊어서부터 탁월한 군사적 재능으로 승승장구했다. 그 때문에 그는 로마 원로원의 심한 견제를 받았다. 그가 40대 중반의 나이에 해적 소탕과 오리엔트 제패의 임무를 훌륭하게 해내고 개선했을 때 원로원의 관심사는 폼페이우스 휘하 10개 군단의 처리문제였다. 그가 이 병력을 해산하지 않을 경우 원로원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허영가는 원로원이 개선식을 허가하자 아무 생각없이 군대를 해산한다. 그러자 무서울 것이 없어진 원로원은 그를 가지고 놀기 시작한다.

반면 갈리아 전쟁을 끝내고 개선한 카이사르는 군단을 해산하지 않은 채 원로원과 신경전을 벌이며 로마 최고위 관직인 집정관 자리를 노린다. 그는 최고권력자가 되길 원했고 그 권력을 이용해 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원로원이 폼페이우스를 끌어내 자신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드러내자 휘하 군단을 이끌고 그 유명한 루비콘강을 건넌다.

시오노 나나미의 이 분석을 6월 12일 열릴 북미 정상회담의 주역들인 트럼프와 김정은, 그리고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적용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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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백악관 홈페이지)

먼저 트럼프는 매우 허영심이 큰 캐릭터다. 그의 허영심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그는 폼페이우스 같은 인물은 아니다. 그는 그럴싸한 의전 정도로는 만족시킬 수 없는 인물이다. 난 그가 가진 허영심이 폼페이우스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는 야심가이기도 하지만 그의 야심은 허영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나는 이 점이 그 동안 언론이 간과했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싶어한다. 미국의 역대 어느 대통령도 해결하지 못한 북핵문제를 탁월한 협상능력으로 해결한 대통령으로 남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는 껍데기 뿐인 타이틀은 결코 원하지 않는다. 그는 협상의 내용을 매우 중시한다. 여기에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는 언제든지 판을 걷어치울 것이다. 그의 허영심은 실질적인 성과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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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김정은은 허영심보다는 야심이 큰 캐릭터다. 그는 선대의 지도자였던 김일성, 김정일과는 달리 이념에 경도되어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보수세력은 자꾸 그가 정말 핵을 포기하겠느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데 난 그들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난 그가 정말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단, 거기에는 체제보장이라는 반대급부를 얻는다는 조건이 붙어있다. 난 그가 문대통령 앞에서 북한의 열악한 교통사정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그의 시각이 매우 현실적인 부분에 고정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념의 영향을 받는 사람이었다면 절대 적국의 최고지도자 앞에서 그렇게 솔직하게 자국의 현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목적이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어 경제를 살리는 것에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게 해서 그는 북한정권을 존속시킬 토대를 마련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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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문대통령은 허영심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다. 이 분의 허영심은 제로에 가깝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난 문대통령이 야심가라고 보는데 사사롭지 않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그의 야심은 노무현의 죽음이라는 사건에서 비롯됐다고 보여진다. 그의 죽음을 통해 투영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이 그 출발점 아닐까? 혹자는 그에 대해 너무 좋게만 보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면 허영심이 제로에 가까운 그가 정치판에 뛰어들고 대권에 도전하는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는 권력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사사로운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공적인 사명감이 정치적 야심으로 발전한 케이스다. 전형적인 정치인의 기준에 비추어 봤을 때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다. 그래서 그는 중재자 역할에 적격인 사람이다.

나는 트럼프가 문대통령을 좋아하는 이유가 이것이라고 본다. 트럼프 같은 허영가는 자신과 같은 부류의 허영가를 싫어한다. 자신이 독차지 해야 할 영광을 노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 허영심 제로인 문대통령은 자신의 공적을 탐하지 않을 인물로 보였을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트럼프와 아베의 관계를 보면 왜 그가 아베에게 소홀히 대하는 지도 설명이 된다. 아베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그에게 납작 엎드렸지만 트럼프 만큼이나 사사롭고 허영심이 많은 인물이다. 트럼프는 이것을 알아본 것이 아닐까?

6월 12일에 있을 북미 정상회담은 실리를 챙기려는 허영가와 생존의 위기에 몰린 야심가의 만남이다. 거기에 사사롭지 않은 야심가가 중재를 맡고 있다. 이 정도 그림이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봐야 한다. 나는 트럼프가 북한의 존재까지 위협할 생각은 없다고 본다. 그는 이 판에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도 체제보장만 받을 수 있다면 트럼프를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어차피 경제지원은 문대통령이 최고권력자로 있는 남한으로부터 받는 게 속 편하다. 문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나 남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향후 최소 10년 동안은 민주당 정권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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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고 공감가는 분석이네요~
세계가 허영심없는 문재인을 주목하게되면.... 트럼프의 질투가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기네요..

그래서 저도 회담이 끝난 후 전세계 언론이 트럼프보다 문대통령에 주목할까 우려가 되네요..ㅎ

대단한 통찰력입니다. 짝짝짝~

트럼프 같은 경우는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죠. 특히 저는, 트럼프가 자본주의의 정점에 선 인물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투자, 투기의 제왕입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자기 이득을 잘 챙기는 사람이죠. 그의 비결 중에서 저는 '딜을 위한 딜'이라는 말이 인상깊더군요.
트럼프는 딜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정점에 서지 않았나 싶네요. 호나우딩요가 그 누구보다 축구를 즐기며 했기에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것처럼.

그런 사람이기에 절대 불리한 협상은 하지 않을 겁니다...
언제나 자기에게 유리한 딜을 하며 이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기 때문에

트럼프에게는 이번 회담이 그 동안 갈고닦은 거래의 기술을 펼쳐보일 절호의 기회로 보였겠죠..ㅎ 12일이 기대됩니다..^^

김정일 관련 내용을 알아갑니다.정성글에는 추천이라고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이 분들의 이야기 정말 흥미로워요
기다려봐야겠죠^^

특히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났을때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정말 궁금해요..ㅎ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흥미로운 세 사람이 만났죠. 어쩌면 우연이 낳은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얼마나 긴 시간을 불안감에 젖어 살게 될까요... 부디 이번 기회에 한반도의 평화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8일 남았네요..!!!

우리 역사에서 정말 중요한 지점에 와 있는거죠..ㅎ
저도 성사가 되기를 날마다 기도하고 있어요.

로마인 이야기의 분석을 접목시킨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전 아직도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인센티브가 충분한지는 의문이에요.

김정은이 충분한 인센티브를 받아낼 수 있을까요?
저는 약간은 불만스러운 선에서 합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 판은 북한에게 그리 유리한 판이 아니라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저는 남한만 불리하고 북한과 미국은 그런대로 괜찮은 딜이 될 것 같아서 불안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뭔지 알고 싶네요.

퇴근 후 한번 생각을 정리해서 써 보겠습니다.

관련되지 않은 내용들도 있지만, 댓글로 달기엔 너무 길어서 포스팅에 포함시켰습니다: https://busy.org/@glory7/3nbcbq-too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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