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나의 2014년 4월 16일

in #kr6 years ago

2014년 4월 16일.
그 때 나는 지휘통제실에 있었다.
당직대에서 틀어놓은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배가 넘어가던 그 영상을.
영화처럼, 그 커다란 배가 그냥 옆으로 눕는 그 장면을.

배가 반쯤 잠긴 모습이 어쩐지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영화에서 그런 극한의 장면들이 많이 연출되었기 때문인지,
처음 보는 그 충격적인 순간에도 나는 침착했다.

찰리와 초콜렛 공장을 떠올렸었다.
화면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초콜렛을 꺼내 현실로 가져오는 것처럼,
손을 뻗으면 화면 안의 배에 닿아 다시 세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화면 속에서 넘어지는 배는 한손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그 손을 뻗고 싶었다.

아이언맨이든 슈퍼맨이든 나타나 쓰러지는 배를 다시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 배를 두동강 내고 갇힌 사람들을 해방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영화 속에서 뉴스를 보는 엑스트라1이 아니었다.
현실을 살아가는 시민 1이라는 것을 고통스럽게 깨달았다.
걱정스럽게 뉴스를 보다 마침내는 탄성을 지르며 안심하는 일은
대본에서만 존재하는 역할이었다.

배는 바닷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처음 느끼는 안타까움과 절망과 당혹스러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영화와 같은 이 상황이, 전혀 영화같지 않은 결말이 절망스러웠다.
함께 그 장면을 목격한 동료들도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일상을 살았다.
아니, 그렇게 살 수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본 것은 넘어지는 배 뿐이었기 때문에.
카메라가 보여준 것은 폭발도, 외상도 없이
평화롭게 물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배 뿐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숨이 꺼져가는 단 한사람도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사람들의 삶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이듬해 나는 군생활을 끝냈다.
하지만 말라위로 떠나기 직전에서야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이번에도 안 가면 정말로 못 갈 것이었으므로.

안산에 사는 동생이 있었다.
군생활을 할 때 제법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다행히 함께 가주었다.
가까운 곳은 아니었지만, 가기 어려운 곳도 아니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한번씩 눈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들의 얼굴도 보려고 노력했다.
이름이 너무 많아서, 멀리 있는 이름은 읽기가 힘들었다.
뒤쪽으로 갈 수록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편지와 선물들이 많았다.

울었다.
생각보다 많이 울었지만, 많이 울었다는 말을 감히 쓸 수나 있을까.

너무 늦게 찾아간 무관심함에,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던 무력함에,
안전하지 못한 나라를 물려준 무책임함에,
미안해서 울었다,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 말고는 내가
그 꽃같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게 없어서 울었다.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어른이라 비참해서 울었다.

벌써 4년이 흘렀다.
시간이 지났지만, 세월호를 처음으로 뉴스로 본 순간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은 오죽할까.
시간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잊혀지지도, 무뎌지지도 않을 것을.

우리는 지난 4년간,
조금 더 안전한 사회와 나라를 만들었을까.
살아남은 죄책감으로 가까스로 삶을 견뎌내는 생존자들에게,
사랑하는 이 대신 살 듯 꾸역꾸역 순간을 살아내는 유가족들에게,
그래도 삶은 살만하다고 말 할 수 있는 믿음을 주었을까.
조금 더 울어도, 화내도, 아파해도 괜찮다는 위로를 주었을까.

어제는 영화 덩케르크를 봤다.
배가 침몰하는 순간을 담은 장면을 보다 고개를 돌려버렸다.
내가 뉴스에서 보지 못한 그 장면이었다.

우리가 만약 그 장면을 2014년 4월 16일에 봤더라면,
물거품을 내뿜는 사람들의 얼굴을 우리가 목격했더라면,
우리는 지금처럼 무관심할 수 있었을까.

4년이 지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것 뿐이라니,
그래서 영원히 기억될 곳에 기록하기로 했다.
그 때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2018년의 나에게 2014년 4월 16일은 어떻게 기억되는지.

깨달음도, 반성도, 해결책도, 다짐도 없는데,
그래도 글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처구니 없이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며 기적을 기대하던 바보같은 순간을,
뒤늦게 찾아간 분향소에서 느꼈던 그 부끄러움과 슬픔을,
4년 뒤 타국에서의 4월 16일은 어떻게 찾아오려하는지를
기억하기 위해서.

말라위는 아직 4월 15일이다.
16일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글을 써도 도무지 정리가 안 되고 더 복잡하고 아프다.
여전히 미안하고, 무력하고, 비참해서 슬퍼지는 밤이다.

다른 이의 20140416을 듣고 싶다.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기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Decline은 걸지 않았습니다.
모두 아시는 것처럼 보팅액이 너무 낮으면 노출이 안 되니까요.
국가적 슬픔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어요.
좋은 일에 쓸테니 보팅해달라는 식으로 읽힐까봐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글 올립니다.
이 글로 Payout되는 스팀달러는 @girina79님의 후원프로젝트를 돕는 데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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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걸 생각나게 해주네요.. 저도 사건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뭔가 누군가가 해결할 수 있지않을까 현실에서도 아이언맨 슈퍼맨 정도는 아니어도 그 상황을 바꿔줄 사람은 있지않을까 라고 생각을 하는데 최근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면서 슬프기도하면서 인간의 무기력함도 느껴지더군요 그 상황이 제게 오지않을거라는 확신은 힘들고... 씁슬합니다

그날.. 전 아무것도 할수 없었습니다.
모든게 손에 안잡히더군요.

저도 믿기지가 않았어요
영화를 보는 것 같았구요..
그리고 난뒤에 극적인 결과가 없었을때..
아 이게 현실이구나 하고 깨닫고 참 많이 울었습니다.

저는 저 날 회사에서 점심 먹다가 티비로 봤어요. 뭐지? 구했다는거야? 아니라는거야?

써니 샤이니님은 어리실 때여서 기억 못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처음엔 삼풍백화점 사고 같을 줄 알았어요. 건물이 무너지고 2주가 지나서도 구조 되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당시 매일 밤 오늘은 누가 구조 되었을까 하며 뉴스를 봤던 기억에, 세월호도 그럴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더라구요..
어린 아이들이어서인지, 아직 원인조차 규명이 안 되어서인지, 덮으려고만 하는 그 당시 분위기 때문인지.. 그 사건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고, 우울해지는 건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전 국민이 단체로 우울해지는 경험을 한거죠.

정말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시고 4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때의 심정을 잘
표현내 주셔서 다시 한번 저도 그때가 오늘처럼 생생해 지네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함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먼저 간 어린 동생들에게도 다시 한번 미안하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어제 밤에 이 글을 읽고 한참 가슴이 먹먹했어요. 이번주를 맞이하며 2014년 4월 16일을 계속 떠올리고, 그 때 써두었던 일기를 다시 들춰보았거든요. 그 날의 감정들이 되살아나는 듯해 꽤 힘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힘든 분들은 따로 있기에 반드시 기억하고, 간직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올리실 때 조심스러우셨을텐데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쏭블리님의 댓글에 무척이나 감사하고 또 먹먹했어요. 이제와서는 할 수 있는게 함께 울고 기억하는 것 뿐이라, 제가 할 수 있는 것에는 최선을 다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정말 늘 쏭블리님 덕분에 큰 위로를 받아요. 감사해요

페이아웃된 17.039SBD은 @girina79님께 송금하였습니다. 비록 개인적으로 말씀드리고 송금한 것은 아니지만, 하고 계시는 후원활동이 끊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하는 분들의 작은 마음을 모아 전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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