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설악 메디그란폰도 후기-1

syskwl (75)in #kr • 6 years ago

2018 설악 메디그란폰도 후기-1 (2018.5.12)

2018.5.11(금)

애초에 급경사의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구성된 지옥의 사이클코스로 악명이 자자한 설악그란폰도 대회에 갈 마음이 전혀 없었으나 15년 가까이 훈련을 같이 하고 있는 단 한 명의 철인삼종 훈련파트너 B 의 강렬한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워 참가를 결정했다. 2년 전 겨울 동계 사이클 로라 훈련에 참여했던 인연으로 서코치가 이끄는 팀들과 같이 가는 행운도 얻었다. 어째든 시작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의 하늘처럼 청명했다.

사실 지방에 있는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차로 이동하고 잠을 자기 위해 숙소를 얻는 따위의 행위가 나이든 사람 입장에서는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니다. 이동과 숙소를 해결해 준다는 달콤한 유혹이 앞으로 있을 모든 불운에 대한 예상조차 가로막아 버렸다.

원래 7명이 두 차로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한 명은 부상으로 포기했고 또 다른 한 명은 자기 소속 팀과 같이 가게 되어 5명이 두 차로 출발하게 되었다. 운전하는 걸 취미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운전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운전대만 잡으면 버릇처럼 쏟아지는 잠과 싸우는 게 피곤하기 때문이다.

2시경 B의 집 앞에 모여 서코치의 차로 올 겨울 동계훈련 했던 곳이자 이번 여행의 출발지인 광진구의 루디프로젝트 사이클 shop 앞에 모였다. O가 가지고 온 Toyota 가 만든 거대한 Pickup Truck TUNDRA 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대부분의 남자들의 로망 중 하나는 멋진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일 것이다. 10년도 넘은 고물 산타페를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내가 그 중후한 탱크 같은 차에 마음이 뺏기지 않았다면 도리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서코치 차에 B, I 두 명의 철녀가 타고 난 O의 차에 탔다. 그는 가는 내내 자신이 어떻게 어마어마한 부를 가지게 되었고 자신이 보유한 3대의 자동차와 2대의 오토바이, 2대의 보트에 대해 자랑했다. 돈은 벌고 싶다고 모든 사람이 다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는 일종의 운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어느 정도 재산을 불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큰 부자는 되지 못한다.

난 돈 많은 사람을 부러워 한적이 없다. 정말 어렵고 못살 때 조차도 벌면 된다고 믿었고,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지나친 재산은 재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재산은 은행통장에 찍힌 숫자놀음에 지나지 않는다. 평생 다 쓰지도 못하는 재산을 가지고도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안달하는 사람이 측은하다. 그러나 O는 최소한 측은한 부자는 아닌 것 같다. 그는 죽기 전에 돈을 다 쓰고 죽을 거라고 얘기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잘 썼다.

휴게소 두 군데 들리고 속초에 도착하여 E-mart에 가서 저녁에 먹을 돼지목살 2.5근과 상추 및 마실 것들을 구입하고(92,000원) 중앙시장으로 이동하여 O 가 서울지인들에게 보낼 만석 닭 강정 4개를 주문한 뒤 그가 별장처럼 사용하고 있는 아파트에 7시 넘어 도착했다.

일상적으로 머무르는 집을 떠나 멀리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린 자유를 느낀다. 고기를 구워 안주 삼아 가지고 간 고량주를 마시고 기분이 좋아졌다. 서코치도 몇 잔을 받아 마시고, O는 소주에 맥주를 타서 마시고 철녀들도 맥주를 마시며 내일 다가올 처절한 고문 같은 고통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4시 20분에 모닝콜을 맞추어 두고 10시 조금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