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불빛 환한 곳

in #kr5 years ago



SNS를 하지않아 직접 얼굴을 보지 않으면 생사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창작자가 SNS를 하지 않는다? 꽤나 상징적인 메세지로 다가온다.주류 예술계에 몸 담고 있어서 굳이 SNS를 하지 않아도 찾아줄 관객이 많다는 뜻이 아닌가. 나머지 99%의 작가들에게 SNS란 사실상 유일한 홍보수단이기 때문에 그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오늘 J 작가를 만났다. 그는 SNS를 하지 않는다. 그는 나와 마찬가지로 주류 예술계에 있지 않다. 이름도 잘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이었다. 어떻게 소식을 알았는지 내가 전시하고 있는 갤러리에 문득 찾아온 것이다. "그럼 결혼은?" 이라는 질문이 명절에 되풀이되는 습관적인 질문이라면, 작가들 사이에서도 서로에게 묻는 습관적인 겨울철 질문이 있다. "올해 전시는 언제하세요?", "거기 지원서는 넣으셨나요?" 나는 J 작가에게 질문했다.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어디에도 지원서를 넣지 않았어요. 앞으로 전시 계획도 없구요. 응? 되돌아오길 확신하고 던진 부메랑에게 배반당한 나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뭐라구요?

'예술의 3요소' 같은 말들에 꼭 등장하는 요소는 '관객'이다. 더 과감한 말도 있다. 보고 들어줄 관객이 없다면 그것은 예술작품으로서 하등의 의미가 없다는 해석이다. 작가는 태그를 수십개씩 다는 관종이 되어야 마땅하다. 여기! 여기! 내가 한 것 좀 보세요! 5살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향해 앙탈을 부려야 한다. 작가에게 관객이란 간밤에 누나가 끓인 라면의 한젓가락 같은 것이다. 고마우면서도 언제나 부족한 존재다. 오죽하면 이승환같은 가수조차 <너만 들음 돼>라는 노래를 만들어 "너 말고는 이 노래의 존재조차 몰랐으면 해"라며 앙탈을 부릴까. 밤하늘의 별을 향해 전파를 발사하는 천문학자의 마음으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발표한다. 광막한 공간이지만 이 신호가 한명에게라도 더 닿길 바란다. 그런데, 내 앞의 J 작가는 이 세계의 룰을 깨는 대답을 한 것이다. 누나가 끓인 라면에 관심없는 동생이라니? 전파를 쏘지 않는 천문학자라니? 전시하지 않는 작가라? 심지어 SNS도 안 하는 작가라?

그는 매일 4시간씩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그리고 주변 하천을 산책한다고 했다. 요즘 자연이 너무 좋아요. 자연이 좋아요. 자연이. 이 말을 세번이나 했다. 산책로에서 평소 볼 수 없었던 새를 발견하는 날도 있다고 했다. 요즘은 자신에게 약한 분야인 과학 서적을 읽는다고 했다. 전기에 관한 책이라고 했다. 전시를 해봤으나 본인에게는 별 의미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림 작업은 즐겁다고 했다. 훗날 자기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으면, 그때 이벤트를 열어 초대하겠다고 했다. 여기보다 더 좋은 곳, 더 깨끗하고, 더 불빛 환한 곳을 갈망하며 지원서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미술 작가들의 행렬에 그는 동참하지 않았다. 이번 전시로 절필을 선언한 나는 그에게 남은 캔버스를 넘기기로 했다. 그의 표정은 환해졌다.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다음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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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각자에게 먹고 사는게 중요한지라 어쩔 수 없이 광고하고 불러모으고 하는 것도 있겠지요...

1%의 작가들을 제외하면 금전적인 측면에서 전시를 여는 것은 오히려 적자인 경우가 대부분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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