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십서: 삼십육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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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경십서: 삼십육계

《삼십육계》

우리 속담에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는 말이 있다. 도무지 상대할 수 없는 강적을 만났을 때는 무조건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라는 의미다. 이는 중국의 병서 가운데 하나인 《삼십육계》에 나오는 마지막 계책이기도 하다. 《삼십육계》는 전술 차원의 계책을 집중 탐사한 특이한 병서다. 모두 36가지다. 각 계책마다 ‘미인계’ ‘공성계’ 등의 독특한 명칭을 붙였다.

《삼십육계》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대략 명나라 말기에서 청나라 사이에 민간에 널리 퍼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그렇다고 《삼십육계》가 역사적 연원도 없이 문득 출현했던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연원이 오래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500년 가량 이전인 남북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조의 일원인 남제의 역사를 기록한 《남제서》 〈왕경칙전〉에 ‘삼십육계 줄행랑’과 취지를 같이하는 내용이 나온다.

여타 병서처럼 병도를 포함해 전략전술의 문제를 깊이 논하지 않고 오직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의 계책만 수록해놓은 까닭에 오랫동안 제대로 된 병서 대접을 받지 못했다. 문인은 말할 것도 없고 무인들조차 《삼십육계》를 언급하는 것을 꺼렸다.

《삼십육계》는 크게 〈승전계〉 〈적전계〉 〈공전계〉 〈혼전계〉 〈병전계〉 〈패전계〉 등의 6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3가지 계책은 아군이 우세할 때의 계책이고, 뒤의 3가지 계책은 아군이 불리할 때의 계책이다. 각각 6개의 세부적인 계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문은 글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 게다가 《주역》의 괘사나 단사, 효사 등을 인용하고 있어 이를 제대로 해석하는 일 또한 쉽지 않다.

《삼십육계》의 가장 큰 특징은 크게 3가지다.

  • 첫째, 비현실적인 요소가 전혀 없고 합리적인 사고로 일관되어 있다.
  • 둘째, 곧바로 쓸 수 있는 전술에 초점을 맞춘 까닭에 적을 속이는 궤도로 점철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이런 점이 오히려 《삼십육계》의 자랑이다. 삶의 지혜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단순한 속임수가 아니라 생사가 갈리는 전쟁터의 궤도를 언급한 덕분이다.
  • 셋째, 기존의 병서에 나오는 병법이론 이외에도 각종 사서에 나오는 전례를 참조해 새로운 병법이론을 만들어냈다.

역대 병서 가운데 역사 속에서 현실에 적용할 만한 이론을 대거 추출해 이론화한 병서는 오직 《삼십육계》밖에 없다. 《손자병법》의 이일대로(以逸待勞), 《전국책》의 원교근공(遠交近攻), 두보 시에 나오는 금적금왕(擒賊擒王), 《사기》에 나오는 위위구조(圍魏救趙), 《삼국연의》에 나오는 고육계(苦肉計) 등이다.

삼십육계 총설

《삼십육계》는 특이하게도 앞 대목에 36가지에 달하는 전략전술의 기본 이치를 제시해놓았다. 이를 통상 총설이라 한다. 헌법으로 치면 일종의 전문(前文)에 해당한다. 모두 29자다. 4자로 된 7개 절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 뜻이 매우 깊다. 총설을 모르면 36계가 등장하게 된 기본 배경을 알 길이 없다. 다음은 총설의 원문이다.

병법의 계책은 6에 6을 곱하니 모두 36가지다. 36가지의 계책 모두 실제 전투에 사용된 전술에서 나온 것으로, 그 운용 역시 실전에 응용할 때 그 빛을 발한다. 모두 음양이 상호 변환하는 이치에 기초한 것으로,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하는 기변(機變)이 모두 그 안에 있다. 기변은 객관적인 현실을 벗어나 임의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하면 이내 실패한다.

[六六三十六, 數中有術, 術中有數. 陰陽燮理, 機在其中. 機不可設, 設則不中]

육육삼십육(六六三十六)은 《주역》의 음효(陰爻)를 상징하는 숫자인 6을 여섯 번 곱해 모두 36가지의 숫자가 나왔다는 뜻이다. 인의도덕을 역설하는 유가처럼 양모정책(陽謀正策)을 택해서는 안 되고 반드시 병가와 법가 및 종횡가처럼 음모기책(陰謀奇策)을 구사해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취지를 밝힌 것이다.

음모기책은 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히 구사하는 모든 종류의 계책 내지 모의를 뜻한다. 《손자병법》을 비롯한 병서가 하나같이 역설하고 있는 궤사가 바로 그것이다. 역대 병서 가운데 궤사를 음모기책으로 표현한 것은 《삼심육계》밖에 없다.

귀곡자와 삼심육계

《삼심육계》와 마찬가지로 음모기책을 집중적으로 논하고 있다. 여기에 나오는 계책은 모두 11가지다.

첫째, 마음을 여닫으며 상대를 유인하는 벽합계(捭闔計),

둘째, 이야기를 뒤집는 식으로 상대의 반응을 타진하는 반복계(反覆計),

셋째, 상대와 굳게 결속하는 내건계(內揵計),

넷째, 벌어진 틈을 미리 막는 저희계(抵巇計),

다섯째, 상대를 크게 칭송하며 옭아매는 비겸계(飛箝計),

여섯째, 상대의 형세에 올라타는 오합계(忤合計),

일곱째, 상대의 실정을 은밀히 헤아리는 췌정계(揣情計),

여덟째, 상대가 속마음을 털어놓게 만드는 마의계(摩意計),

아홉째, 상황을 좇아 대응방법을 달리하는 양권계(量權計),

열째, 시의에 맞게 계책을 내는 모려계(謀慮計),

열한째, 기회가 왔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결단하는 결물계(決物計) 등이다.

이는 《삼심육계》와 비교할 때 총론적이면서 추상적이다. 그러나 기본 취지는 동일하다. 오랫동안 《귀곡자》를 병서의 일종으로 간주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귀곡자》에 나오는 11계는 《손자병법》 〈모공〉에 나오는 최상의 용병술인 벌모(伐謀)와 차상의 용병술인 벌교(伐交)의 계책을 보다 정밀하게 탐사해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장수의 군막보다는 주로 군주와 책사가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논의하는 묘당(廟堂)에서 나온다는 점이 약간 다를 뿐이다.

《삼심육계》에 나오는 36계는 주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전쟁터에서 장수가 군막 안에 참모들을 불러놓고 임기응변의 방안을 논의할 때 나오는 것들이다. 벌모와 벌교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무력을 동원해 적을 제압하는 벌병과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유혈전으로 치닫는 공성 단계에서 구사하는 것이 바로 36계다.

총설에서 “계책 모두 실제 전투에 사용된 전술에서 나온 것으로, 그 운용 역시 실전에 응용할 때 빛을 발한다”고 언급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원문은 ‘수중유술(數中有術), 술중유수(術中有數)’이다.

《삼심육계》는 술(術)과 수(數), 계(計), 책(策)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36계는 곧 36책, 36술, 36수나 마찬가지다. 원래 ‘수’는 책략 내지 계략의 뜻으로 곧 전략을 의미한다. ‘술’은 방술 내지 법술의 뜻으로 곧 전술을 뜻한다.

수중유술, 술중유수는 전략 속에 전술이 담겨 있고, 전술은 전략 속에서 나온다는 뜻을 담고 있다. 전략과 전술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삼심육계》와 《귀곡자》는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공히 음모기책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용병에 관한 계책은 모두 47개가 있고, 그 가운데 11계는 벌모와 벌교, 나머지36계는 벌병과 공성의 계책에 해당하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삼심육계》를 《귀곡자》의 자매편으로 간주한다.

‘수중유술, 술중유수’ 뒤에 나오는 음양섭리 구절은 《삼심육계》에 나오는 전략전술이 기본적으로 《주역》의 음양론에 입각해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주역》을 관통하는 음양론을 통해 승패의 이치를 밝히겠다는 취지가 선명히 드러나고 있다. 《귀곡자》에 나오는 11계를 일명 음양술 내지 음양계로 부르는 것과 취지를 같이한다. 여기의 섭(燮)은 원래 삶는다는 의미이나 여기서는 조화를 뜻으로 사용되었다. 섭리(攝理)의 ‘섭’과 같다.

주목할 것은 그 다음 구절인 기재기중(機在其中)이다. “전쟁터의 모든 기변(機變)이 음양론 이치 속에 있다”는 뜻이다. 기변은 임기응변의 줄임 말이다.

《손자병법》을 포함한 모든 병서에서 말하는 기(機)는 원래 천지 만물이 생장소멸하는 변환 과정에서 변곡점으로 작용하는 계기를 뜻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나 기회가 그것이다. 이 계기를 포착해 제대로 활용하는지 여부가 승부와 성패를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건은 스스로를 부단히 채찍질하며 계기가 오기를 기다리고, 계기가 왔을 때 과감히 결단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있다. 그것이 바로 《주역》에서 역설하는 자강불식이다. 《삼십육계》는 이를 임기응변, 즉 기변으로 표현해놓은 것이다.

적의 움직임을 하나의 계기로 간주해 이에 따라 응변하는 것을 말한다. 임기응변의 계책을 내는 것이 바로 기모(機謀)다. 기모가 《울료자》 〈십이릉〉에는 ‘기재어응사(機在於應事)’로 표현되어 있다. 적의 움직임을 하나의 계기로 간주해 적극적으로 응변해야만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취지다.

총설에서 ‘기재기중’ 구절 뒤에 기불가설과 설즉부중을 역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불가설은 적의 움직임, 즉 계기는 아군이 임의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설즉부중은 적의 움직임을 ‘객관적인 계기’로 삼지 않고 부정확한 정보 내지 개인적인 추론 등에 기초한 ‘주관적인 계기’를 좇아 용병하면 적중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실패를 의미한다. 총설의 요지는 한마디로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한 정밀한 관찰과 이를 토대로 한 임기응변이 바로 승패의 갈림길이다”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여타 병서와 비교할 때 《삼십육계》는 《주역》의 음양론이 병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천명한 대표적인 병서에 속한다. 음양론은 미신적인 오행론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주역》의 관점에서 보면 전쟁터의 승패를 포함해 세상의 모든 일은 끊임없이 변하는 변역의 틀 속에 있다. 변역의 흐름에 올라타면 오늘의 필부가 문득 내일의 황제가 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어제의 황제가 일순 오늘의 필부로 전락할 수 있다. 세계시장을 호령하는 오늘의 초일류 글로벌 기업이 내일도 계속 그러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주역》이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자강불식을 역설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병서는 이를 임기응변으로 표현해놓았을 뿐이다. 사령이 《삼십육계해독(三十六計解讀)》에서 《삼십육계》를 《손자병법》에 버금가는 최고의 병서로 극찬했던 것도 바로 이런 논리 위에 있다. 《손자병법》은 《도덕경》의 음양론에 입각해 부득이용병의 부전승에 방점을 찍고 있는 데 반해, 《삼십육계》는 《주역》의 음양론에 입각해 임기응변의 구체적인 표현인 기정병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삼국시대 위나라 왕필은 《도덕경》과 《주역》을 하나로 꿰어 통일적인 주석을 가했던 바 있다. 왕필의 관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으나 전혀 틀린 것도 아니다. 《삼십육계》가 시종 64괘의 괘사를 언급하며 병법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삼십육계》를 《손자병법》 수준의 병서로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삼십육계》를 제대로 된 병서로 간주하지 않으려는 한국의 풍토와 대비된다.

《삼십육계》는 음양의 대립을 통한 변증법적 지양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1계인 〈만천과해(瞞天過海)〉 계책이 태양과 태음의 대립을 통한 회통

제2계인 〈위위구조(圍魏救趙)〉가 적양과 적음의 대립을 통한 해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역서 병서 가운데 이처럼 《주역》의 음양론을 끌어들여 승리의 방략을 절묘하게 풀어낸 것도 없다. 36계가 모두 그렇다. 기정병용의 원리에 입각한 기모의 집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모두 《주역》의 음양론에 이르게 된다. 일각에서 《삼십육계》의 계책을 단순한 술책으로 파악하거나 심지어 부정적인 의미의 ‘음모’로 간주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삼십육계 총설 (무경십서, 2012. 9. 28., 역사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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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육계란 임기응변의 성격이 강한 거였군요
새롭게 알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보시 감사합니다

"육육삼십육(六六三十六)"이 한자로 보이니 신기합니다. 구구단 적어논 느낌, 그런데 《주역》의 음효(陰爻)를 상징하는 숫자인 6을 여섯 번 곱해 모두 36가지의 숫자가 나왔다는 뜻에서 그 이유가 있고, 풀이도 양모정책(陽謀正策)과 음모기책(陰謀奇策)을 담은 유일한 것이라는 놀랐습니다.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댓글 보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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