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의 결혼식'에서 음악의 역할에 관해 (약스포)

in #kr6 years ago

엔딩 OST에 관한 얘기는 예전에 썼던 글을 보세요:

https://steemit.com/kr/@wagnerian/5gyu1k

이번에는 영화 중간에 나오는 음악들에 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되도록 표현을 에둘러 하겠지만, 스포일러가 전혀 없지는 않을 거예요.

럼블 피쉬 ‹Smile Again›

럼블 피쉬의 ‹Smile Again›은 극중에서 승희가 좋아하는 노래이지요. 승희가 이 곡을 흥얼거리기도 하고, 우연이 승희를 위해 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결정적인 장면에서 승희가 이 곡을 듣기도 합니다.

전에 썼던 글에서 저는 이 음악을 극 중에서 활용하는 방식이 아쉽다고, 현실성을 잘 살렸을지는 몰라도 음악 자체의 강력한 힘을 연출에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제가 감독님이었다면, 김영광 님께 미안하지만 우연이 승희에게 노래하는 장면에서 립싱크를 시켰을 겁니다. 그리고 전문 가수를 기용해서 곡 자체의 해방감을 극대화하고, 영상은 슬로우모션 위주로 뮤직비디오처럼 만들었을 겁니다. 때에 따라서는 ‹스윙 걸스›의 맷돼지 장면이나 ‹웰컴 투 동막골›에서 오마주(?)한 그 기법을 응용하고요.

승희가 노래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로 전문 가수를 기용하고 ‹라라랜드› 비슷한 느낌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이 장면은 현실성을 무시해도 좋은 장면이 아니라서 그게 최선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웃어 봐' 음형과 '아버지' 음형

영화를 여러 번 보신 분은 눈치채셨을 수도 있는데, ‹Smile Again›을 변형시키거나 일부 음 소재를 공유하는 음악이 승희-우연 관계의 분기점마다 나옵니다. 특히 미식축구 장면에 나오는 음악은 거의 같은 곡을 리메이크한 수준이죠. 완전5도 상행 음형, 그러니까 '웃어 봐' 음형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아버지' 음형은 '웃어 봐' 음형과 대척점에 있으며, 버스 터미널 장면과 장례식장 장면에서 나옵니다. 버스 터미널과 장례식장은 누군가가 떠나가는, 그리고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공간이지요. 그리고 영화에서 떠남과 떠나보냄을 매개하는 것은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아버지'와 '이별'은 동의어에 가깝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아버지' 선율은 이렇습니다. '미솔솔시도 라도도래미 미솔솔시도 라도도시도.' (제가 절대음감이 없어서 시작음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선율에 딸린 화음을 보면 단3화음과 장3화음이 교차합니다. 단3화음은 슬프지만, 그것이 지나치지 않게끔 장3화음이 슬픔을 중화시킵니다. 그래서 이 음악은 배우가 연기로 표현하는 슬픔을 살짝 돕는 수준에 그칩니다. 음악이 통곡하면서 배우의 연기와 맞먹으려 든다면 주제넘겠지요. 이게 딱 적당해요.

세 번째 '떠남/떠나보냄' 장면에 나오는 음악은 '아버지' 음형과 일부 음악적 요소를 공유하지만 결국 다른 음악입니다. '아버지'가 이별을 매개하지도 않고, 이별의 성격이 다르기도 합니다. 이 얘기를 더 자세히 하려면 결정적인 스포일러가 될 테니 여기까지.

숨은 음악 찾기: 브람스와 드보르자크

엔딩 크레딧을 보니 브람스 왈츠 15번과 드보르자크 유모레스크 7번이 영화에 쓰였다고 나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들으면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한 곡인데, 명색이 클덕 출신인 제가 엔딩 크레딧을 보고서야 알다니 이게 말이 되나요. 그래서 도대체 이 곡에 어디에 쓰였나 싶어서 음악에 집중하면서 영화를 다시 봤더니…

둘 다 영화적 장치와는 아무런 관련 없이 그냥 결혼식장 '인테리어'로 쓰였더군요. 특히 드보르자크 곡은 우연이 친구 3인방의 개드립에 슬쩍 섞여 나와서 처음부터 알고 듣지 않는 이상 도무지 알아챌 수 없을 정도.

이걸 알아내느라 음악에 집중하다가 '아버지' 모티프를 인지할 수 있었으니 쓸데없는 노력은 아니었습니다. 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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