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예전 회사 생각

in #kr6 years ago (edited)

인맥 먼저


   사회 초년병이던 20대 중반, 점심도 잊고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아직 업무도 익숙하지 않고, 업무량도 적지 않았어서 당연한 일이었다. 더욱이 일 욕심도 조금 있었다. 그렇게 몇 일이 지났을까, 보다못한 한 동료직원이 나에게 꿀팁을 귀띔해주었다.

“이렇게 일 한다고 아무도 안알아줘요. 저기 과장님하고 매일 같이 점심 먹고, 인사 담당자랑 밥 한 번 먹는게 승진하는데 훨씬 도움되요”

   본인도 일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실적을 쌓아서 승진할 생각이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 관계를 만드는 것이 더 승진에 도움이 되더란다. 그리고 일을 잘한다는 것도 결국 인간관계에서 나온다고.

   그 말을 듣고 나도 다른 직원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쩐지 다들 업무를 적당한 수준에서 어영부영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 직원의 말이 맞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 조직은 일보다는 인맥이 우선이구나. 다면평가를 잘 받아서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려면 사람관계를 우선해야 하는구나.

연공서열 우선


   상사에 의한 고과평가가 진행될 즈음, 직원들이 한 명씩 상사를 찾아간다. 같은 직급 내에서 상대평가로 진행되는 까닭에 자신에게 A 등급을 달라는 청이다. 실제로 평가가 나온 결과를 보면. 무엇이 기준이 되었는지 분명해 보인다. 업무 기간 중의 실적과는 완전히 별개다. 유의미한 원인은 오로지 두 가지. 상사와의 개인적 관계, 그리고 승진할 때가 되었는지. “승진할 때가 되었다”는 표현은 참 웃기지만 그러한 것이 있다. 일을 잘해서 승진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승진을 한다. 이 때 최하의 고과를 받은 젊은 직원에게 돌아오는 위로의 말은 항상 뻔하다. “젊으니까 언제든 기회가 있다” 나도 적당히 눌러붙어서 시간을 채우면 승진할 거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직원들에게 “누가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나”를 물어보았을 때, “오래 일한 직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보지를 못했다. 다들 “일 잘하는 직원”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이 관여되었을 때를 제외하면”이라는 가정을 숨기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교되는 일 잘하는 직원을 시기하고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 내렸다. “일 잘하는 ㅇㅇ씨가 이것도 좀 해줘~” 그를 비꼬며 자신의 업무까지 떠넘기려 들었다. 상사도 여기에 한 패거리이면서, 연공서열로 정리된 직급 체계가 직원들의 사기를 고려한 최적의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조직은 기간이 곧 경력이 되고 능력이 되는구나. 일하고 싶은 생각이 하루하루 사라져갔다.

회사여 안녕


   일하는 직원이 우대되지 않는 현실에 많은 직원들이 실망감을 숨기지 못하고 퇴사를 했다. 회사도 직원들의 퇴사율을 보며 문제의식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회사는 항상 원인 규명에 헛다리를 짚었다. 때로는 사원들의 애사심 문제로 윽박지르기도 하고, 때로는 정을 붙이지 못하였나 싶어 가족같은 회사를 추구했다. 인맥과 연공서열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생각조차 못했나보다.

   어떤 처방에도 직원들의 퇴사는 여전했고, 직원들의 적당주의도 여전했다. 사기업이었으면 진작에 망했을,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떠난 그 일터에는 지금도 인간 관계로 가득차 있겠지. 요즘따라 옛날 회사의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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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딜가나 뿌리 깊은 불합리와 적폐. 우리 사회가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기대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군요.

그런데 사람의 본성과 관련된 부분 같아서 큰 기대가 안들기도 합니다. 시스템이 잘 발전해야 할텐데요

잘 읽고 갑니다~

팔로우하고 가요!

감사합니다!

항상 일은 30프로가 다한다는 사실..ㅎㅎ 재밌게 읽고 갑니다!

우리는 그것보다 좀 더 적었던 듯합니다ㅋㅋㅋ

저도 요즘 느끼는 바가 있어 프린스님 글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회사에 남아 있는 이들은 만족하며 다니겠죠
적당히 아부하고 적당히 일하면서요

스팀잇도 그렇게 나아가야할까요?

프린스님의 질문을 받으니 제가 스팀잇을 어떻게 하고 있나 돌아보게 됩니다..
사실 처음 시작하고는 명성도랑 스파에 압도당하고 보팅받고 싶어 관심 없는 글에 댓글 달고 그랬었는데요
지내다보니 금방 지치더라고요
재미도 1도 없고요..^-^;;;
요즘은 제가 좋아하는 분들 보고 싶고 궁금한 분들 찾아다녀요~
아..뭔가 댓글 너무 길어져서 다 지워버렸어요
아부하면서 하고 싶진 않아요
아부해서 얻는 보팅..글쎄요;;;
감사의 표시라면 좋지만...
프린스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스팀잇을 하다보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소통의 가치'라는 건데, 그때마다 조금씩 드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소통이 결코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주가 되는 느낌을 받게 되니 그렇습니다.

인맥과 명성이 주가 되었을 때 누가 제대로 된 글을 쓰려 하겠습니까. 저는 다행히 고래분들 눈에 띠어 따숩게 지내고 있습니다만, 확실한 글솜씨에도 블로그 활동을 접는 분들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또 어떤분은 진지하고 공들인 글은 본래의 블로그에, 일상글만 스팀잇에 쓴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이 과연 뉴비 지원 같은것이 없어서 그만두거나 일상글만 올리는 것일까요? 아니면 가족같은 분위기의 보팅풀이라도 만들 수 있게 도와주었어야 했을까요?회사 생활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글쓰는 이를 우대하지 않는 곳에서 떠나가는 것이죠.

물론 이 곳이 그렇게 극단적인 공간은 아닙니다. 최소한 제가 분에 넘치는 금액을 받고 있다는 점만 보더라도 컨텐츠를 만들어 보려는 사람에게 더 보팅이 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스팀잇이 침체될수록 커다란 경향에서 그 같은 현상이 보이는 듯하여 우려가 됩니다.

자꾸만 댓글을 적었다 지웠다 하게 되네요;;
하고 싶은 말은 가득인데 정리가 안 돼요ㅠ
프린스님!
소통=보팅풀일까요?
광범위한 소통이 아닌..좁은 소통

갑자기 아주 좁은 피드에서 한정된 소통을 하는 제가 스스로 만든 보팅풀을 갖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족같은 덧붙임인데요..
제 보팅풀은 양방향이 아닌 일방적인 거니까 이건 보팅풀은 아닌 건데...
으...;;;

소통=보팅풀이라뇨. 그런 말을 하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사람이 호혜적 관계 속에 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고, 청탁 같은게 아니라면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가만보니 @ddllddll님 심성이 너무 고우셔서 괜한 걱정이 되시는 것이로군요.

회사이야기로 시작했으니 회사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자면, 사실 회사도 그렇지 않습니까. 마음 맞고 건전한 사람들끼리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이상적이지요. 일의 능률도 오르고요. 단지 그것이 전부가 되어 본말이 전도되는 현상을 경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개개인은 그저 마음 가는대로, 편하게 플랫폼을 이용함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장문의 정보성 글을 좋아라하고, 누군가는 공감가는 문장을 즐기기도 하니까요. 오히려 소통을 해야한다는 압박이 잘못되었다 생각합니다.

아..이제 확실히 이해했어요^-^
소통에 대한 압박...공감해요

그저 마음 가는대로, 편하게 플랫폼을 이용함이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고 정말 편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늦은 시간에 댓글을 달아 프린스님의 밤을 방해한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어서 편히 주무세요^-^

좋은 밤 되십시오!

어딜가든 그런 것 같습니다. 특히나 위계서열이 강한 집단일수록 인맥과 학벌은 정말 치트키 같다는 느낌이....ㅎㅎ

다들 그렇게 목소리를 내지만, 정작 당사자가 되면 어떻게든 인맥과 학벌을 동원하려 한다는게 이 사회의 아이러니라 생각합니다. 참 사람의 이율배반적인 본성은 어찌하기 힘드네요.

그럼요. '부당하다'는 건 내가 혜택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볼멘소리지, 정작 혜택을 받았을 때 그건 부당한 게 아니라 너무나도 당연한 일니까요.

정확하십니다.

워낙 세금으로 돌아가는 회사가 많죠. 사기업들조차도 그런걸요...

이 곳을 보아도 그렇고 사람의 본질은 어디나 비슷한 듯합니다.

제가 평가를 받던 시절에도 그랬었죠. 하지만 끝까지 내 자존심과 신념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20여년 흘러 이제는 제가 평가를 해야하는 입장입니다. 기준을 세우고 모두에게 오픈하며 고과를 진행하는데 무척이나 힘들고 외롭습니다. 알게 모르게 눈총도 받는것 같구요. 적어도 제가 퇴사하는 그날까지는 입장을 고수해 보려합니다. 내 세대에는 글렀어도 다음 세대나 그다음 세대에는 변화될 수 있는 아주 작은 시도였기를 바라면서요.

이전에도 @rideteam 님과 비슷한 대화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말 존경합니다!

적당한 타협이 필요하겠죠..
중이 싫음 절이 떠나야죠 ㅋ 이런 날이 와야 될터인데...

중이 싫음 절이ㅋㅋㅋㅋ

그럼에도 돌아간다는게 신기할 따름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일 없이 소통만으로 돌아갈 수 있는 데가 있을까요?

이미 수익구조가 누군가에 의해 구축되었고 그 이하는 모두 간단한 노동을 하는 부품이라면 가능하긴 하겠네요

본문의 회사는 그 수익구조가 세금이었으니 가능했습니다ㅎㅎㅎ

공기업이었나보네요..

세금 도둑이었습니다ㅎㅎㅎ

일 잘하는거랑 잘해보이는거랑 엄청 다르더라구요...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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