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주의(相對主義)의 지록위마(指鹿爲馬)

in #kr5 years ago (edited)

   진시황 사후 환관 조고는 제멋대로 호해를 황제로 옹립하고 권세를 잡았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기 위해 호해에게 사슴을 가져와 바치면서 말을 바친다고 고했다. 둔한 호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치채지 못하고 “승상, 어찌 사슴을 말이라 하는 것이오?” 물었으나, 영민한 신하들은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선택을 해야만 했다. 황실에 충성하고 바른 말을 할 것인가, 목숨이라도 부지하고자 침묵할 것인가, 조고에게 아첨하여 작은 권력이나마 얻어낼 것인가였다. 조고는 말을 말이라 한 자를 모조리 처형하였고, 궁 안에는 언제나 조고의 말을 맞다고 하는 자만이 남았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이르다’, 지록위마(指鹿爲馬)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만드는 일을 일컫는 사자성어가 되었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오늘날, 더이상 조고와 같은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는 등장할 수 없다. 그러나 현대의 권력은 한 사람이 아닌 사상에 깃들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고 사람들의 입을 막아 버린다. 허울 좋은 상대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상대주의는 진리와 가치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존재한다고 역설하는데, 언뜻보아 나도 옳고 너도 옳다는 관용의 마음가짐은 도덕적 우월성을 획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같은 도덕적 우월성은 일종의 권력이자 권위가 되어 진정한 진리를 찾는 사람들의 입을 닫게 만든다. 사슴을 사슴이라 주장하는 자는 사슴을 말로 보는 자들에 의해 도덕적 처형을 당한다.

   우쭐한 상대주의자들은 말한다. “과거에 진리로 받아들여졌던 것도 현재는 틀린 것으로 판명나지 않았냐.” 그렇다. 과거에 수많은 과학 이론들이 현재에 이르러서는 전부 틀린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이 앞으로 현재의 과학 이론 또한 틀린 것으로 밝혀질 것이라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과 그렇다는 사실 사이에는 꽤나 큰 간격이 있다. 더욱이 그러한 추측이 합당하다 손쳐도, 우리는 이론이 반증되어 가는 과정을 진리에 한 발 더 다가갔다고 하지, 진리가 상대적이라고 하지 않는다. 진리가 없다면 인간이 현재까지 이룩한 지적 진보란 무엇인가? 지금의 연구는 결국엔 틀릴 것이니 무의미하다는 식의 상대주의는 그저 지적 패배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달콤한 포도를 앞에 두고 신포도라 간주하는 패배주의자일 뿐이다. 우리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 준 것은 상대주의가 아니라, 지적 탐구를 멈추지 않는 이성과 호기심이었다.

   그러나 상대주의가 이끄는 지적 패배주의는 아주 사소한 부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주의는 끝내 매우 폭력적인 논리로 귀결됨이 가장 큰 문제이다. 자, 우리 모두가 옳다면 누구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것이며, 사회의 근간이 될 것인가? 필연적으로 힘 있는 자의 주장을 따를 수밖에 없다. 상대주의적 사회는 결국 진실을 탐구할 생각보다 권력과 폭력으로 진실을 만들어 낼 궁리를 할 뿐다. 눈 앞에 있는 대상이 말인지 사슴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병리적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소위 ~ism을 내세우는 자들을 보라. 자신들에게 날아오는 화살에는 상대주의라는 방패 뒤로 숨으면서 자신은 정의의 이름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만약 정의라는 이름을 사용할 것이라면, 그들도 응당 상대주의의 그늘을 벗어나 맞서야 하지만 그럴 용기까지는 없다. 상대주의라는 그럴듯한 도덕적 우월성은 사실을 왜곡하고 폭력을 정당화할 뿐이다.

   18세기의 임마누엘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세 권의 책을 통해 ‘사실의 탐구’와 ‘도덕적 가치의 추구’, ‘미적 가치의 추구’가 다른 영역임을 밝혔다. 그럼에도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옳다’라는 애매한 용어는 세 영역을 아우르며 진리에 대한 논의을 혼탁하게 만든다. 특히 상대주의는 흙탕물을 일으켜 진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우리의 눈을 가려 버린다. 차이가 곧 차별은 아님에도 차이에서 차별을 들먹여 상대를 위협하고 자신의 권력에 의지한 사실을 관철시킨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고백하는 바는, 그들에 전달되는 폭력적인 상대주의자들의 협박편지였다. 지구가 공전하는지 태양이 공전하는지는 상대주의에 따라 투표로 결정해야 될 대상이 아니다. 상대주의란 기껏해야 소고기를 먹을지 돼지고기를 먹을지 결정할 때, 액션영화를 볼지 멜로영화를 볼지를 결정할 때 등장할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상대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조고를 제거하고 사슴을 사슴이라 말할 수 있는 사회에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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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주의에 대한 오용이겠지요. 상대주의가 바람직해지려면 상호존중이라는 전제가 있어야하는데,

진리가 상대적이다

여기에는 언어논리의 한계가 있지요. 진리가 상대적이다는 그 진리는 절대적이다고 말한다면 스스로 진리가 상대적이다는 사실을 위배해버리는 자가당착이지요.

바람직한 상대주의란 당신도 옳고 나도 옳을수 있지만 당신도 틀릴수도 있고 나도 틀릴수도 있으니 서로 존중하여 모두에게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보자는 상호존중이라는 당위성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상대주의를 모토로 개무시하는 사람들은 상대주의자가 아닌 짝퉁이라고 볼수밖에요.

그렇습니다. 말씀처럼 상대주의는 기본적으로 논리적 모순을 안고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류가능성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상호존중과 사상적 자유의 보장이지, 결코 상대주의는 아니어 보입니다.

어쩔 때는 인터넷에서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거 같아요. 굳이 위세를 떨치는 조고와 같은 자가 아니어도,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는 자의 말이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묘한 공감을 얻으면 순식간에 모두들 그걸 옹호하고 그걸 믿게 되지요. 사슴이라는 뻔한 증거를 외면하고, 그게 말이라는 증거를 찾아나서기도 하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요즘에도 정말 많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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