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들. 8월 14일 세계 위안부의 날

in #kr5 years ago

[8월 14일은 세계 위안부의 날 입니다. 절때 잊지말고 기억해야할 우리의 가슴아픈 역사입니다.]

정의

일본이 만주사변(1931.9.18)을 일으킨 이후부터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1945년까지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설치한 ‘위안소’에 강제동원되어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한 여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문헌과 증언 속에서는 작부, 특수부녀, 추업부(醜業婦), 예기, 창기, 여급 등의 호칭으로 나타나고, 위안소도 육군오락소, 구락부, 군인회관, 조선요리옥 등의 호칭으로 불렸다.

명칭 및 성격규정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에 동원되어 일본군의 성노예로 이용된 피해자들을 지칭하는 용어에는 일정한 가치판단이 내포되므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논의함에 있어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 가는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90년대초반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본격적으로 떠올랐을 때는 ‘정신대(挺身隊)’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다. 정신대는 ‘일본 국가(천황)’를 위해 솔선해서 몸을 바치는 부대라는 뜻으로 일제가 노동력 동원을 위해 만든 것이었다. 정신대(노무동원)와 ‘위안부’(성동원)는 본질적으로 성격이 달랐으나, 여자근로정신대 동원 여성이 ‘위안부’로 끌려간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의미가 호도되어 잘못 사용된 것이었다. 이후 연구를 통하여 당시 사용되었던 용어와 가까운 “ 일본군‘위안부’ ”라는 용어가 정착되었다.
1990년대 일본에서는 ‘종군‘위안부’’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종군’이라는 말에는 ‘종군기자’,‘종군간호사’처럼 자발적으로 군을 따랐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강제로 일본군‘위안부’를 동원했던 일본의 역사적 책임을 은폐시킨다는 점에서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용어이다.

국제사회에서 일본군‘위안부’에 관한 문제를 처음 제기했을 때는 ‘위안부’라는 단어를 직역하여 comfort wome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는 UN 등 국제사회에서 성노예(military sex slavery)와 군대성노예제도(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1996년 UN인권위원회에 제출된 라디카 쿠마라스와미(Radhika Coomaraswamy)보고서는 이 문제를 명확하게 전시하 군대성노예제 (military sexual slavery in wartime)로 규정했다.

국제사회에서 ‘군대성노예제’라는 용어를 채택한 것은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사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는 계약에 의해 이루어진 매춘의 성격이나, 국가를 위한 국민의 자발적인 희생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널리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즉, 일본군‘위안부’는 국가가 여성을 강 압적으로 동원하여 집단적인 성폭력을 가한 것이고 피해 여성들의 삶의 조건은 ‘노예’와 같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위안부’라는 단어는 지극히 가해자 중심의 용어이며 폭력성과 강제성을 감추는 부정적인 효과를 지니고 있다. 일본군‘위안부’의 모집동기, 모집과정, 폭력성을 고려한다면 일본군‘성노예’라는 명칭이 적합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일본군‘성노예’라는 용어보다 일본군‘위안부’라는 용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다. ‘‘위안부’’라는 용어가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기에 적합 하지 않지만 동시에 일제가 ‘위안부’라는 용어를 만들어가며 제도화했던 당대의 특수한 분위기를 전달해 준다는 점과, 생존자들이 자신을 ‘성노예’로 부르는 데에 정신적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의 지원을 위해 한국 정부가 제정한 법에서도 ‘일본군‘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연구자 중에는 일본군이 사용했던 ‘‘위안부’’라는 단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작은따옴표를 붙여 “ 일본군‘위안부’ ”라고 쓰기도 한다.

동원형태 및 수송

조선인 여성이 일본군‘위안부’로 동원된 방식은 취업사기, 협박 및 폭력에 의한 동원, 인신매매 및 유괴 등이다. ‘공장에 취직시켜 주겠다.’,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속여 여성들을 일본군‘위안부’로 동원하였다. ‘위안부’를 모집한다는 신문광고가 나가기도 하였으나 근무 내용을 분명히 고지하지 않았다. 또한, 당시 신문 구독 상태나 여성의 문자해독율 등을 고려할 때 여성에게 직접 모집 광고가 전달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보인다. 일본군 당국이 위안소를 경영할 업자를 선정하였고, 일본군과 경찰 역시 동원 과정에 협조했다. 업자들은 모집인을 이용하거나 자신들이 직접 나서서 여성들에게 접근하였다. 취직이나 돈벌이를 미끼로 여성들을 끌어 모으거나 협력과 폭력을 이용하여 동원하기도 하고, 심지어 납치하기도 했다. 총동원체제와 전쟁을 수행하는 데 ‘‘위안부’’가 필요하다는 일본군의 요구가 이러한 물리적 폭력을 허용했다. 태평양전쟁 발발(1941년) 이전에는 ‘도항증명서’를 받아 국외의 위안소로 이동하였다. 수속에 필요한 절차는 모집인이 공권력의 협조를 받아 도맡아하였다. 이 과정에서 호적이 위조되는 일도 있었다.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는 ‘군증명서’를 통해 국외의 위안소로 이동하였다.
‘군증명서’는 모집인이나 인솔자가 소지했으며 일본군은 이동에 필요한 각종 편리를 제공하였다.

[출처 :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일본군‘위안부’ 구술기록집 『들리나요? 열두소녀의 이야기』중 발췌]

저희가 꼭 기억하고 잊지말아야 할 중요한 역사 중 하나입니다.

4월 13일 강원도 강릉에서 일본군성노예피해 할마니들을 위한 기부마라톤이 열린다고 합니다.

기부마라톤은 참가하는데 일정 금액이 필요하며, 참가하여 달리는 만큼 위안부 할머님들께 기부가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참여 하시는 분들께 맨투맨 티셔츠와 함께 나비 팔찌를 증정해 드린다고 합니다. 자세한 상황은 사진 참고 부탁드립니다.

제가 주관 하는 행사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참여하면 좋을것 같아서 이렇게 포스팅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8월 14일은 세계 위안부의 날 입니다. 절때 잊지말고 기억해야할 우리의 가슴아픈 역사입니다.]

이 팔찌의 금액은 개당 3,000원이고, 위안부 할머니에게 일정 금액 기부된다고 하여 점심시간에 2개 구매하였습니다. 조금이나마 할머님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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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아리가 같이 달리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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