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리뷰

in #kr5 years ago

누군가 그런말을 했다.
철학이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철학을 지키는 것이라고.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던
이 말을 곱씹을수록
무게가 있는 문장이라는 것을 알게됐다.

철학은 나의 삶의 많은 부분을
결정하는 지표다.
어떤 철학을 가지느냐에 따라
세상을 어떻게보는지가 달라진다.

그런데 삶을 살아가다보면
나의 철학과 현실의 괴리가 발생하는 상황이 많다.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측면이 다름은 물론이고
직업 선택이나, 일상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럴 때마다 '나의 철학을 지키기 위한'
내적 갈등이 자주 발생한다.


그러나 야마구치 슈의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이런 '철학'마저도 실용화한 서적이다.

50여가지의 철학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등장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철학을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법을 알려준다.

한마디로, '철학으로 나를 지키기'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다.

첫 번째로 장점이다.
이 책은 철학을 쉽게 가르쳐주는데 핵심이 있다.

어떤 무술을 실전에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무술이 몸에 익어야 한다.
숨쉬는 방법이나, 스텝과 같이 초보적인 기술만으로는
실전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없다.

학창시절, 또는 대학교 교양수업에서의 철학이
지루했던 이유는 '숨쉬는 방법'을
너무 오래 가르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한 단락이 짧다.
길지 않은 내용으로 독자들이 실전 철학을
배우면서 지치지 않도록 도와준다.

또 실전 기술을 연습해볼 수 있는
스파링(현실에서 적용할만한 사례) 상대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로써 독자들은 철학이 지겹지 않고,
충분히 적용가능한 학문이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말하자면 유튜브에 "10분 만에 ㅇㅇ 배우기"
영상 수준의 실용성을 가졌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로 단점이다.

앞서 나는 철학이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철학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근원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만물의 실용화에 대한
우려감이 들었다.

기존에 우리는 많은 실용서적들을 접해왔다.
비즈니스 기술, 대화 기술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마음에 관한 실용서적도 많이 보인다.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
'어떻게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는지' 와 같은
물음을 다룬 책 말이다.

이렇듯 실용서가 만연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빠르고 각박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거대하고 원론적인 것은 읽을 시간도,
읽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실용서적 확산 양상은 어느샌가 철학에까지
스며들었다. 인문학적 소양의 '끝판왕'이자
거대 담론의 종착지인 철학마저,
실용화가 필요하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철학이 딱딱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껏 내가 학교에서 들은 철학수업은
너무 딱딱해서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기도 전에
꿈속을 체험했던 경험이 더 많았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적 사유와
고찰이라는 시간을 주는 철학의 근원성은
앞으로도 어느 정도는
보장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지적 성찰을 위해
도움받은 부분이 몇 군데 있다.

판단 중지를 의미하는 에드문트 후설의
'에포케'와 소쉬르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다.

에포케라 함은 판단 중지를 의미하는데
내가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실제로는 객관적 사실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야마구치 슈는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태도가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대 사회는 자신의 세계관에 강한 확신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세계관을 지닌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하고 대립각을 세우기도 한다.

우리는 이때 자신의 세계관에 대한
강한 확신을 잠시 보류하고, 판단 중지를
시행함으로써 서로 간의 이해를 끌어낼 수 있다.

타협까지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극단적인 소모전으로 향하지 않게 유도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소쉬르의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는
언어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내용이다.
사람들은 개념이라는 언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일본에서는 나방과 나비가 다른 종류이지만,
프랑스에서는 하나의 개체로 여겨지는 것처럼
세상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다.

야마구치 슈는 세상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개념을 익힐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많은 개념을 알면 세상을 조금 더 정교하게 볼 수 있고,
하나의 개념밖에 모르는 사람들과는 달리
'차이'를 설명할 수 있게 해준다.

뉴스를 통해 세상을 드러내는 직업인
기자를 꿈꾸는 나에게 의미있는 부분이다.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는
최근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실용화된 철학'에
관심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책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철학을 제공한다.

철학이 가지는 인문학적 '근원성'에 대한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철학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반갑다.

그만큼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야하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교양이 없는 전문가보다 위험한 존재는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철학이 '무기'로서의 역할에
머물지 않고, 조금 더 나은 사회로 우리는 이끄는
길잡이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수행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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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잘보았습니다~~저도 조만간 읽어보아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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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ㅎㅎㅎ 한 번쯤 꼭 읽어볼만한 책인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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