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를 읽고 // Feat 유시민, 그리고 그의 최근 모습

in #kr-book4 hours ago

나는 유시민 작가의 책을 어릴 때부터 꽤 많이 읽었다.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 『유시민의 논술 특강』, 『국가란 무엇인가』, 『거꾸로 읽는 세계사』, 『나의 한국 현대사』, 『후불제 민주주의』, 『역사의 역사』 등 그의 책은 한동안 내가 가장 즐겨 읽던 교양서였다.

몇 년 전 아버지가 어느 방송을 보시고 "유시민이 과학 공부를 해서 책을 냈다더라. 한번 읽어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를 사드렸지만, 정작 나는 그때 이 책을 읽지 않았다.

최근 들어 유시민이 다시 작가보다는 정치평론가의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서는 모습을 보며 적지 않은 실망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사두었던 이 책이 떠올랐고, 이제야 천천히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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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 그대로 '문과 출신인 유시민이 과학을 공부하며 느낀 생각'을 담은 책이다.

경제학을 공부한 저자가 여러 과학 커뮤니케이터들과 대화를 나누고, 다양한 과학 서적을 읽으며 얻은 통찰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낸다. 책을 읽으며, 역시 유시민은 글을 참 잘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을 적절히 인용하고, 그 인용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여기에 자신의 경험과 삶의 이야기를 녹여내면서 독자가 어렵지 않게 따라올 수 있도록 이끈다. 이런 점은 그의 이전 책들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났던 특징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의 책을 읽어온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생각해 보면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도 비슷한 책이었다. 방대한 독서와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어려운 내용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내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 모두 이후 정치평론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저술가로서 받았던 호평만큼이나 정치적 입장에 대한 비판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들의 정치적 발언과는 별개로, 책을 통해 보여준 지적 탐구와 글쓰기 자체는 따로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책이 전달하는 핵심 메시지는 제목만 봐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진정한 교양인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학뿐 아니라 과학적 소양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왜 존재하는가'와 같은 인문학의 오래된 질문들은 인간과 우주에 대한 과학적 이해 없이 충분히 탐구하기 어렵다. 반대로 과학 역시 인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없이 완전해질 수 없다.

결국 과학과 인문학은 서로를 대체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관계라는 것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책은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수학 등 여러 분야를 차례로 다룬다. 전문적인 내용을 깊게 설명하기보다는, 각 분야에서 자신이 읽은 책들과 거기서 얻은 통찰을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이야기한다. 과학을 잘 모르는 독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은 부분은 의외로 뇌과학 장이었다.

유시민은 다음과 같이 적는다.

나는 내 자신을 무한정 믿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대뇌피질의 신경세포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드는 때가 올 것이다. 이미 그런 상황인데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일 아침 갑자기 어떤 신경전달물질이 과도하게 나오거나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내 뇌가 자신을 이해하는 일에 관심을 접고 오로지 생존에만 집착하는 날이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전에 세상을 떠나면 좋겠지만 그것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욕심 많고 인색하고 어리석고 보수적인 노인이 될 수도 있다. 지금의 내가 하는, 더 젊은 내가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을 부정하는 언행을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뇌의 하드웨어 퇴화로 인해 벌어진 신경생리학적 사건으로 여겨 주기를, 나쁜 놈이라고 욕하지 말고 불쌍한 사람이라고 동정해 주기를 바란다. 내 자아가 오늘의 상태를 유지하는 한, 어떤 경우에도 자유의지로 그런 변화를 선택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 문장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최근 정치평론가로 활동하는 유시민의 모습에 실망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예전의 글에서 보여주던 차분한 성찰보다는 정치적 언어가 앞서는 모습이 아쉽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그의 방송을 보다 보면 예전과는 다른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한때는 정치권의 진영 논리와 혐오의 언어를 비판하던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 역시 그 언어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나의 인상일 뿐이지만, 표정과 말투에서는 예전의 여유보다는 상대를 향한 날카로움과 확신이 먼저 읽혔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정치인 유시민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하던 저술가 유시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 속의 그는 이미 자신의 미래를 이렇게 걱정하고 있었다. 인간은 자신의 뇌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으며, 나이가 들면서 지금의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담담하게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현재의 그 모습을 단순히 노화나 뇌의 변화로 설명할 수는 없다. 사람의 생각은 경험과 환경, 가치관의 변화 속에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목은, 지금의 유시민을 바라보는 나에게 묘한 여운을 남겼다.

어쩌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과거에 했던 말을 끝까지 지켜낼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사람을 평가할 때도 그의 어느 한 시점만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변화하는 인간 전체를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치적 입장과는 별개로, 적어도 이 책만큼은 과학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는 진지한 시도가 담긴 좋은 교양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과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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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언론에 자주 등장해서 실망한 사람들이 많을 것 같네요.
말씀하신대로 그 사람은 지금 자신의 시간을 가고 있다고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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