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에 산다는 것steemCreated with Sketch.

in #scotland6 years ago (edited)

현재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머무르고 있으며,
서울에서 이 곳으로 이사온지 6개월 정도 되어간다.

스코틀랜드에 살면서 느낀 점 몇 가지.

1 날씨... 하 날씨...

평생 스코틀랜드에 산 사람도 여기 날씨가 적응이 안 된다고 하는데
겨우 5개월 차인 내가 날씨를 논할 수 있겠냐마는.

20180127_125423.jpg

놀랍게도 이것은 아침 10시이다.

생각 이상으로 해를 못 보는 것이 정신 육체 건강 모두에 영향을 많이 끼친다.
내내 어둡고 흐린 날씨 탓인지 평생 살면서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요상한 생각들을 하는 스스로가 가끔 무서울 때도 있다.
비타민 D 태블릿을 먹는 것은 플라시보효과조차 1도 주지 않을 만큼 내내 흐린 날씨의 힘이 강력함.

20180127_125450.jpg

가끔씩 하늘이 이러면 더 불안하다.
갑자기 어떻게 역변하려고 이렇게 밀당을 하는 거지...

KakaoTalk_20180127_132711694.png

그래도 한국 미세먼지 + 영하 18도 콤보를 보면서 위로가 될 때도 있다.
아무리 바람 때문에 체감온도가 낮아도 영하 18도보다는 낫겠지.

2 놀게 없다.

프린지 페스티벌로 대표되는 도시고 한 해에 열리는 자잘한 페스티벌의 개수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image_6515833751517060124512.png

심지어 치즈로도 페스티벌을 만든다...
술 종류별로 페스티벌이 다 있고 음식마다 별 희한한 페스티벌이 다 있다.

사실 가 보면 티켓 가격에 비해서 운영이나 퀄리티가 그리 좋지는 않다.
물론 좋지 않은 날씨의 영향도 있을 테고..

20180127_125523.jpg

워낙 놀 수 있는 공간이 한정적이라서 그런지 클럽에 조금이라도 유명한 디제이가 오면 클럽이 이 모양이다.

한국이면 아무리 길어도 30분 안에 다 정리될 줄인데 2시간씩 밖에서 떠는 것은 기본에
이제까지 가 본 여러 나라 클럽 중에서 관객 매너나 질서가 가장 안 좋은 곳이 바로 에든버러.

얼마 전에는 글래스고에 Jackmaster 보려고 2시간 갔다가 줄이 잘려서 다시 돌아온 경험까지 있었다.
오후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시간이 슝 가버린 기이한 경험.

3 좋아하는 것들이 단순화된다.

안 좋은 날씨에 놀 게 없다 보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 중에 좋아할 만한 것들이 한정된다.

20180127_130314.jpg

집착적으로 짐과 GX를 가게 된다.
스쿼트하고 오늘 궁딩이가 얼마나 올라갔나 확인하는 것이 하루 중 가장 기쁜 일.

20180127_131017.jpg

예매해놓은 공연의 DJ 보일러룸 돌려 듣기.
음악 취향이라도 유럽이랑 잘 맞아서 다행이라며...

20180127_131847-01.jpeg

진토닉 마실 준비하면서 얼마나 청량하고 맛있을지 기대감 폭발하는 것이라든지.

20180127_132403.jpg

집착적으로 컵을 사 모은다든가-
주둥이는 하난데 컵이 왜 20개나 필요한가...

20180127_125622.jpg

하지만 이렇게 깔 맞춤으로 술 마시면 기분이 너무 좋은 것을 어찌함... ㅠ_ㅠ

Untitled.png

한국에서는 잘 먹지도 않던 손 많이 가는 음식들을 굳이 만들어 먹으며 뿌듯해 한다든가... 뭐 이런 것들.
심지어 동그랑땡도 빚어먹는 열정.

4 스코틀랜드에서 온전히 신뢰하는 것은 딱 3가지.

서비스 수준이나 공공기관의 인프라가 잘 갖춰져있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 업무에 있어서 책임 의식이 상식 이상으로 없는 편이다.
빨리빨리에 익숙해진 한국 사람들에게는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거나 서비스가 답답할 때
너 왜 아직 이걸 처리 안 해줬어?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네가 잘못한 게 이거였는데부터 매번 다시 설명하는 것 자체가 정말 큰 고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 믿을 수 있는 것 3가지는.

20180127_125710.jpg

술도 배송이 되는 아마존. 토요일에도 배송 오고 당일 배송이 될 때도 있다.
칼같이 배송 오는, 혹시 타이밍 안 맞아서 못 받으면 담당자한테 칼 메일 오는 아마존 프라임 사랑해요.

1517058443958.jpg

날씨에 상관없이 지정된 약속은 꼭 지키는 테스코 홈 딜리버리 사랑해요. 22

KakaoTalk_20180127_134532094.jpg

아묻따 브루독 사랑해요. 333

이 셋은 나를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고 한다.

5 영어가 늘지 않지만 영어를 잘 못해도 석사를 할 수가 있다.

캐나다에서 7년 차로 거주 중인 호적 메이트가 석사는 영어 못해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게 뭔 소리야 하고 잔뜩 쫄아있었는데 진짜 할 수가 있네...

KakaoTalk_20180127_140632123.jpg

한 학기가 지났지만 놀랍게도 아직까지 수업에서 많이 알아들어봤자 5-10% 정도 알아듣는다.
심지어 이번 학기에는 케미컬 엔지니어링이 포함되어있어서 대환장 파티임...

그런데 또 과제는 어떻게 다 해내고 성적이 개떡같지만 시험도 친다.
닥쳐서 해 내는 게 아니라 진짜 영어를 잘 못해도 언어 자체가 문제가 크게 되지는 않는 것 같다.
다만 불편함과 시간 들임이 엄청나긴 하다만.

어학연수로 온 것이 아니라서 영어 공부에만 따로 집중을 해서 그런지 영어공부를 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서울에서 외국계 회사 다닐 때 보다 더 영어 적게 쓰고 그 때 보다 더 영어 못함. 하도 말을 안 해서 발음이나 억양 더 구려짐.

6 화재경보기가 평균 1주일에 두 번 이상은 울린다.

화재경보기가 정말 민감한지 거의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울린다.
10초 정도 윙윙하다가 멈추는 경우도 잦기 때문에 2-30초 정도 기다려보고 안 멈추면 침착하게 모이는 장소로 이동한다.

20180127_125650.jpg

이 날도 눈이 이렇게 억세게 오는 추운 날 밤이었다.
화재경보기가 꽤 오랜 시간 울렸고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 모두 계단을 이용해서 내려가 뒷언덕에 있는 주차장으로 모였다.

기숙사 warden들은 바삐 뛰어다니며 상황을 파악했고, 모두 모임 장소에서 별다른 지시가 있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렸다.

20180127_125544.jpg

민소매 운동복을 입고 운동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짐에서 또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운동하던 사람들은 스태프들의 지시에 따라서 이동했고 떨고 있으니 스태프가 이불이라며 걸치라고 건네줬다.
(놀랍게도 저 은박이 이불임...)
이렇게 바로 이불부터 챙겨 나온 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매뉴얼 대로 교육 잘 받고 똑바로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스태프들이 무전기를 들고 바삐 움직이고 상황이 정리되는 동안 다들 이탈 않고 기다렸다.
신기한 이불을 덮고 있으며 추운데 성가시지만 재미있는 해프닝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그러고 나서 몇 시간 뒤 밀양 병원 참사 기사를 보았다.

나는 한국을 정말 정말 좋아한다. 어딜가도 한국 보다 살기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대 주의 같은 것도 없고, 아마 보통 한국 사람들 보다 국뽕 치사량이 몇 배나 크고 찐할지도.
그래서 외국에 여행을 가거나 살아도 항상 한국이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저런 가슴 아픈 뉴스를 타지에서 보면 더 속상하다.

스코틀랜드 와서 단 한 번도 이곳이 한국보다 선진국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안전 의식은 스코틀랜드 완승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KakaoTalk_20180127_141939451.jpg

방에도 부엌에도 계단에도 엘리베이터 근처에도 이런 안내문이 꼭 있다.
기숙사 입주 처음에 오리엔테이션 할 때도 가장 강조되었던 내용은 화재에 관한 것 이었다.

이런건 진짜 배웠으면 좋겠고 더 이상 가슴 아픈 안전사고 소식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다. ㅠ_ㅠ

마무리를 어떻게 하지.

음. 두유노.... ?

baseball_new6-20180124-151342-000.jpg

Sort:  
Loading...

해외에서 적응하는것도 힘든데 날씨도 별로면 확실히 더 우울해지는 면이 있는거 같아요.
특히 근처에 한인분들도 별로 없고 재미있는일도 없으면 취미가 자동으로 요리/운동으로 옮겨지는거 같기도 하구요 (제 친구들만 그런가요;;).
저도 미국에서 살면서 공감되는것이 여러개 있네요.
좋은글 감사해요. 보팅&팔로우 하고 갈게요.

미국에서 거주하시는 군요! 반갑습니다 :) 다들 비슷한가보네요 한국이 놀 게 참 다양하고 많긴 하죠! 한국에 있을 때도 알았지만 와보니까 더 잘알겠어요 ㅠ_ㅠ 그래서인지 소소한데 즐거움을 느끼는 건 좋은 것 같아요. 보팅 & 팔로우 감사합니다!

거리는 한산하고, 특유의 높낮이 없고 고풍스런 억양이 좋더라구요. 또 가고 싶은 에든버러인데, 소식 감사합니다.

에든버러 여행 오셨었나보네요. 다들 여행오시거나 살던 분들이 지나고 나서 오래 생각나는 도시라고 하더라구요 ! 억양은 아직까지도 신기해요 가끔씩 좀 가원도 사투리 같이 들릴 때도 있구요 ㅎㅎ 블로그 통해서 에든버러 소식 자주 전할게요 :)

에딘버러에 계시는 군요 ㅎ 저는 리버풀 근처 사우스포트란 곳에 있었는데 친구들과 렌트한 차에 텐트와 코펠싣고 스코틀랜드 여행을 다녔습니다. 호수옆에 텐트치고 자기도 햇엇죠. 팔로 합니다~

반가워요! 사우스포트는 처음 들어보네요 아직 영국을 많이 안다녀봤어요 ㅠ_ㅠ 코펠 들고 다니며 렌트카 여행에 텐트 숙박이라니 낭만 넘치네요 ㅎㅎ 맞팔했어요: )

Coin Marketplace

STEEM 0.28
TRX 0.13
JST 0.033
BTC 62772.18
ETH 3032.07
USDT 1.00
SBD 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