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임재와 내주와 거듭남에 대하여

in #steemchurch5 years ago

엊그제 필자에게 성령의 임재와 내주에 대한 깨달음을 문자로 보낸 자매님이 계셨다. 그래서 읽고 나서 참 좋은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이 주제를 명확하게 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은 이 주제로 칼럼의 제목으로 삼았다.

우리네 교회에서는 수많은 예배 때마다 설교를 하고 있다. 설교자는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목회자들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성경에 대해서는 전문가인 셈이다. 그래서 설교 때마다 성경지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십 수년 아니 수 십년간 교회를 다녔어도 제대로 된 성경지식이 없는 크리스천이 우리 주변에 허다한 게, 우리가 마주한 암울한 현실이다. 진리에 굳게 서지 않으면 성령의 능력이 일어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정확한 성경지식을 바탕으로 믿음의 집을 지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투의 말이야, 교회에서 수도 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배우는 성경지식은 성부하나님이 일하신 구약성경의 기록과, 예수님의 사역을 기록한 신양성경의 내용만을 반복하기 일쑤이다. 물론 그러한 내용도 알아두어야 하겠지만 지금은 성령시대이다. 하나님의 영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자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에 초점을 맞춘 성경의 가르침이 되어야 하겠지만, 어찌된 일인지 성령에 대해서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넘어가기 일쑤이다. 왜 그런지 아는가? 왜냐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지식으로 충분하였지만, 성령 하나님을 가르치려면 성령이 주시는 깨달음과 영적 능력을 솔선수범해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영적 능력이 없는 목회자들은 지식으로 가르치기만 할 뿐, 성령의 능력을 보여줄 수 없으므로 수박 겉핥기식이 되고 만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보혜사 성령이 다시 오실 것을 예언하셨고, 그 약속을 따라 성령이 오셔서 작금의 시대는 성령이 다스리시는 성령의 시대이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 하나님을 가르치는 데는 성경지식만 있어도 가능했지만, 성령 하나님을 가르치려면 스스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령과 동행하지 못하는 교회지도자들이 허다하기에, 많은 교인들은 제대로 된 가르침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여기저기에서 귀신의 조종을 받는 거짓교사와 사이비 교사들이 일어나서, 양떼들을 유혹하고 어지럽혀서 생명과 영혼을 사냥하고 있다. 이들은 죄다 이구동성으로 성령이 자신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증거는 비성경적이고 신비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경적인 지식에서 우러나오는 깨달음과 성령이 주시는 지혜인 분별력이 없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이들에게 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성령의 임재에 대해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겠다. 임재라는 말은 신학적인 표현이다. 임재의 사전적이 의미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나타나는 일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전심으로 기도하던 사도들과 120여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 외적 증거는 방언을 비롯한 성령의 은사의 표징이었고 내적 증거는 마음에 기쁨이 넘쳤다고 한다. 우리네 교회에서는 기도할 때 방언이 터지고, 하염없이 눈물이 나며, 마음이 기쁘면 성령이 임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감정의 격앙이나 방언만 가지고 성령이 임재 하였는지 알 수 없다. 왜냐면 감정이란 외부 요인에 따라 자신의 생각이 섞일 수도 있고 귀신들도 얼마든지 감정을 격앙시킬 능력이 있다. 또한 방언은 귀신들도 속여서 넣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재가 성경적인 은사로 이어지거나, 성령의 거룩한 성품으로 삶과 사역을 인도하거나,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는 지를 날카롭게 분별하여야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간 후에, 그 때 받은 방언이 기도를 편하게 하는 방법이나 남에게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면, 이는 처음부터 성령이 주시지 않았거나 후에 변질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성령이 주시는 방언은 성령에 깊이 몰입된 상태에서 불가항력으로 나오며 자주 바뀌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방언이 아니라 열광적인 집회에서의 기도 중에 나오는 방언이라면, 감정이 격앙된 틈을 타서 귀신이 속이는 방언인지 날카롭게 분별하여야 한다. 실제로 필자는 방언을 오래동안 해 왔던 코칭 훈련생에게 방언기도를 하지 말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부르는 기도를 하라고 했을 때, 구토와 헛구역질, 트림, 하품 등이 나오면서 귀신들이 빠져나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했던 방언은 성령이 주신 게 아니라 귀신이 속여 넣어 주었다는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

성령이 임재 하였더라도 쉬지 않는 습관을 들이지 않았다면 떠나가시는 분이다. 그래서 성령이 항상 내주하시는 상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내주라는 말 역시 신학적인 표현인데, 성령의 임재현상이 매일 일어나는 상태라고 보면 된다. 이를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다, 혹은 동행하신다는 표현으로 기록하고 있다. 성령의 임재는 일회적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성령의 내주는 오랫동안 증거가 지속되어야 한다. 필자가 경험한 성령의 내주는 내적 증거와 외적 증거가 있는데, 내적 증거는 기도할 때 뿐 아니라 기도가 끝나서 일상의 삶에서도 기쁨과 평안, 자유함을 누리고, 기도할 때마다 깊이 빨려 들어가서 몰입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외적증거는 내적 증거가 오래 지속되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이 되고 삶의 지난한 문제가 해결되며 성경에서 약속한 각종 은사들이 쏟아진다. 즉 성령의 능력이 내려오는 현상이다. 성령의 내적 증거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외적증거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기도가 응답이 되고 문제가 해결되는 기도의 능력은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그들에게 주어지는 은사는 조금씩 다르다. 또한 성령이 내주하는 기도의 강을 얼마나 깊이, 그리고 오래 건너갔느냐에 따라 탁월한 성령의 능력도 다르다. 그러므로 성령이 내주를 지속하려면 깊고 친밀한 기도를 쉬지 않고 하는 영적 습관을 들여야 한다.

성령의 내주가 지속되면 드디어 성령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듭남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표현은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인데,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그전에는 육체로 태어나서 살아왔지만,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변화된 삶을 살게 된다. 그 변화의 초점은 부족한 성품에서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는 것이며, 돈과 쾌락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좇아 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추구하며,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사는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삶으로 인생관이 바뀌게 된다. 그래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모습으로 보여주어야 열매가 풍성하게 맺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자라야만이 하나님을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인 성령으로 거듭난 삶을 살려면, 성령과 깊고 친밀한 영적 습관을 들여 쉬지 말고 기도하며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깨달음을 얻어 삶에 적용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자녀가 죄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 영원한 천국에 함께 살기를 원하신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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