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평안이 진정한 평안이다.

in #steemchurch5 years ago

어린아이가 엄마 품 안에 있으면 안심하고 쌕쌕 잠을 잔다. 지갑에 지폐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으면 왠지 모르게 든든하다. 공무원시험에 합격하면 평생 수입이 내려오는 수입원을 확보했다는 마음에 기쁘기 그지없다. 그 반면에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다는 통보가 오면, 앞으로 내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는 두려움으로 가득 찬다. 어떤 이는 배가 아파 무심코 동네병원에서 진찰을 해보니까, 큰 병원에서 정밀진찰을 받아보란다. 아니나 다를까, 말기암이라는 의사의 통보에 얼굴이 사색이 된다. 이 사람은 아마 두려움에 시달리다가, 암으로 죽기 전에 먼저 자살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필자가 위에 열거한 사례들은 죄다 상상에서 나온 사건들이지만,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겪을 확률이 높은 일들이다. 사망의 원인 중 60%가 암으로 인해, 시름시름 앓다가 이 땅을 떠난다고 한다. 사기업에 들어간 사람 중에서 정년까지 회사에 붙어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장을 나오게 된다. 적지 않은 중년들이 노후대책을 세우고 사는 이들이 별로 없다는 게 일반적인 통계이다. 그들은 당장 먹고 사는 일에 벅차 노후이후를 생각하지도 않고 살고 있지만,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노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노후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지만 누구에게나 맞닥뜨리는 필연적인 사건이다. 이렇듯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행복하고 평안하게 되는 일보다, 그렇지 못한 일들을 더 많이 겪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많은 재물이 필요한 이유이다. 돈만 있으면 두려운 일들을 사전에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평생 돈을 벌려고 아등바등하며 살아왔지만, 겨우 먹고 사는 일조차 녹록치 않은 게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그러니 어떻게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런가? 백만장자가 된다면 평안하게 살 거라고? 그건 당신이 부자가 되어보지 않아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만약 당신 주변에 평생 먹고 살만한 돈을 쌓아둔 부자가 있다면, 가서 한 번 물어보라. 평안하냐고? 그 사람들은 당신이 생각치도 못한 일에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돈이 많다면 혹시라도 누가 돈을 빼앗아가 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백만장자라면 경비업체에 경비를 맡기고, 여러 대의 CCTV를 설치해 놓았으며, 그도 모자라 지인 중에 갑자기 자신을 납치해서 돈을 요구하지 않을 까라는 두려움에 아무도 믿지 않고 살아간다. 돈이 많다고 질병이나 사고, 자녀들의 문제, 대인관계의 갈등, 배우자의 불륜, 사기, 사업이나 투자의 실패 등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므로 당신이 생각하는 돈은, 행복하고 평안하게 해주는 데 그다지 효과가 없다는 사실에 놀라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재벌회장이 자신의 회사건물에서 떨어져 자살을 하고, 인기연예인이 화장실에서 목을 매달고, 전직 대통령도 바위에서 투신자살을 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 사람들은 돈에 관한한 남부럽지 않게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19~21)

‘평안’이라는 히브리어는 인사말로 흔히 쓰는 ‘샬롬’이고, 헬라어는 ‘에이레네’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나서 유대인의 박해를 예상해서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하신 말씀이 바로 ‘평안해라’이다. 부활하시고 나서 예수님은 처음으로 만난 제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수도 없이 많지 않았겠는가?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구체적인 처방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이, 예수님은 그냥 ‘평안해라’만 반복하고 계신다. 두려움을 막아주고 박해를 피하게 해주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씀도 없으시고 그냥 평안하게 있으라니, 이런 답답한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평안하게 해주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주지 않고, 그냥 평안하라고 하셨는지 생각해보자.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느냐면, 그 분은 절대적인 평안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주는 평안은 임시적이고 일시적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돈이 주는 평안을 일부에 불과하고 오래 가지도 않는다. 어린아이에게 어머니가 주는 평안도 마찬가지이다. 어린아이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엄청나겠지만, 성인이 되면 어머니가 주는 평안은 대단하지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적인 평안을 주시는 분이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환경과 처지, 상황과 예측에 상관없는 절대적인 평안이다. 그래서 그런 평안을 받아 누리게 되면, 상황이 아무리 암울하고 환경이 부정적이고, 처지가 절망할 수밖에 없어도 마음속에 평안이 들어차는 것이다. 이런 평안은 외부의 조건이 채워져서 얻게 되는 평안과는 다르다. 내면으로부터 채워지는 평안이다. 그런 평안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 유일하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런 평안을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그런 평안을 받아 누리고 계신가? 교회에 나와서 수많은 예배의식과 희생적인 신앙행위를 반복하는 대가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얻고 계신가? 기도할 때만 느끼는 평안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도 누리고 계시는가?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중의 하나가 평안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 싶어 하시는 것도 바로 평안이다. 성령이 안에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것은 자유지만, 성령이 내주하는 증거인 평안을 누리고 살고 있어야 한다. 없다면 없는 것이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는데, 그분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 성령이 계시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는 다르다.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평안이다. 그런 평안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샘솟듯 생겨나는 평안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런 평안을 누리고 계신다면 이미 성령이 당신과 동행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축하드린다. 짝짝짝 앞으로 그 평안을 잃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의심치 않아도 된다. 그러나 아직 그런 평안이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을 줄기차게 부르고 성령의 내주를 혹독하게 간구해야 할 것이다. 성령이 당신 안에 들어오셔야 비로소 절대적인 평안을 누리며 살게 되기 때문이다. 아직 그런 평안이 없는데도 성령이 있다고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생각은 자유지만, 사실여부를 확인하게 되는 때는 심판대 앞에서이다. 잘못을 알았더라도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전에 당신의 영혼의 상태를 확인하고 충분히 준비하기 바란다. 때가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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