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 기술한 한국전쟁)17, 7월 26일부터 8월 20일까지 작전의 정리

in #steempress5 years ago (edited)

이시기의 작전은 낙동강의 양쪽방향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포항지역과 낙동강 동안의 교두보에 위치한 창녕, 현풍, 왜관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었다.(p.70)"

북한군이 공격을 양쪽으로 나누어서 실시한 것은 양쪽에서 포위공격을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북한군의 이런 공격은 실패했다. 양쪽으로 포위작전을 실시하다보니 전력이 분산되어 결정적인 순간에 공세종말점에 도달하여 더 이상 공격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의 말처럼 컵을 넘치게 하는 마지막 한방울이 부족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 북한군이 전력을 집중운용하지 못했던 용병술이 가장 큰 패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북한군이 병력을 집중할 수 없도록 했던 미공군의 폭격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여진다.

소련이 전쟁기간을 8월 20일로 구분한 것은 북한군의 우세가 끝나고 전세가 서서히 연합군쪽으로 기운다는 의미가 아닌가 한다.

우선 8월 20일이전까지의 작전이 성공적이었지만 진격속도가 늦었다고 한 이후에 연합군의 피해가 막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연합군의 전력이 증가하는 상황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인민군의 공격속도는 하루에 1km-4km를 초과하지 못했다. 공격간 한국군 제2,제5, 제8보병사단은 격멸되었고, 제1, 제3, 제7 및 수도사단과 미 제1기병 및 제25보병사단이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적은 장병 5만명이상의 사상자를 냈다.(p.70)"

"이른바 부산 교두보를 형성하던 적의 저항이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8월 초에 미군사령부는 미국으로부터 이동시켜 제2보병사단, 제1보병사단, 제5보병사단, 제26, 제29 독립보병연대를 전투에 투입시켰다."(p.71)

한국군 중에서 유일하게 많은 피해를 입지 않은 부대가 6사단이었다. 6사단은 춘천과 홍천에서 북한군 제2군단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저지한 이후 낙동강방어선까지 줄곳 북한군에 대한 우세를 유지했다. 어떤 이유로 한국군 6사단이 그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는지는 연구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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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사단은 어떤 방법으로 피해를 많이 입지 않았을까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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