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든 · 손
가끔 실속 없다는 핀잔을 들을 때마다
눈앞에 푸릇푸릇한 파밭이 펼쳐진다
국수가락보다 가늘게 태어나
한 해를 살다가
남들 뽑혀 갈 때 뽑히지 못해
밭고랑에서 눈을 덮고 겨울을 났다
겨울잠을 깬 묵은 파는 바람으로 배를 불렸다
허리띠 같은 마디도 하나 없는 터에
한 번 중심을 잃으면
영영 일어설 수 없다는 율법 앞에서
왕궁의 기둥처럼 곧게 목을 세웠다
이제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실속 차리지 않고도
잘 살아온 목숨들에게 세습되는
속 빈 것들/ 공광규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들은 다 속이 비어 있다
줄기에서 슬픈 숨소리가 흘러나와
피리를 만들어 불게 되었다는 갈대도 그렇고
시골집 뒤란에 총총히 서 있는 대나무도 그렇고
가수 김태곤이 힐링 프로그램에 들고 나와 켜는 해금과 대금도 그렇고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회의 마치고 나오다가 정동 길거리에서 산 오카리나도 그렇고
나도 속 빈 놈이 되어야겠다
속 빈 것들과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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