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수첩/노자규

in #story6 years ago

남편의 수첩
출처 : 노자규의 .. | 블로그
http://m.blog.naver.com/q5949a/221375335574
남편의 수첩

남편은 트럭을 타고
하루 온종일 동네를 누비며
과일을 팔러다닙니다
공무원 공부를 하다 아이도 태어나다 보니
생활고에 선택한 직업이었습니다

그렇게
남편은 볼펜 대신
운전대와 과일상자를 들어야 했고
요즘은 장사를 마치고 7시에 집에 와서
밥을 먹고는 다시 출근을 합니다
편의점에서
새벽 두시까지 알바를 하기 때문이죠

조금 있으면 10주년 결혼기념일에
남편이 멋지게 프러포즈를 해준다며
다닌지도 벌써 두 달째네요

돈은 많이 모았냐고요
아파 병원비가 더나 온 것 같아요
하지만 저를 위한 마음이 이쁘
말리진 않고 있답니다

오늘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 장사도 안된다며
감기몸살까지 겹쳐 일찍 들어와 누웠습니다

“여보
아프면 링거이라도 맞아야 하는 거 아냐”

“누워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그런 남편은 알바까지 못 나간 채
밤새 끙끙거리다 겨우 잠이들었습니다

남편이 벗어놓은 점퍼를
옷걸이에 걸어두려고 드는 순간
볼펜 사이로 벌어진 채 떨어진
낡고 헤어진 수첩 하나

저는 그 수첩을 읽어가다
그만 방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습니다
“내가 살아갈 이유가 되어준
아내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자 “라는
표지에 적힌 글자 너머로
이런 일 저런 일 힘들 때마다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버틸 수 있었다는
말과 함께
남편의 힘든 하루가
일기처럼 빼곡히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팔다 남은 과일은 버리는 게 태반이라
아르바이트한 돈은 다음날 장사 밑천으로
다 들어가 버리다 보니
마음이 아파 몸살이 온 것 같았습니다

우는 내손을 잡으며
남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딱 하루만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누구랑 바꾸고 싶어 “라고

전 주저 없이
“당신이랑... “

돈잘버는 유명한 사람들도 많은데
왜냐고 묻는 남편의 눈짓에
“난 당신이
하루라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

남편의 수첩은 남편의 하루였기에
지금은
비탈길이지만 곧 평지가 나타날 거라며
우린 서로를 다독이고 있었습니다

“여보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거든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뭔지 알아 “

“뭔데 “

“행복이야”

우린 네 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세잎 글로버를
무수히 밞어며 살아온 건 아닌지
행운을 찾기 위해
내발 밑에 행복을 밟는 것처럼....

나는
오늘 남편의 점퍼 안주머니에
새 수첩을 넣어두면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지금부터라고...”

펴냄/노자규의 골목이야기18-10-11-20-37-19-031_deco.jpg18-10-11-20-37-19-031_deco.jpg18-10-11-20-37-19-031_deco.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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