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본 전쟁 : 엘리엇의 ‘어린이날 대첩’ 간단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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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꿀맛 같은 3일 연휴를 보내고 있는 동안 유럽에서는 특기할 만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이탈리아 최대 통신사인 ‘Telekom Italia’ 의 경영권을 놓고 프랑스의 미디어 공룡 비방디(Vivendi)와 우리에게도 익히 악명(?)을 떨친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격돌을 벌인 것이다. 결론은 놀라웠다. 지분율이 채 9%에 미치지 못했던 엘리엇이 지분율 25%의 최대주주 비방디를 격침시키고 이사회의 2/3를 확보한 것이었다. 가히 ‘대첩’ 이라 불릴 수 있겠다.

이번 대결에서 엘리엇 측은 49.84%의 지분을 확보하여 47.18% 를 확보한 비방디 측을 근소한 차로 눌렀는데, 여기에는 약 5%의 지분을 보유한 이탈리아 국영은행 까싸 데포지티(Cassa Depositi e Prestiti)가 엘리엇의 손을 들어 준 덕이 컸다. 까싸 데포지티는 한국의 자산관리공사 KAMCO 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정부 기관이라 생각하면 쉽다. 일종의 기금관리형 공공기관인 것이다.

잠깐, 지금 ‘국영은행’ 이 해외 헤지펀드의 손을 들어 주었다는 것인가?

• 엘리엇의 텔레콤 이탈리아 경영권 획득에 대한 보도 : FT

바로 이 점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가 엘리엇의 손을 들어 준 이유가 국가 기간산업에 대한 지나친 해외 자본의 진출에 부담을 느낀 결과물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엘리엇이나 소버린이 한국 재벌들을 겨냥했을 때에는 똑같은 논리가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했었다. 저번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중국 자본의 서방 선진국 스타트업 인수에도 서방은 유사한 논리로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던 바 있다.

일단 까싸 데포지티가 엘리엇의 손을 들어 준 이유는 다양하게 추론해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정부 입장에서는 이미 25% 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 비방디보다는 소액 주주 간 연립정권에 가까운 엘리엇 진영이 더 통제하기 쉬웠을 것이다. 만약 이사회를 장악한 엘리엇이 이탈리아의 국익에 반하는 방향으로 경영 방침을 정한다면 까싸 데포지티는 다시 비방디 측에 붙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은 당연히 엘리엇 측에서도 인지하고 있다. 엘리엇이 이사회 장악 뒤에도 비방디가 임명한 현 CEO인 아모스 제니쉬를 유임키로 방침을 정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 텔레콤 이탈리아의 또 다른 대주주인 노르웨이 국부펀드와의 이견으로 인해 아모스 제니쉬가 유임되었다는 보도 : Le Sechos

우리가 여기에서 얻어야 할 인사이트는 한국의 플랫폼 기업들의 미래가 이 ‘어린이날 대첩’ 에서도 엿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강력한 현금력을 무기로 한 한국의 플랫폼 기업들은 현재 자체 투자팀을 구성하고 미래 먹거리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또한 이는 점차 자본규제가 완화되고 곧 본토에 커스터마이즈 된 공격형 헤지펀드가 탄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중국 자본의 타겟이 될 것이다. 현재까지는 한국 연기금의 자본력이 월등하기 때문에 방어가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앞으로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는 알 수 없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면, 일반적인 행동주의 펀드의 패턴이 규모가 거대한 기업들을 분할해서 안 되는 사업은 매각하고 되는 사업 위주로 이익을 뽑아 먹는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앞으로 한국 대기업과 해외 자본 간 발생할 수 있는 경영권 분쟁의 주요 사항 역시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과연 어떤 방향이 주주의 이익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될지를 판단하는 것은 이제 전적으로 투자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우리는 다가오는 자본 전쟁에 과연 얼마만큼 준비가 되어 있을까? 글쎄... 연기금전문대학원이 그 해답이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