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부여, 멀다.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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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있어 부여에 들렀다. 반드시 혼자 가야하는 공식적인 일은 아니라서 가족들을 데리고 가족여행 겸 출발했지만 또 여유가 많은 가족여행은 아니라서 여행같은 출장, 출장같은 여행이라는 이상한 컨셉으로 부여를 들렀다. 경상도권에서 평생을 보내다보니 평생 백제의 유물, 백제의 문화재라고는 교과서와 텔레비전에서 본 게 전부이고 부여, 공주쪽은 발을 디뎌본 적도 없었다.

대구에서 공주, 부여를 가려면 대전을 거쳐야 한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아, 신라촌놈 대전 부근에서 '백제'버스 보고 잠깐 놀랬다.

허리가 아파서 중간에 휴게소가 보일 때마다 잠깐식 쉬었더니 밤이 되어서야 톨게이트를 통과한다. 부여에서 할 일을 끝내놓고 나니 벌써 오후 10시 무렵. 가족들을 데리고 온 게 미안할 지경이다. 그러나 문제 없다. 비장의 무기, 숙소가 있다. 아이는 언제부턴가 '숙소'를 너무 좋아한다. 그건 아이에게 아마도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상징하는 단어일 것이다. 아내도 예전에 단 둘이 갔던 일본여행에서 에어비엔비로 구했던 귀신 나올 것 같은 분위기의 숙소에서 한 번 잔 이후로는 '기본만 하는' 숙소에 가도 즐거워한다. 당시에 일본 가정집을 도미토리 숙소로 개조한 곳에 한 번 묵은 후, 숙소에 대한 기대감이 많이 낮아진 것이다. '아, 이 사람하고 같이 다니면 잘못하면 노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예약한 숙소에 대해 끊임없는감시와 확인을 하며 괜찮은 숙소를 보면 매우 좋아한다. 여보, 미안해.

우리동네에서는 편의점에 갈 일이 없으니 잘 모르겠다. 동네 편의점에 이렇게 잔술로 파는 사케가 많은 건 이 동네만 그런건지, 전국이 다 그런건지. 술 잘못 마셨다가 피로누적으로 다음 날 집에 돌아가지 못할까봐 잠들기 전에 마실 술은 늘 먹던 캔맥주로 산다.






롯데 리조트 부여, 깔끔하다. 현관로비 앞에 사진찍기 좋은 한옥기둥과 지붕모양 구조물들도 있어서 산책삼아 한 바퀴 돌기도 좋았다. 한밤중에 체크인 해서는 온가족이 리조트 앞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이 좀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했다.

주차 안내원 자리와 안내데스크를 보더니 아이가 '놀이하자'고 조른다. 나는 안내원이고 아이는 손님이다. 역할을 바꿔가며 놀고 있는데 '진짜' 손님이 와서 체크인은 어디서 하냐고 묻길래 '진짜' 직원처럼 친절하게 알려줬다.






트윈베드의 침실, 작은 거실, 온돌방. 방도 깔끔하니 좋았다. 저기 찻잔을 꺼내면서 잔받침과 떨어지지 않아 자세히 보니 찐득하니 커피마른 흔적이 보이길래 컵은 쓰지 않았다.

원래 루트는 낙화암, 백제문화단지, 정림사, 궁남지. 아이가 곯아떨어질 때쯤 대구로 출발! 정도였는데 아침에 눈 뜨니 이게 왠걸,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아이와 함께 야외를 돌기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숙소 지하에 있는 놀이시설에서 동전넣고 기차 한참 타고.. 사우나에 갔다가 출발하려는데 아이와 아내의 한 판 싸움이 벌어졌다. 사우나 바로 옆에 있던 수영장 때문이다. 한참을 달래 수영장은 나중에 오기로 하고 길 바로 건너편에 있는 롯데아울렛부터 갔다. 백제문화단지, 롯데아울렛, 롯데리조트는 아주아주 가깝다.



백제문화단지스러운 롯데아울렛. 여기서 대충 아침 겸 점심을 대충 챙겨먹고(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점심시간이라니..) 이왕 온 김에 옷을 좀 골라봤다. 차이나칼라 린넨셔츠가 멋있어 보여서 몸에 걸쳐봤는데...


새마을운동 연수들으러 한국에 온 베트남 공무원처럼 보여서 패스.


국립부여박물관에 들렀더니 마침 그 시간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림사지 5층탑 모양 냉장고 마그넷 만들기'수업이 무료로 진행된다고 했다. 아이에게는 '체험'이라고 했더니 꼭 하고 싶단다.

국립부여박물관은 금동대향로를 위한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시관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금동대향로를 설명해놓은 '어린이전시관'이고 하나는 일반전시관인데 구석기~초기철기까지의 유물들은 다른 박물관들과 차이가 없고 백제 시대를 다룬 전시관 한 개, 그 중 백제금동대향로 실물만을 전시해둔 방 하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백제가 멸망하던 그 순간, 누군가가 왕실의 보물을 곱게 천에 싸서 도망가다가 왕실 소유의 사찰을 지나면서 사찰 내 대장간 옆에 떨어뜨리고 갔을 것이다. 혹은 그 자리에서 보물을 품에 안고 그대로 적군의 칼에 죽으며 뻘에 쓰러졌든지. 1500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 자리에 주차장을 짓는다고 땅을 파면서 발견된 유물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복제품도 하나 두고서 진짜로 향도 파웠다가 종교단체의 반발로 그만뒀다고 한다. 향 연기가 봉황아래의 산에서 피어오르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없어 아쉽다.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 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이왕 아이가 탑모양 마그넷을 만든 김에 박물관 코 앞에 있는 정림사지 5층탑을 직접 보고 가기로 했다. 주차장에서 탑까지 걷는 짧은 순간에도 몇번을 그냥 차타고 집에 갈까 망설였던 것 같다.

'여기까지 와서 못 보고 간 게 많아서 너무 아쉽다. 여름 휴가 때 2박3일 정도 일정으로 대전, 공주, 부여를 묶어서 보러 오자', 아내와 차에서 나눈 이야기다. 그 때는 낙화암과 백마강도, 백제문화단지도, 궁남지도, 부여 특유의 맛이 있다는 묵과 비빔밥도 , 줄서서 먹어야 한단느 막국수도 빠뜨리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옆에서 졸고 있던 아이가 한 마디 거든다. "숙소의 수영장도!"


여행지 정보
● 대한민국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롯데리조트 부여
● 대한민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국립부여박물관



대구에서 부여,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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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미안해'

생산성, 너무 둔화된 거 아닙니까? 잘 지내시죠? 비오는 수요일입니다. 즐거운 수요일 보내시길^^

둔화는 있어도 정지는 없다는 것이 저의 신조입니다. 그것도 힘든 일일지도 모르지만..언젠가는 툭 끊어져 버릴지도 모르지만 힘 닿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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