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일기] 여름을 알리는 공연의 기록, @Villejuif

in #tripsteem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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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고 싶은 욕구, 노래하고 싶은 욕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사람들과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구, 부지런 떨고 싶은 욕구…. 이 모든 것이 부질 없어지는, 한 순간에 사그러지는 때가 있다. 바로 몸이 아플때이다. 건강할 때는 마냥 낙천적이고 사소한 긴장감에 활발하다가 앓아누운 이틀 동안 그동안의 고민과 불안함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아플때는 시간마저 느리게 흐른다.


 하루가 눈깜빡하면 지나가던 평소와는 달리, 누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그 적적함과 고요함은 느긋하게 흘러가는 만큼 내 몸을 짓누른다. 기차가 한번 달리기 시작하면 관성의 법칙으로 쭉 가듯이 내 몸이 그저 어디엔가 치이지 않으면 도무지 쉴 생각을 안하는 폭주하는 철덩어리마냥 쉴새없이 움직여왔다. 그래봤자 고작 파리에서, 늘 다니는 내 루틴 안에서의 바지런함이였지만 떨어진 기력은 쉽게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월경과 한달 전부터 잡혀있던 공연 날짜가 겹치면서 만성 두통과 몸살기운이 찾아왔다. 평소 내 몸과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는 티를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싫어하기에 조용히 앓다 누우면 나아져 있겠지 했건만 그냥 지나가기란 역시 무리였나. 28도를 웃도는 날씨. 저녁 6시 공연이였는데 아침에 도저히 몸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점심 먹기 전부터 목을 풀어놔야 하는데… 조금이라도 스트레칭을 해서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눈은 물론이고 손과 발은 이미 퉁퉁 부어 평소보다 1.5배 사이즈로 부풀어있다.


 뭐 이깟 아픈게 대수라고 이렇게 약한 티를 내야겠나 싶어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요가 매트 위에서 간신히 호흡을 한다. 이런 약해 빠진 몸 같으니라고! 멍청한 몸 정신차려라! 빈속에 약을 털어넣을 수 없어 아무것도 없는 주방 선반장을 괜시리 열었다 닫았다. 오, 이게 뭐람. 횡재했다. 샌드위치 빵 한조각이 구석에 남아있었다. 날짜를 보니 아직 넉넉하다. 이거라도 먹자 싶어 토스트기에 넣고 굽고, 띵- 하는 소리에 따끈따끈해진 빵을 그대로 입에 구겨넣었다. 잼이고 버터고 뭐고 없다. 자고로 여자라면 퍼석퍼석한 식빵 정도는 한입에 털어 넣어줘야지.


 모래알같이 푸석한 빵을 씹으며 오늘 연주할 악보를 눈으로 찬찬히 살펴보았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데 노래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아니, 빌쥐프 Villejuif 까지 갈 수는 있을까. 습관처럼 켜본 핸드폰 날씨어플은 오늘이 28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이고...오늘 참 긴 하루가 되겠구나. 그래도, 취소할 수는 없는 공연이였다.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있는 친구도 와서 몇 컷 건지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고, 무엇보다 365일 건강하다 겨우 이틀 아픈걸로 (우연히 여러 일이 겹쳤지만) 일정을 쉬고 싶지 않았다.


 결심을 내리고, 생기없는 얼굴을 씻고 가장 편안하면서도 포멀한 차림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땀을 한바가지 흘린 터라 조금 찝찝했으나 지금 위생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기에 딱 세시간만 참자 되뇌이며 집을 나섰다. 햇살은 따가울정도로 숨이 막혔고 혼미할정도로 무겁게 느껴졌다. 한걸음 한걸음을 내밀때 마다 사투를 벌여야 했다. 이제와서 돌아보며 쓰는 글이지만...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최악의 컨디션이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컨디션이 일년 내내 좋을수는 없는 일이고 나를 찾아주는 무대가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 않는가. 기운을 내서 트람을 잡아타고, 드디어 공연장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이미 사람들이 서른명은 넘게 모여있었고 편안하고 따듯한 바이브가 흐르고 있었다. 창고같은 특색의 공연장에 들어선 순간 눈을 사로잡던 유니크한 소품들에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무대는 한 30분 짐작 남아있었기에 마지막으로 곡을 체크하고, 멤버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관객들 속엔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도, 처음 보는 낯선 얼굴도 보였다.









 노래하기 5분 전. 마지막으로 악보를 점검하는 중










 간단한 사운드 체크와 함께 시작했다. 말도 탈도 많았던 공연이였다. 배가 빵빵하게 차올랐기에 호흡도 피치도 불안전했던 일대 최악의 컨디션으로 아쉬웠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즐겁게 노래했고 관객들에게 좋은 에너지도 넘치게 받았다. 찾아와준 사람들의 얼굴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필수 있었기에 더욱 감사했다. 이날 부른 곡은 Triste, My Shining Hour. 워낙 밴드가 탄탄했고 잘 받춰주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멘붕이었을거다. 이날 찍은 영상은 다듬어서 곧 업로드 할 예정이다.







 공연이 끝난 후 옆 정원에서 소박한 뒤풀이가 벌어졌다. 모두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묻고, 잔을 채워주며 이야기를 나눴다. 프랑스식 집이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옛날 프랑스 감성이 소품과 구석 여기저기 묻어났는데 이런 공간을 또 하나 알아가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싶다. 하우스 콘서트는 이런 점이 좋다. 손때묻은 공간에서 사람들과 다함께 땀흘리며 음악을 듣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대규모 콘서트장에서 열리는 무대와는 또다른 정감이 느껴지기에.






  돌아오는 길, 조금은 시원해진 길 위에 노을이 반겨준다. 고생했다고, 포기하지 않고 나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거라고 도닥거려주는 기분. 오늘도 노래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잊지 말자.


여행지 정보
● Villejuif, France



[파리일기] 여름을 알리는 공연의 기록, @Villeju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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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이 특이하네요. 영상이 궁금해지네요. ^^

하우스를 개조한 곳이라 종종 공연장으로 쓰이는것 같더라구요. ^^

프로시네요. 아픈몸에도 관객을 위해. 빠른쾌유 바랍니다.

몸은 많이 나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parkname 님 :-)

멋지십니다^^

아닙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하네요. ^^

레일라님 미소만 보면 아무도 아픈 지 몰랐을거에요. 최악의 컨디션에도 멋진 공연을 보여주시다니 멋져요 :D

노래할때는 자동으로 웃게 돼요. 소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 되었으면 좋겠네요. 이렇게 또 간절히 바란 무대도 오랜만이였어요. ^^ 감사합니다 고물님!

노을 멋있네요 멋있는만큼 빛이 사그라드는 시점이 마음이 가장 허하죠 아프지마수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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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노을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라는 생각에 감사한 하루입니다 :-) 감사합니다. trueimagine 님도 건강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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