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첫 아르바이트

in #writing6 years ago (edited)

2008년 11월, 수능을 치렀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께서는 수능이 끝난 후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적어보라고 하셨다. 그때난 책상 왼쪽 상단에 ‘OO대학교 앞에서 포장마차 운영하기’라고 적었다. ‘논스톱’이라는 청춘 시트콤에서 박경림이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파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라면 줄곧 ‘떡볶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대학생이 되면 포장마차 아르바이트를 해봐야지!’라는 꿈을 꾸는 적잖이 엉뚱한 학생이었다.

수능을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자리는 포장마차가 아닌 카페였다. 그렇다고 근사한 카페에서 우아하게 바리스타가된 건 아니었다. 그 때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음료 판매원’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대전 은행동은 중, 고, 대학생들이 놀기 좋은 곳이다. 시내 지하상가 끝 부분에 4개 정도의 카페가 일렬로 모여있다. 카페 내부는 음료 재료와 커피 기계 외에 아르바이트생들이 서 있을 수 있는, 오직 서 있을 만한 자리가 고작이다.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지 않아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 대신 음료 가격이 1,500원에서 3,000원 사이로 저렴하다. 커피 뿐만 아니라 어린이 입맛을 가진 학생들이 즐겨 마실수 있도록 음료 종류가 다양해서 메뉴판이 어지럽게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니 돈이 부족한 학생들이 돌아다니다가 목 마를 때 맛있는 음료를 사먹을 수 있는 곳으로 적당했다.

지금은 덜해졌지만 당시에는 호객 행위가 심했다. 처음 맡은 역할도 메뉴판을 들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인사를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뻗어 메뉴판을 보여줬다. 모르는 척 지나가는 사람도있었고, 메뉴판으로 다가와 음료를 주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쑥스러웠지만 곧 익숙해졌다. 매니저 언니가 메뉴판을 들고 큰 소리로 외칠 때 갖고 있는 특유의 억양을 곧잘 따라했다. 그 특유의 억양이란, 놀이공원에 가면 놀이기구 앞에서 동물 모양의 머리띠를 하고 두 손을 흔들며 어린이 친구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과 비슷했다.

카페 바로 앞지하상가 한 가운데에 제법 긴 분수대가 있었다. 분수대 가장자리를 따라 걸터앉을 수 있는 벤치가 마련되어있었다.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고, 쇼핑을 하다 지친 사람들이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 카페 앞에 앉아있었고, 나는 최대한 큰 소리로 외쳤다. 호객행위를 할 때 잊지 말아야 하는건 웃음이었다. 계속 서서 소리치느라 배고프고, 힘들어도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하는 내가 딱하기도, 대견하기도 했다. 매니저 언니는 그 당시 이십대 중후반 정도 되는 나이었는데, 일하는 카페 앞 분수대 벤치로 나를 불러 앉혔다.

  • “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 오른쪽 봐봐. 티나지 않게.”

  • “저쪽이요?”

  • “손가락질 하지 말고. 그냥 나랑 얘기하는 척 해.”

  • “네.”

  • “저기 카페 보이지? 눈은 다시 나를 바라보고 얘기해.”

  • “네.”

  • “사람들 어떻게 하는지 보이지?”

  • “네.”

  • “왼쪽도 봐봐. 저 사람들 다 우리 경쟁자야. 무조건 저 사람들보다 큰 소리로 인사 건네야 한다. 손님 뺏기지 않게.”

  • “네.”

시급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2,300원에서 2,500원 사이였던 것같다. 그 당시 최저임금이 4천원대였지만 일단 시작해보기로 했다. 처음 일주일은 수습기간으로 무급이라고 했다. 대학교에 가기 전에 공부가 아닌 그 어떤 경험도 신선하고, 재미있게 다가왔다. 그만큼 의욕도 넘쳤다. 무언가라도 하면서 의미있게 보내고 싶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며 자랑스럽게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러나 부모님의 얼굴 표정은 반색이 되었다. 그만 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미 3~4일 진행했고, 조금만 지나면 무급 기간이 끝나는데… 시급이 적더라도 용돈을 스스로 버는 게 더 좋은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는 것도 아닌데 수습 기간이 왜 필요하냐는 것이 엄마의 질문이었다. 그렇게 인건비를 받지 않는 건 불법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긴 해도 매니저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인건비를 요구하는 게 맞지만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조차 부담이었다. 결국엔 그만둔다고 전화로 이야기하고, 더이상 그 카페에 나가지 않았다. 그 동안 일한 대가에 대해서는 그냥 넘겼다. 인생 경험으로 값을 치른 것이다.

그 후로 시내 지하상가에서 카페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책임감있게 하고 싶었지만 시작한지 일주일 만에 그만둔 것도 영 찝찝했다. 첫 아르바이트였는데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고 뿌듯함을 느껴보기도 전에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일을 그만둔 지 얼마 안되었을 때는 죄 지은 사람처럼 그 앞을 지나가길 꺼렸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순진무구했던 학생의 마음속에는 그 일이 아직 작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자리는 금새 다른 사람에 의해 채워지고, 지금까지도 카페가 문제 없이 운영되고 있다. 지금은 일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노동의 대가를 받고 있을까? 그 당시 매니저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어찌됐든 이제는 그 매니저가 나를 기억하든 말든 그 앞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닌다. 대신 절대 그곳에서 음료는 사 마시지 않는다. 어쩐지 음료 맛마저 꺼림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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