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ZAN] 탐구생활

in #zzan5 years ago (edited)

연어입니다. 요즘도 '탐구생활'이 있나요? 명맥이 끊겼으면 추억의 숙제가 되는군요. 아시겠지만 방학 숙제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 탐구생활
  • 일기

일기야 뭐, 막판 하루 이틀 남겨놓고 죽어라 한 달 분량 벼락치기 하는 것이고, 탐구생활은 전국 학생들을 다 과학자로 만들 심산인지 그 의도가 의심스러울 만큼 고문의 숙제였죠.

그런데 이게 왠일? 에라 모르겠다 자포자기하며 대충대충 답을 채워 넣었던 탐구생활을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검열하시던 겁니다. 이름하여,

  • 방학 숙제 검사

그때의 아버지는 흡사 검사와 같았습니다. 질문은 딱 한 종류,

  • 이 실험, 직접 해본거니?

그럴리가요. 놀기 바쁜 방학인데 답안 작성 몇 줄 하겠다고 그 많은 실험들을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회초리 세례를 받아야 했고, 어스름해지는 저녁에 문방구에 가서 실험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재료들을 사와야했죠. 고무줄, 종이컵 뭐 그런게 대부분이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다음날엔 하루 종일 방에 쳐박혀(?) 연구 논문, 아니 탐구생활을 위해 실험을 했습니다. 기압차를 확인하기 위해 (더 높은)책상과 (덜 높은)의자 두 군데에 대야를 두고 기저귀용 노란 고무밴드로 물을 내려 본다거나 뭐 그런 실험들을 했지요. 1/3은 회초리에 쫄고, 1/3은 좀 삐지고, 1/3은 반성하면서 말이죠.

무사히 탐구생활의 답안 작성을 끝내던 저는 '사기[史記]'[史記]' 집필을 끝마친 사마천의 마음으로 연필을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 개학이 되었죠.

  • 이 실험 해 본 사람, 손들어 봐?

아무 생각없이 손을 든 저는, 반의 모든 학생들이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뭐지? 나만 이 실험을 해본건가?

그런데 선생님의 질문은 계속 되었고, 역시나 손을 든 학생은 저 혼자 뿐이거나 한 두 녀석들만 있었죠. 하,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종아리 회초리와 맞바꿔야 했던 나의 탐구생활...
저는 제대로 된 숙제를 할 수 있었던 아버지의 배려(?)에 감사하며 뿌듯해 해야 하는지, 괜히 걸려가지고 다른 녀석들은 하지도 않던 숙제를 해야 했던 것을 억울해 해야 하는지 잠시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똑같이 놀기 바빴던 방학, 일기는 저도 다른 친구들과 다를 바 없이 후다닥 휘갈겨 썼지만, 탐구생활 만큼은 당당하게 제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와 여름 방학이 준 (혹독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으.. 아직도 그 누르스름하고 일반 교과서보다 크기가 컸던 '탐구생활'이 눈 앞에 아른거리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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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시절로 돌아가고 싶네요 ㅎㅎ 탐구생활

저도 왠지 그냥 그 때 그 시절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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