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ZAN] 김신욱, 최강희, 그리고 윤봉길 in 상해

in #zzan5 years ago (edited)

연어입니다. 파견차 중국 상해에 머물를 때였습니다. 덥고 습하고 햇빛 강한 8월. 삥치린(아이스크림) 사먹으러 갈 때 빼고는 도통 낮에 돌아다니고 싶지 않은 날씨였지요.

딱 오늘과 같은 날짜인 8월 8일이 되니 상해에 있을 때 가보고 싶다는, 아니 꼭 가봐야 된다는 두 군데를 가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 상해임시정부청사(大韓民國臨時政府廳舍)
  • 홍커우 공원(虹口公園) 윤봉길의사기념관

였습니다. 상해에 사는 동안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지만 유독 이 두 장소만은 8월 중순이 될 때까지 참고 기다려 왔었지요. 8월 15일 광복절에는 임시정부 청사로, 그리고 16일에는 홍커우 공원으로... 어느 때든 가도 상관없었겠지만 한국인이라서 그랬을까요? 꼭 이 날에 맞춰 가고 싶었거든요. 마침 각각 토요일과 일요일이어서 업무에 매이지 않아도 되었구요.


■ 상해임시정부청사

아침에 임시정부청사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좀 놀랐네요. 예전에 상해로 두 차례 출장을 온 적 있었지만 일만 보고 오기 바빴고, 그나마 상해 법인장의 가이드로 '신천지(新天地)'라는 곳 정도만 밤에 돌아다녀 본적이 있었는데, 우리로 치면 가로수길이나 홍대 같은 곳입니다.(크기는 작아요) 상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죠.

헌데 그런 곳 골목에 상해임시정부청사 옛 건물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는 청사 건물이 한적하고 고즈넉한 곳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관광객과 젊은이들이 바글거리는 곳 한 구석 골목에 자리잡고 있을 줄이야...

거기에 더 기가 막혔던 것은 광복절 당일인데도 내부 수리중이라며 관람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죠. 당연히 수리야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만약 대한민국 정부가 관할하는 문화재라면 광복일 같은 뜻깊은 날에 맞춰 새단장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공사 일정을 잡았을테지요. 중국의 관할에 있다보니 8월15일의 의미를 모르는 것인지...

비록 공사중이라 내부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붉으스름한 벽돌로 지어진 아담한 건물엔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의 손길이 많이 갔다는 느낌이 충만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감동적인 것은..

  • 정부 청사 앞에 놓인 수많은 촛불과 편지와 화환들...

어느 중국 국민이 이런 것들을 놓고 갔겠습니까? 누가 봐도 한국 관광객과 교민들, 그리고 유학생들의 손길이었죠. 중국에서 쓰던 핸드폰 어딘가에 사진 파일로 남아있겠지만, 유학생이 헌화하고 간 것으로 생각되는 꽃 한 다발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코 끝이 시큰해지더군요.

마침 한 서양 노부부가 젊은 중국 여자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지나가던 중 왠 골목에 (한국)사람들이 경건한 분위기로 드나든 것을 보고는 들어오더군요. 그리고 가이드에게 묻습니다.

  • 이 사람들은 왜 여기에 서있는 건가요?
  • 아, 이 분들은 한국 사람들입니다. 여기 이 건물이...

노부부가 나즈막한 감탄사와 함께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듣길래 제가 잠시 설명을 곁들여 주었죠.

  • 오늘은 대한민국이 일본의 강점으로 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일하는 날입니다. 당시 한국 내에 정부를 세울 수 없어 여기 중국 상해에 처음 임시정부를 세웠고, 한국의 본격적인 독립운동이 이루어졌습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는 여기 이 임시정부를 이어받은 것이죠. 오늘 상해에 있는 많은 한국인들이 그 역사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들르는 것입니다.
  • 오, 한 번 안에 들어가보고 싶은데 지금 들어갈 수가 없는건가요?
  •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지금 공사중이거든요. 여기는 한국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역사적 의미를 크게 받아들이지 않는가 봅니다. 한국이었다면 이런 상황이었을까요?

■ 홍커우 공원 윤봉길의사기념관

한국의 양재동에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더 의미있는 곳은 상해 홍커우 공원(虹口公園)에 있는 윤봉길의사기념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이제 홍커우 공원은 루쉰공원(魯迅公園)으로 이름이 바뀌어 있습니다. 소설 '아큐정전'으로 유명한 작가 루쉰의 묘와 기념관이 이 공원에 있기 때문이죠. 중국인에게는 윤봉길 의사보다 루쉰이 더 중요할테니 말입니다.

이 공원에 가보면 상해에 있는 여느 큰 공원과 다르지는 않습니다. 연못과 울창한 나무 숲 사이로 꼬부랑 길을 가보면 윤봉길의사기념관이 나오죠. 루쉰을 기념하는 자리가 쉽게 찾아갈 수 있는(거의 그냥 보이는) 위치에 있다면 윤봉길의사기념관은 일부러 찾아가야 하는 코스입니다.

실제로 사람이 많이 드나들진 않았어요. 중국인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했습니다. 타국에서 나라를 위해 활동해야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설움이랄까.. 왠지 마음이 씁쓸해졌습니다.

아, 그런데 한 무리의 한국분들이 나오시더군요. '하나투어'라는 깃발을 따라 10여 분이 방문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시던 중이었습니다. 역시 그래도 한국인은 한국인이군요. 관광을 오신 분들이었는데, 그 관광 코스에 윤봉길의사기념관이 있나 봅니다. 가슴 흐뭇해지더군요.

2층 한옥처럼 지어진 기념관에 들어가 보면 윤봉길 의사를 비롯해 당시 의거가 남긴 역사적 의미와 그 파급 효과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건축 양식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그 건물은 분명 한국적인 디자인을 살린 한옥 구조로서 한국 사람들의 주도하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당시 상해에는 조계지(法租界)라는 것이 있어서, 중국을 나눠먹으려 했던 나라들이 외국인으로서 자유롭게 거주하고 치외법권을 누릴 수 있도록 설정한 구역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상해에 있는 이 조계지들은 유명 관광지가 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프랑스 조계지와 일본 조계지입니다. 특히 프랑스 조계지는 고즈넉한 서양풍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어 영화에서 종종 보는 '부띠끄한 상해 거리'를 만끽할 수 있죠.

상해임시정부는 프랑스 조계지 안에 자리잡고 있어 일본의 간섭을 덜 받으며 독립운동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홍커우 공원은 일본 조계지 근처에 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윤봉길 의사가 일본의 행사일에 맞춰 거사를 준비하고 접근할 수 있었던 것이죠.

다시 기념관 얘기로 돌아와서, 기념관 유지 관리에도 많은 비용이 들텐데, 확실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기념품 판매 수익으로 충당한다는 안내문이 있더군요. 대한민국 정부나 여느 재단에서 지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기념품 판매가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이런저런 기념품을 구입해 왔습니다. 머그컵도 몇 개 샀었는데 한국에 들어올 때 선물로 나눠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 홍커우 축구 경기장, 그리고 최강희 - 김신욱

홍커우 공원을 나오면 거대한 경기장이 하나 보입니다. 바로 홍커우 축구 경기장이죠. 요즘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상하이 선화'가 사용하는 구장입니다.

요즘 상화이 선화로 이적한 김신욱 선수의 소식이 정말 뜨겁습니다. 중국 프로축구를 달아오르게 하고 있죠. (5경기 연속골 진행중. 8골 2도움) 제가 상해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습니다. 한국인 감독에 한국인 에이스.

상해 홍커우 구장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김신욱 선수의 맹활약 소식을 듣다 보니 문득 옆에 자리하고 있는 홍커우 공원이 생각나고,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광복절을 생각하니 상해임시 정부도 생각나고.. 짧은 시간 상해에 머물면서 홀로 역사적인 장소를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비록 혼자 다녔던 방문이었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아마 한국인이란 마음가짐으로 다녔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강희 감독과 김신욱 선수의 더 큰 선전을 기대해 봅니다.
애국지사들의 피와 눈물이 서려있는 상해 홍커우 경기장에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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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거의 3년을 법인장을 지냈는데..ㅋㅋ 한번도 못가봤어요. 업무 접대차 와이탄은 한 30번은 간 것 같은데..
이번 출장 때는 시간내서 가보고 싶네요.

엇. 그러셨군요. 일에 매이다 보면 그렇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이때 아니면 언제 가보랴'하고는 가봤네요. ^^ 마음 뭉클해지는 무언가가 있는 곳이니 상해에 가실 때 시간 내어 꼭 한 번 가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같은 공간 그리고 시간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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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역사인가 봅니다.

그리고 기록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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