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함락, 천년 원한의 시작

in #zzan5 years ago

1099년 7월 15일 천년 원한의 시작

"넉넉지도 않은 이 땅엔 사람이 넘친다. 성스러운 묘가 있는 그곳에 있는 악한 자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하라. 그곳은 하나님이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기독교인들끼리의 싸움을 걷어치우고 이교도와 맞서라. 십자군에 참여한 자가 죽으면 그 순간 모든 죄가 사하여지고 그는 천국에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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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르몽 종교회의에서 교황 우르반 2세는 열변을 토했다. 그 연설의 전문은 남아 있지 않으나 그 맥락은 대략 위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 연설에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글자 그대로 열광했다. 교황이 내심 기대했던 기사들의 정규군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좋게 말하면 민병, 나쁘게 말하면 어중이 떠중이들이 십자가 몸에 걸치고 동방으로 떠날 정도였다. 클레르몽 이후 4년, 1099년 6월 7일 십자군은 꿈에도 그리던 성스러운 땅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예루살렘 성벽은 튼튼했다. 비잔틴 제국도, 그 뒤 이곳을 장악한 파티마 왕조 이하 이슬람 세력들도 이곳을 성지로 여겼기에 중세 시대에서는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요새로 구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슬람 세계에선 당연하게도 기독교인들과 유태인, 무슬림들이 함께 살고 있는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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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떼 같은 기독교 십자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예루살렘 태수가 내린 명령은 "기독교인들을 죽여 없애라."가 아니라 "기독교인들은 전부 성 밖으로 나가라."였다. 공성전 식량을 아끼고 내응을 방지하려는 목적이었다. 이교도의 군대가 온 근동을 휩쓸고 예루살렘에 육박했지만 이슬람교도들은 이교도를 죽여 없앨 생각은 하지 않았음을 기억해 두자.

한 달 동안의 공방전이 이어졌지만 예루살렘 성은 끄덕이 없었다. 그러자 한 사제가 여호수아의 흉내를 낼 것을 제안한다. 3일 동안 금식을 하고 아흐레 동안 예루살렘 성벽을 돌자고 말이다. 신앙심 돈독한 자들이 이에 따르는 동안 여호수아의 기적을 믿기에는 성미가 급했던 이들은 사마리아에서 베어온 나무로 공성탑을 만들고 맹공을 퍼부었다. 십자군을 따라온 어린이들과 여자들까지 공성전까지 가세한 가운데 마침내 7월 15일 십자군은 예루살렘 성벽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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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이어진 것은 대학살이었다. 기독교인들은 글자 그대로 미친 개가 되어 보이는 대로 칼을 휘두르고 철퇴로 내리찍고 창으로 뀄다. 피가 발목까지 흐를 정도였고, 시체는 산으로 쌓였다. 무슬림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과 함께 대항했던 유대인들도 씨가 말랐다.

7월 15일 하루에 거의 14만 명의 사람이 그들이 믿는 천국으로 떠났다. 이 대학살은 대학살에 참여한 이들에게까지도 충격을 주었다. 그들이 쓴 연대기나 추억담을 보면 1099년 7월 15일이 기억의 화상(火傷)으로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동시에 지리멸렬 분열 상태에서 십자군의 내습으로 그들의 3대 성지 중 하나인 예루살렘을 내 준 무슬림들은 이 잔인한 '프랑크인들'의 실체를 분명히 인식하고 이들을 몰아낼 것을 신에 맹세하게 된다. 십자가와 초승달의 천년 원한은 이렇게 처참하게 서막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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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원단 기독교인들, 심지어 대학살에 참여했던 기독교인조차도 몸서리쳤던 이날이 한참 늦깎이로 기독교가 전파된 황인종의 나라에서 "신의 섭리가 실현된 날"로 기억되는 것을 보면 경악을 넘어 허탈할 정도다. 이날을 검색하다가 보게 된 기독교인들의 글 가운데 하나만 인용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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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들은 눈물을 흘리며 골고다의 성묘로 들어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638년 예루살렘이 이교도의 손에 넘어간 이래 450년만에 그리스도의 거룩한 무덤이 기독교인의 성지로 회복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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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099년 7월 15일 예수살렘의 기독교인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눈물보다 백만 배 더 흐른 것은 핏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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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전쟁, 처음부터 끝까지 피와 재물,권력에 굶주린 어리석은 광기의 산물이었지요. 특히 4차, 7차...... 게임도 아니고 실제 사람 목숨을 가지고 그런 일들을 저지른 걸 보면 종교만큼 사람을 맹목적으로 만드는게 있을까 싶어요.
하지만 신앙인들은 실제 역사탐구보다는 성경말씀을 아니 그 교리에 대한 해석과 설교를 더 신뢰하죠. ^^ 신앙이란 말미암아 믿음에 이르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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