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미남, 그러나 비겁했던 남자의 영면 - 로버트 테일러

in #zzan5 years ago

1969년 6월 8일 세기의 미남, 그러나 비겁했던 남자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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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의 역사에서 미남 미녀를 들자면 날밤을 새도 모자랄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출한 미남을 꼽아 보라면 이 사람이 다섯 손가락에서 빠지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로버트 테일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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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수>에서 영국군 장교 로이 크로닌으로 나와 올드랭사인의 선율 속에 그 반듯한 트렌치 코트 속의 태양 같은 미소로 세상의 여자들을 쓰러뜨렸던 사람이며, <쿠오바디스>의 늠름한 로마 호민관으로 데보라 카의 마음을 휘어잡았던 바로 그 배우. 로버트 테일러다.

연극반 활동을 하다가 MGM사 스카우트 눈에 들어 전속 배우로 캐스팅된 그의 배우 생활 초기의 문제는 너무나 잘생긴 외모였다. “외모에 비해 연기가 형편없다.”는 말을 질리도록 들은 것이다. 우리로 비춰 보면 배우 장동건을 생각하면 되겠다. 연기의 깊이를 더하겠다는 일념으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단역에 가까운 조역을 불사했던 그의 고민은 바로 로버트 테일러의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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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미남의 본질이란 어떻게 하든 머리카락 안보이도록 꼭꼭 숨기지 못하는 법이다. 구두닦이를 시키건 험악한 강력계 형사를 시키건 그 외모에서는 목동 야구장 조명같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로버트 테일러가 그랬고 장동건이 그렇고 산하가 그런 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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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당대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와 <춘희>를 찍으면서 로버트 테일러는 “미남 배우 로버트 테일러, 이제 좀 연기가 되는데?” 하는 평을 얻으면서 외모와 연기를 겸비한 슈퍼 스타로 떠오른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신인 티를 벗지 못했던 로버트 테일러는 그레타 가르보를 안아들고 걷는 연기에서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그 비싼 여배우를 땅에 떨어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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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수>의 상대역이 된 비비안 리도 이 잘생겼지만 연기는 미지수인 남자 배우가 영 마땅찮았던 모양이다. “로버트 테일러가 그림같이 생기긴 했지만 이 영화에는 맞지 않는다고!”라고 불평을 했으니까. 비비안 리는 애인 로렌스 올리비에를 강력히 추천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다행이었다. 로렌스 올리비에에게 트렌치 코트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고 그 황홀한 미소도 보유하지 못했을 테니까. . <애수> 원제 Waterloo Bridge는 세계적 히트를 쳤고, 로버트 테일러는 만인의 연인으로 발돋움한다.

미남도 남자였다. 한창 피어나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아이반호>에서 만났을 때 그 폭발적인 매력 때문에 로버트 테일러는 어쩔 수 없는 난처함에 빠진다. 의상이 문제였다. 중세 시대 의상인 그 착 달라붙는 타이즈같은 바지를 입는데 엘리자베스와 연기를 할 때 하반신의 변화가 두드러진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 감독한테 “가급적 상반신만 찍어 주세요.ㅠㅠ”라고 호소하는 굴욕을 당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 아이반호, <흑기사>로 번역되기도 한 영화는 두 명의 테일러가 절정의 매력을 과시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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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로버트 테일러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호민관 마커스, 기사도의 화신 아이반호처럼 용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 선풍 속에서 그는 로널드 레이건, 게리 쿠퍼, 존 웨인 등과 함께 공산주의자를 고발하고 색출하는 데에 일익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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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레이건만큼 열정적인 빨갱이 사냥에 나선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동료들의 이름을 그 입에 올렸다. 그것도 상당히 비겁한 방식으로. “나는 <러시아의 노래>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리처드 콜린스, 폴 재리코가 쓴 대본과 이프 하버그가 만든 한 노래는 친공적(pro- Communist)이었어요.” 라고 세 사람에게 황당한 올가미를 들이댔는가 하면 가히 21세기 대한민국의 누군가를 연상케하는 증언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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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사회 위협 세력처럼 보였던 이들을 알아요. 그 중의 하나는 하워드 다 실바입니다. 그는 모든 걸 삐딱하게만 말했어요. 뭐 그들이 공산주의자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만.” 이 증언을 하면서 딱딱하게 굳어졌을 뿐 아니라 뭐라 말하기 어려운 당혹감 서렸던 로버트 테일러의 얼굴은 전 세계 여성을 사로잡은 미남의 얼굴이 아니었다.

매카시즘의 상흔은 반세기를 거쳐도 아물지 않았다. “공산주의자 동료를 구하기 위해 내 일을 팽개칠 수는 없지 않으냐”면서 공산주의자(?) 동료 이름을 댔던 엘리어 카잔 감독에게1999년 아카데미 특별상이 주어졌을 때 청중의 반은 전설적인 노감독의 영광의 순간을 침묵으로 보이코트했을 뿐만 아니라 워렌 비티 같은 경우는 알아들을 수 없는 불만의 소리를 내뱉으며 퇴장해 버리기도 했고 닉 놀테는 이렇게 냉소적으로 내뱉었다. “그 어떤 위대한 예술적 공로도 비신사적인 행위를 덮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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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의 자유와 예술혼을 정치적 외압에 팔아버린 이에 대한 단죄였고 일갈이었다. 로버트 테일러도 그때 살아 있었다면 비슷한 욕을 먹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로부터 30년 전인 1969년 6월 8일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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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은지 43년이 지난 2012년 6월 8일 대한민국의 한 전직 의원이 느닷없이 로버트 테일러를 찬양하고 나선 적이 있다. 그가 청문회에서 “이 나라에서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당연히 소련이나 또는 소련의 동조국으로 이민(移民) 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시원스럽게 답변하여 의원들로부터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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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 스스로 반성했고, 일종의 치욕으로 기록되고 있는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곤혹스럽게 친구의 이름을 대던 한 배우의 한 마디가 왜 그렇게 본받고 싶은 말이고, 따르고 싶은 소리가 되는지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작 미국이 지켜야 했던 가치는 로버트 테일러가 아니라 “수정헌법 1조”를 되뇌며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에서 살아 있음을 오늘날의 미국인들도 인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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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어느 쪽에 무게를 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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