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작가 응모작- 수필] 뚜벅뚜벅, 시가 나에게로 걸어와 행복했다

in zzan2 years ago

C3TZR1g81UNaPs7vzNXHueW5ZM76DSHWEY7onmfLxcK2iNph42boG5gCz38WtQ3hSzTn68LLq7zRVPPXoD11gbY61Wgm6Ko4smM3eTD6KhAvuj6GtzhLzcW.png
뚜벅뚜벅,
시가 나에게로 걸어와 행복했다. 오늘은 한 편의 시를 읽는 즐거움을 나누고자 한다.
나는 스팀짱에 입문한 지 보름째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 가장 가난한 시대와 사납게 조우하고 있었다. 특히 그 중에서 시를 쓰는 사람이 가장 가난하다. 시를 쓴다한들, 게재할 지면은 점점 사라지고, 읽는 사람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시는 돈도 밥도 되지 않는다. 권력도 없다. 때문에 시집은 서점에서 갈 곳을 잃어간다.

그런데, 스팀짱에 시를 쓰는 사람이 있다. 시시껄렁해진 시를 쓰는 사람을 만난다. 굳이 시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시로 읽혀지는 반가운 글을 만났다. 행운이었다. 나로서는 그들이 쓴 글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내 삶의 한 부분을 채워주기 때문이리라.

“예술이란 결여(缺如)를 메꾸려는 충동이 만족된 형태이다. 승화(昇華)는 결여(缺如)된 주체의 존엄을 드높이는 것, 무(無, das Ding)로부터의 창조이다. 예술 작품은 창작 활동에 의해 자아와 동일한 기능을 가진 것을 공백이 된 자리에 놓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의 작품은 자아와 동일한 지위를 갖는다. 창작된 작품은 예술가 자신을 반영하는 것이다. 때문에 작가에게 예술 활동은 자기 존재를 위한 필요조건이 된다.”
내가 썼던 논문을 두 분 덕분에 인용해 본다.

시를 왜 쓰는가?
시는 그 사람이다. 얼굴이다. 고스란히 드러는 내면이다. 그 사람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독자는 그의 얼굴을, 내면을, 삶을 내 것으로 수신한다. 시를 읽는 시간은 작가가 발신한 시가 나에게로 와서 새로운 시로 태어나는 빛나는 순간이다. 시는 독자를 만나 모두의 시가 되어 살아간다.

...각설하고 읽는 순간 내 안으로 들어와 나와 함께 살아가는 시를 소개한다. 나의 시로 와 줘서 반갑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꽁꽁 뭉쳐 여기에 풀어 놓는다. 먼저 풀어 본 시는 ‘기다려진다’이다.

기다려진다
온다고 전화도 없었지만 손주 오면
놀아야지 하면서 사 온 공들을 보니
기다려진다
보고 싶다

맑은 눈동자 예쁜 입술
꽃보다 예쁜 귀염둥이
손가락 꼬물꼬물 움직임이 신기하고
보배로 나의 가슴 속에 있다

창밖을 기웃거리며 서성이다
신랑과 배드민턴을 친다
손주 덕분에 우리 잘 놀고 있다며
바라보고 웃는다
이마에 땀이 난다
송글송글
@dodoim –기다려진다- 전문

...솔솔 읽힌다. 읽을수록 정겨운 풍경이 펼쳐진다. 어떤 해박한 시론을 갖다 마구 해부해도, 시는 탄탄하다. 솔직담백함 때문이리라. 세상 찌든 때 또는 떼가 묻지 않음이리라. 보고싶은 손주를 기다리다 부부가 노는 모습이 한없이 정겹다. 우리도 나이들면 그리 놀아보리라. 손주를 그리워면서 잘 놀아보리라.

빵과 만두의 만남은?

이틀 전에 친구가 고구마 맛있게
먹었다고 빵 사오고

옷가게에서 단골손님이라고
집에서 만든 만두를 주고

두 집의 인연으로 만나
행복하고 맛난 점심을 먹었다

신랑이 이틀이나 먹을까 말까
먹으면 살찐다고 빵 먹는 것을
참았는데...

빵이 만두와 만났다
삶이 실타래처럼 엉키어 있어도
소중한 인연은 언젠가는 인연으로
다시 만나리
@dodoim –손님- 전문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풍경이 펼쳐진다. 정겨운 풍경이다. 빵과 만두를 나눠주는 이웃들의 잔정이 훈훈하다. 이웃들의 삶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마음이 잘 드러난다. 살찌는 남편을 살짝 걱정하며 곱게 늙어가는 모습도 스쳐간다. 읽으면 덩덜아 행복해지는 시로 수신된다.

오랫만에 카레를 했다.
감자는 따스한 거실로 들어오니
봄인줄 알고 새싹이 나오고
몸뚱이는 말랑말랑

농사지은 감자 욕심껏 까고
냉장고 뒤져 고기, 양파, 당근
시금치 넣으니 한 냄비가 아니고
두 냄비가 보글보글

어머니 좋아하신다고 큰냄비에
그득 일주일은 드시겠지
미련한 며느리 기분 좋단다

컴퓨터 고장에 신경 곤드선 신랑
맛있냐고 말 한 마디 못하고
묵묵히 카레 맛을 음미한다
@dodoim –질리지도 않나요- 전문

@dodoim 시에는 항상 가족이 등장한다. 손주, 어머니, 신랑이다. 농사를 짓고, 직접 가꾼 것을 식탁에 차려내며 행복을 전파한다. 일상이 시가 된 시를 늘 편안하게 수신한다.

시라고 하지 않았지만 시로 수신한 다른 글을 수신한다.

책상 서랍에 굴러 다니는
볼펜을 모아 봤다.

이 펜들로 말할 것 같으면 누가 내 자리에
놓고 간 눔,

넘의 자리에 가서 무심코 들고 온 눔,
행사장에서 기념으로 받아온 눔,
가족2나 3이 집에 버리고 간 눔,
몽당으로 남아서 볼펜 깍지로 연결했더니, 궁상떤다고
퉁박을 받게 한 눔.
그중에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주운 것들이다.

요즘은 풍족한 세상이어서 필기 도구 쯤이야
한 두 번 쓰고 버리기도 하지만
내 입장에서 쓰다 중간에 버리는 일은 없다.
볼펜을 잉크가 다 했을 때까지 썼을 때의
묘한 성취감을 아실랑가 모르겠다.
그리고 내 돈 주고 일본 펜은 안 사 쓴다.
학생들이 많이 쓰는 제트스트림, 저것도
길에서 주운 것다.
@dozam [일상잡기21-220] 볼펜 전문

‘역시, 주운 것들이다.’에서 빵 터진다. ‘묘한 성취감을 아실랑가 모르겠다.’ 는 삶에 대한 자신감이다. ‘쓰다 중간에 버리는 일은 없다.’ 라는 그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내 돈 주고 일본 펜은 안 사 쓴다.’에서 삶에 대한 자부심에 격하게 공감하게 된다. [일상잡기21-220] 라 하지만 나는 시로 수신한다. 시를 읽고 그 사람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 시는 생명이 길지 않다고 주장한다. 독자의 맘을 어루만져 주는 시, 애써 꾸미지 않는 시, 솔직한 시를 나는 좋아한다.

보통은 짧은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간단히 산책을 하곤 하는데
오늘은 눈발이 날리고 삭풍이 불어서
얼른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앉아서 이러저러한 일 처리를 하다보니
소화가 잘 안된다.
실내에 있어도 서늘하여 무릎 담요를
두르고 졸며 깨며 박봉값 하고 있다.

안되겠다, 산책로에 다녀오자.

날씨는 맑아졌는데, 바람이 많이 분다.
겨울 바람이 솔잎 사이를 빠져나가는
그 소리를 들어본 적 있는지.

대륙과 만주 벌판을 달리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면
지나친 상상력이려나?
[일상잡기21-221] @dozam 추운 날 전문

지나친 상상력은 지나친 아무리 ‘추운 날’일지라도 온기로 느껴진다. 직장인의 고단함이 느껴지고, 오후의 나른함을 함께 한다. ‘겨울바람이 솔잎 사이를 빠져나가는’ 걸 놓치지 않는 섬세한 눈길에 아,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봄 한철의
격정을 인내한
사랑이 지고 있다고 했던가.
전시회장에서 하우스로 옮겨온
국화들이 조용히 시든다.
열매 맺는 계절을 향하여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했는데
짧아서 서러웠던 내 청춘은
그냥 말라 버렸구나.
방해하지 말라.
겨울잠 속의 꿈 또한 깊으니.
모아 놓고 보니 보는 재미가 있다.
@dozam [일상잡기21-219] -시든 꽃- 전문

‘시든 꽃’도 ‘모아 놓고 보니 보는 재미가 있다.’에서 생각의 깊이가 느껴진다. @dozam의 [독서잡기]를 글을 보면, 평소 독서의 폭과 깊이가 느껴진다. 독서 수준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길도, 그리고 드러내는 글이 담아내는 품격도 모두 영양가 높다.
꽃은 시들어가면서 다음 해에도 살아갈 전략들을 가지고 있다. 지상부는 시들고 얼어 죽더라도 열매로, 뿌리로 살아남는다. 어떤 것들은 로제트 상태로 땅바닥에 방석을 깔고 살아남는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되면 꽃을 피운다. 이처럼 두 분의 시는 독자에게로 가서 고스란히 살아남을 것을 확신한다.

https://www.steemzzang.com 이곳에서 담백한 시를 만나는 기쁨을 오래오래 누려 보고 싶다. 이쯤 되면 시는 ZZAN POWER나 STEEM POWER보다 독자에게 가장 큰 힘을 준다고 할 수가 있다.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행복을 실어 나르는 시는 그래서 값지다. @dodoim, @dozam 두 분의 시를 만나는 시간은 즐겁다. 다른 분들의 시도 만나기를 바라며 토요일 오후를 즐긴다.
시가 나에게로 걸어와 행복했다. 작가의 내면 세계를 수신할 때, 시는 한층 풍성해질 것이다. 새 생명력을 얻은 시가 또 다른 사람에게도 뚜벅뚜벅 걸어가기를 희망한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행복해지리라.
나는 믿고 또 믿는다.
2021.12.4. @Jamislee

[이달의 작가 응모작- 수필] 뚜벅뚜벅, 시가 나에게로 걸어와 행복했다

Sort:  

잘못된 문장 고침

  1. 시는 그 사람이다. 얼굴이다. 고스란히 드러나는 내면이다.
  2. 시라고 하지 않았지만 시로 수신한 다른 분의 글을 내려놓는다.
    3)지나친 상상력은 아무리 ‘추운 날’일지라도 온기로 느껴진다.

Essay yang menarik. Saya menunggu puisi saya diberi kritik juga :)

Interesting essay. I am waiting for my poem to be given criticism as well
재밌는 에세이네요. 나도 내 시가 평을 받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I'll read your poem.

Keep up the spirit and always work, because by writing we will create our own history..

I'm with you. That's what history is. It's our life, literature.

재미스리님은 평이한 글도 아름답게 느껴지도록 해주시는 탁월한 문장가이십니다. 등단한 작가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칭찬해 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우리 스팀짱에 엄청난 분이 입성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Coin Marketplace

STEEM 0.30
TRX 0.12
JST 0.034
BTC 63750.99
ETH 3130.22
USDT 1.00
SBD 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