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 - 레이먼드 카버

in #booksteem6 years ago (edited)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by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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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을 이야기 할 때면 항상 그의 삶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그의 나이 19세에, 16세의 아내와 결혼해 인생의 아주 이른 시기에 가정을 꾸리고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극심한 생활고에 허드렛일을 전전하며, 야간 대학에서 문학강좌를 듣고 돈을 벌기 위해 글을 쓴다. 어린 아이들에게 방해받지 않기 위해 주차된 트럭 안에서 글을 쓰는 일이 다반사였고 고된 노동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문학으로의 열정이 뒤얽힌 그의 삶은 아내와의 기나긴 불화로 이어진다.

그의 삶에 대한 무거운 인내는 그를 알콜 중독자가 되게 하고 긴 시간을 보내게 한다. 그의 작품들이 세상에서 호평을 받기 시작하고 술을 끊고 아내와 이혼한 후, 새로운 사랑을 하고 작가로서의 유명세를 떨칠 무렵, 50세 젊은 나이에 폐암으로 생을 마감한다.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밀린쿤데라'의 소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글이라 생각하면서도, 카버의 글은 사람들이 쉽게, 어쩌면 나도 저런 글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나역시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소설들은 엄청나게 스펙타클 하다거나 이야기성이 풍부해서 독자들에게 깊은 상상력을 요하지도 않고, 지금 책을 덮어도 뒤에 무슨일이 이어질까 궁금해서 얼른 다시 집어 다음 페이지를 넘기게하지도 않는다.

작가가 하는 이야기들은 그의 삶에 관계한다. 실제로 작가가 살았고 지나온 곳을 소재로 글을 쓰고, 그가 경험한 삶에 대해 담담하게 고백하듯 써내려간다. 유독 그의 작품에는 소시민적인 감성이 많이 엿보인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현실에 그럭저럭 순응하며 살아가고, 가족은 해체되고, 그 안에서도 사랑을 이야기 한다.

이 글의 표제작인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 이야기 하는 것'은 작가의 사랑에 대한 담론에 가까운 작품이다.
너무 사랑해서 상대를 구속하고 얽매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 사랑일 수 있을까. 카버는 네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 어떠한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까를 진지하게 이야기 한다.

하지만 우습게도 그 네 사람은 모두 이미 한번의 결혼과 이혼으로 새로운 상대를 만난 사람들이다. 죽도록 사랑하던 사람들을 저버리고 증오하며 새로운 사랑을 만난 이들이 지금 서로를 사랑한다고 해서 예전의 사랑은 기만될 수 있을까.

이 작품은 그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소설집 [대성당] 두 해 전에 출간되었다. [대성당] 속 내 스스로 아주 감동적이었던 작품 '별것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의 손보기 전 단계격인 '목욕'을 만나면 기쁨을 감출 수가 없기도 하다. [대성당]이 잘 다듬어져서 매끈한 실루엣을 자랑한다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은 투박함 속에 숨겨진 작가의 진정성과 순수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야기 위주로 흘러가지만 '심리'는 약하고 '현상'과 '행위'는 강한 작품들, '이해'와 '추론' 보다는 '사실'에 입각해 나아가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마치 생선에 살은 없어 뼈대만 남아있어서 독자들이 읽어가며 그 살 부위를 채워나가야 할것같은 이야기들이다. 즉, 성실한 책읽기가 요구되는 책이다. 예를 들어 '왜'는 없고 '어떻게'만 있어서, 지속적으로 그 '어떻게'를 가지고 '왜'를 찾아나가는 식의 독서가 필요한 것이다.

단편 중에서도 초단편 격의 작품들이 여러편 모여 그닥 두껍지 않은 책인데도 읽는 내내 약간의 피로가 밀려온다.

국내에서 번역을 직접 하는 유명 작가를 이야기할 때 김영하 작가와 김연수 작가를 빼놓을 수 없는데, [대성당]을 번역했던 김연수 작가가 얼마나 [대성당]을 더 빛나게 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작가가 번역하는 작품은 일단은 이야기성이 그대로 보존되기 마련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팬이지만 번역 때문에 약간 거슬리는 작품이긴 하다.

국내에선 '숏 컷'이라는 영화의 원작자로 거의 알려졌었고, 이미 유명해진 다음에도 영화 '버드맨'에서 마이클 키튼의 연극무대에서 시연되던 작품의 원작자로 더욱 알려진 레이먼드 카버. 그의 군살없는 미니멀리즘적인 작품들은 건조하기 이를 데 없으나 가슴 깊숙하게 명징하게 남는, 그 어떤 감동이 오래가는 작품들이다.

레이먼드카버의 카버적인, 카버를 기억하기에 충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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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많은 역경을 겪은 사람이 감동적인 글을 쓰나봐요.

그런거 같아요...!ㅡ 그럼 우리도 역경부터 통과해야 하나요? ㅜㅜ

그의 작품을 보면 결코 단순하지 않았던 작가의 삶이 그대로 감성으로 묻어 나오는 것 같아요. :)
그리고 작품을 해석하는 키퍼님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고 있답니다. 저였다면 보고나서 그저 ‘으아아, 복잡해.’ 이랬을 거예요. :D

해박한 지식 ㅜ 아니에요. 좋아하니 이래저래 찾아보고 듣고 하다보니 알게 된 것들이지요 ㅎㅎ

한동안 카버의 작품에 빠져 지냈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유명한 작품도 좋지만 저는 숏 컷의 이웃사람이라는 작품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오늘 날씨가 카버의 작품과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아 그러시군요. 버드맨 때문에 카버가 많이 알려져서 국매에도 많은 팬이 생긴것 같아요 ㅎㅎ

저는 키퍼님의 작가이해력에 감탄하고 가용~^^

에이 뭘요... 좋아하다 보면 알고싶도 알고싶다보면 들리고 ㅎㅎ 그럼거죠뭐

레이먼드 카버를 기리며. 리스팀 ^^

정말 고마워요^^

필립 로스를 읽다가 다음 책은 카버로 읽어볼까 하던 차에 포스팅을 보니 반갑습니다.^^ 카버의 마음도, 아내의 마음도 이해가 되니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결과에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네요. 현실은 늘 녹녹치 않고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일들은 우리 앞에 즐비해 있기에 삶 앞에 늘 겸허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아 필립 로스를 읽다니요... 역시나 제가 팔로우 선택을 잘했군요! 저도 팬입니다^^

레이먼드 카버 몰랐던 작가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그 작품까지도..감사합니다.

넵 감사해요^^

소설가들의 결말은 좀 슬프네요

아마 삶이 평탄치 않아서 그런것 같아요. 안타까워요. 더 훌륭한 작품을 많이 썼을텐데ㅜ

저도 버드맨을 통해 레이먼드 카버를 알게 됐어요. 이 책을 읽고나니 풋내기들도 보고 싶어지던데 아직까지 읽진 못했습니다. '카버적인'이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다른 책들을 읽다보면 조금씩 가닥이 잡히겠지요? 괜히 반가운 마음이 드네요. 글 감사합니다!

대성당을 읽어보시면 카버적인의 의미가 완전 다가올거 같아요. 정말 그 책은 두번 읽었어요.

애정하는 카버! 반가워요. 저도 어제 글에 카버 얘기했는데요.ㅎ 이런 우연이^^
팟캐스트 방송에서 했다는 얘기도 제가 한 얘기랑 비슷하네요! 뭔가 통했습니다ㅎㅎ

앗...소울메이트님 포스팅에서 카버 이야기를 읽었다고
북키퍼님과 비슷한 시선을 가지신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쓰려 했는데...
두 분이 딱 통하셨네요! ^_^

네 통하였습니다.ㅋㅋ 글로 이어진 우리 인연ㅋ

테루도 그렇고 저랑 책 선택하시는 취향이ㅜ비슷한거 같아요. 그래서 소울메이트님 소설도 너무 좋았나봐여 ㅎㅎ

네 취향이 닮았네요ㅋㅋ 카버 좋아하시면, 앨리스 먼로도 혹시 좋아하시나요.ㅎ 자꾸 확인하고 싶어지네요. ㅋ

앨리스 먼로는 [디어라이프] 읽었구요 ㅎㅎ 리뷰를 안 썼는뎅 ㅎ 글을 안 쓸 때 읽은거라. [작가란 무엇인가]는 사다놓도 노려보고 있어요 ㅎㅎ 하루키 편은 당연 읽었고 폴오스터도 ㅋ 아직 완독은 못했구요. 이 책은 왠지 정색하고 읽고싶고, 또 허세 시절의 감성 말고 지금의 감성으로 읽고싶어, 오르한파묵 등 예전 책들을 산처럼 사놓고 읽지도 못하면서 매일매일 노려만 보고있어요 ㅎㅎ

하하. 노려보는 책들 많으시군요. 전 줄 선 책이 넘 많아서 눈길도 한 번씩 다 못 줘요ㅜㅋ
카버 좋아하시면 먼로의 '행복한 그림자의 춤'도 분명 좋아하실 듯하여ㅎ 디어라이프보다 좋게 읽었어요. 즐거운 밤 되세요^^

그런가여? 우리신랑 지금 한국 출장갔는데 사오라 해야겠어요 ㅎㅎ 감사요. 디어라이프도 곧 글을 쓰고싶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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